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은 늘 같은 크기로 머물지 않는다

넓은 사람의 조용한 태도

by 김준성

사람의 그릇 크기는 단순히 많이 알고, 많이 담는 능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것은 얼마나 넓게 받아들이는지, 얼마나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지, 그리고 필요할 때 얼마나 자신을 줄이거나 넓힐 수 있는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우리는 흔히 그릇이 큰 사람을 말할 때, 모든 것을 다 품어내는 사람을 떠올린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작은 말에도 쉽게 넘치지 않으며, 누구를 만나든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큰 그릇은 늘 큰 모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진짜 큰 그릇은 상황에 따라 스스로의 크기를 바꿀 줄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넓이를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굳이 더 많이 알고 있음을 드러내지 않고, 굳이 더 넓게 보고 있음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작은 잔이 되어 상대의 말을 담고, 때로는 깊은 항아리가 되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크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얼마나 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무교인 사람이 전도사를 만났다고 해보자.

정말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이 더 넓다는 이유로 상대를 이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신념의 크기로 맞서기보다, 소주잔만 한 마음으로 잠시 들어줄 수도 있다.

그 말이 자신의 삶 전체를 흔들 만큼 무겁지 않다면, 굳이 항아리 같은 그릇을 꺼내 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작은 잔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다.

가볍게 담고, 가볍게 넘기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면 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대화는 사람 안에 있는 그릇을 넓히기도 한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오래 붙들고 있던 믿음, 혹은 삶의 방향과 맞닿은 이야기를 만날 때 사람은 저절로 자기 안의 공간을 더 크게 열게 된다.

이해하기 위해, 배우기 위해, 혹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담아내기 위해 그릇은 조금 더 커진다.

그럴 때의 확장은 억지로 벌리는 몸짓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를 느껴 넓어지는 마음에 가깝다.


어쩌면 그릇이 크다는 말은, 무조건 많이 담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덜 담을 줄 아는 절제이고,

때로는 흘려보낼 줄 아는 여유이며,

때로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맞는 크기로 나를 조절할 줄 아는 유연함인지도 모른다.


항상 큰 그릇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오히려 쉽게 지칠 수 있다.

모든 말을 깊게 담고, 모든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모든 관계 앞에서 자신의 전부를 꺼내 보이려 한다면 마음은 금세 닳아버릴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언제 크게 담아야 하는지, 언제 가볍게 들어야 하는지, 언제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지를.


결국 큰 그릇이란 크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크기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늘 넓은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넓어지고 필요 없을 때는 조용히 작아질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깊이를 과시하지 않고도 깊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의 그릇은 얼마나 크게 담느냐보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흘려보낼 줄 아느냐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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