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상냥함은 없다

[리더쉽 에세이] '뿌듯함'으로 일하는 따뜻한 사람

by 이드 쉐이퍼

“A님은 언제 성취감을 느껴요?”

한 팀이 되어 일하게 된 마케터 분과 1:1 미팅을 하던 중 질문을 던졌습니다. 서로 다른 팀이었을 때부터 컨디션 기복 한번 없이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바른 자세로 미팅에 참여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던 분이었어요. 혼자서 SNS 콘텐츠 기획과 운영을 해오는 모습을 보며, ‘외롭지는 않을까?’라는 걱정 어린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었고요. A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뿌듯함'이요. 일을 통해 '뿌듯함'이 느껴지면 성취감이 생겨요.”


이 한마디에, 이 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조정하면 좋을지, 앞으로 어떤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게끔 해드리면 좋을지 핵심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뿌듯함'이 동기인 사람에게

흔히 마케터라고 하면, 모든 유행에 통달하고, 어느 분야에서든 트렌드세터 적인 면모를 보이며,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특히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A님은 에너지가 외부로 표출되는 스타일의 마케터는 아니었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담당 업무를 혼자서만 고민한 탓에, 조금 지쳐있기도 한 상태로 보였습니다.

같은 팀이 되고 나서 관찰한 A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돈된 프로세스를 따라 움직일 때 오히려 더 창의적으로 반응했고, 자신이 해낸 일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쓰였다는 사실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자유롭게 해 봐’라는 말은 오히려 막막한 주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뿌듯함‘이라는 단어를 중심에 두고, 이 분에게 어울리는 방식의 몰입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동기를 얻고 → 소통 중시

✔ 과정에 빈틈이 없도록 절차를 존중하고자 하며 → 꼼꼼함, 엄격함

✔ 일의 결과를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 사람 → 뿌듯함

정리를 토대로, 이 분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업무 구조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방법을 찾다

그 무렵, SNS 채널은 정체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톤의 콘텐츠가 이어지며 반응도 줄어들고 있었죠. 마침 브랜드 페르소나가 확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콘텐츠의 방향성과 톤 앤 매너, 그리고 프로세스까지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은 ‘함께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디어란 나눌 수 록 많아지기 마련이니까요. 콘텐츠 아이디어 회의 구조를 아래와 같이 진행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마케터 2명, 디자이너 2명으로 파트 구성

두 가지 채널(메인 채널과 서브 채널)에 대한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

A님은 특히, 메인 채널의 톤 앤 매너 관리에 집중하도록 역할을 조정했습니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카피와 이미지 전반에서 감각적인 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우리 채널이었어?’ 생각이 들 만큼, 레퍼런스를 뛰어넘는 콘텐츠들이 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든 결과물’이라는 자부심이 팀 내에 자연스럽게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일하는 방법이 바뀌니, 성과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 광고비 1/10 수준으로 줄었음에도 인게이지먼트 3배 상승

✔ 콘텐츠별 인게이지먼트는 전월 대비 70% 이상 증가 (2025년 2~3월 기준)

✔ 비팔로워 도달 비율은 매달 평균 4%씩 성장 중


사실 숫자의 변화보다 더 반가웠던 건, 파트 구성원 분들끼리 (아마 제가 제안했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를) 자발적으로 출연하는 콘텐츠를 촬영하기 시작했던 것이었어요. 내심 그런 결의 콘텐츠를 우리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요즘 다들 아이디어가 넘쳐나요”라고 말하며 상기된 얼굴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모습에서 A님이 말한 뿌듯함을 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찾다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는 분에게 안성맞춤인 업무라면?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업무를 맡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기 & 장기 체험단을 기획부터 운영까지 도맡아 주길 요청드렸습니다. 단기 이벤트 성으로 제품을 협찬했던 것에서 디벨롭하여, 브랜드를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며 높은 로열티를 갖고 자발적으로 바이럴에 동참해 줄 소중한 자산이자 팬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해본 적 없던 프로젝트, 말 그대로 0에서 시작하는 일이었죠.

이런 업무를 기다려왔었다는 듯이, A님은 운영 매뉴얼부터 콘텐츠 가이드,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가이드를 순식간에 만들고는 컨펌을 요청했는데, 명료하면서도 친절함이 느껴지는 신기한(?) 가이드였어요. 단순한 협찬에 그칠 수도 있는 브랜드 체험단이 A님의 손을 거쳐 ‘관계를 형성하는 일‘로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체험단 업무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A님과의 티타임에서 제가 드렸던 피드백에 보였던 반응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A님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담당자님이 정말 친절해서 특별했다.’라는 피드백을 굳이 자기 스토리에 올리는 체험단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상대방을 먼저 고려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업무 연결시킬 줄 아는 것은 A님의 가장 큰 강점이에요. 덕분에 저도 걱정 없이 통째로 업무 요청을 드릴 수 있었던 거고요.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 중에 꺼내 보일 강점이 많으니, 객관화하고 나열해 보는 습관을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브랜드 커뮤니티를 전담하게 되면 정말 좋겠어요. A님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고, 무엇보다 본인이 충분히 즐거워하며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건데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많긴 하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남들이 봤을 때 충분히 강점으로 여길만한 것이 된다면 진짜 객관적으로 정리를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커뮤니티도 정말 하게 되면 좋겠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늘 상냥하게 조용하던 눈 위로, 두근 거리는 생동감이 잠시 번뜩이는 걸 봤던 것 같습니다. 그 찰나의 눈빛에 또 한 번의 뿌듯함과, ‘리더로서 도움이 되었다 ‘는 안도감을 함께 만끽했던 날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과정과 결과는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팀원의 ‘성취동기’는 무엇인가요?

팀원의 강점에 대해 어떻게 피드백하고 있나요? 판단의 기준이 외부에 있으면, 지금 당장 내가 갖지 못하고 있는 것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객관화해 보기도 전에 기부터 죽어버리는 거죠.


✔ 그는 무엇을 잘하나요? 그리고, 무엇에 의미를 느끼나요?

✔ 맡고 있는 업무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받고 있나요?

✔ 그가 만든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나요?


어떤 가치를 어떤 업무에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업무 동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팀원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이 팀 안에서 의미 있게 연결되도록 구조를 짜는 것. ‘무대를 설계하는 사람‘으로써의 리더의 역할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성취동기를 중심에 두고 구조를 설계해 가는 일이야말로, 리더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일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사람의 동기부터 들여다보는 연습이 먼저라는 걸, 앞으로 계속 기억해나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