핑계의 맛

어머니의 레몬청

by 김준성

자취를 시작하고 어머니께서 레몬청을 보내주셨다.


처음에는 아침마다 자주 마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마시지 않게 됐다.


아침잠을 조금 더 자겠다는 이유,

물을 끓이기 귀찮다는 이유,

깜빡했다는 이유.


마셔야 할 이유보다

안마실 이유를 더 많이 찾고 있었다.


더 이상 핑계가 떠오르지 않자

그냥 관심 없이 지내게 됐다.


그러다 오랜만에 레몬청을 내려 마셨다.

여유가 생겨서였을까.


물을 붓고 레몬청을 넣어 천천히 저었다.

조금 식힌 뒤 한 모금 마셨다.


레몬청은 생각보다 셨다.


원래 이런 맛이었나.

예전에 마셨던 레몬청은 달콤했던 것 같은데.


신맛을 잊고 살았던 걸까.


버릴까 싶다가도

한 입, 두 입 계속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달콤해졌다.


신맛에 익숙해지자

단맛이 다시 느껴졌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신맛을 싫어했던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핑계의 맛일지도 모른다.


좋지만

어딘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그런 맛.


어찌 보면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많다.


예전에 가볍게 들던 무게가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질 때.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식어버린 관계를 바라볼 때.


한때 좋아했던 취미가

어느새 짐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마주할 때.


그때 우리는 종종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먼저 핑계를 맛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핑계의 맛은 별로 달지 않다.

오히려 조금 쓰고, 조금 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맛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맛을 천천히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잊고 지내던 맛들이 함께 떠오른다.


처음의 마음,

처음의 이유,

처음의 달콤함.


핑계의 맛은

그 맛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다시 본연의 맛을 떠올리게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신맛을 조금 더 천천히 마셨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왜 사소한 다툼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