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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단 Jun 13. 2024

틈-상담사의 공황

조금 비껴간 이야기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몰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우울했다.      

근데 내가 몰랐다. 그렇게 모른 채 방치된 나의 우울은 어느 날 급작스레 극심한 불안으로 치환되더니 생전 처음으로 공황에 가까운 증상을 겪으며 ‘이게 그거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또 알았다.     


나는 상담사랍시고 그간 이러한 우울과 불안, 공포를 지닌 사람들을 위로했으나,

겨우 그에 지나지 않았고 본연적으로는 나약하다고 비난하고 있었다는 것을.     

‘살만하니 이런 소비적이고 배부른 병이 생긴거다.’

라는 어느 누군가의 힐난이 내 속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교만했고 위선했고 때때로 아무렇지 않게 잔인했을 것이다.  

   

삶의 군데군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든 것이 다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다. 나의 태어난 때와 곳도, ‘나’라는 자아로 생을 이어가는 것도 내 부모의 자식인 것도, 아내나 친구와 연을 맺게 되는 과정도 직장에서의 업무도, 동료도 어느 것 하나 애초에 계획되어 있는 일이란 따져보니 하나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삶은 삶으로 그냥 받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 또한 예외가 아닌 세상사 일부의 사건 정도로 유연히 여기며 살아왔다. 제법 내가 그리 멋있는 줄 알았으나 그렇게 살아왔다고 여긴 것에 불과했다.     


나는 유연한 것이 아니라 유연할 수 있을 만큼만 사건을 겪었고, 유연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의 사연들만(사실은 아무래도 나와 상관없었던) 목격했던 거다.   

  

‘죽음’     


수많은 죽음을 멀리서, 가까이서 본다.     

세월호, 이태원, 그 이전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각종 유명인들의 부고, 가까이에선 가족, 친지, 지인, 지인의 지인의 죽음까지도 우리는 불가피하게 마주한다.     

지난 어느 날 누군가의 부고를 받았다.

내게 가까운 이는 아니었다.

내 가까운 이의 가까운 이였다.     

그 이의 죽음은 좀 달랐다. 아니 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죽음의 한 형태니까. 아직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 똑같이 추모되고 추억되어야 할 한 생의 같은 끝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스스로가 선택한 생의 마감’     

그런 곳의 빈소는 공기가 다르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죄책감을 가진다.     

그이의 가족들도 그랬다. 그이의 친구들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죽음에 자기 몫의 죄책을 파고 있었다.     

그러한 일의 목격이 내 불안의 이유는 아니다. 일부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는 아니다.     

관계의 거리만큼일 것이다.

내 가족이거나 내 가까운 지인이라면 나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슬픔에 젖어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그 죽음은 나의 사정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저 애도할 뿐이었다.     


나의 우울은 다른 형태로 왔다.

어느 날인가 느닷없이 두려움이 왔다.

다른 이의 고통이나 사고에 내가 앞섰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내 가족이 당하면 어쩌지?

온통 나였다.

지금도 그렇다.

크건 작건 상관없다.

그 일이 내게, 내게 속한, 나의 심리적, 물리적 사정거리 안에 있는 이들에게 일어나지 않아야한다는 강박이 매우 지나치게 와버렸다.

그리고 모든 공황이 그렇듯 그 일이 마치 일어날 듯한 비합리적 불안이 온 정신과 생활을 지배하고, 지배당한 정신에 딸린 몸은 덜덜거리고 두근거린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구에게나 쉽게 뱉었던 말.     


“병원에 가세요. 요즘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반인들도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일상을 잘 유지합니다. 감기 같은 것이에요. 사회생활이나 이력, 경력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라고 내가 뱉었던 교과서적이고 기계적인 이야기들.      

인생은 1 다음 2, 그다음 3 이렇게 명료하지 않다.     

나는 내가 되게 명료하다고 착각했다.

병원을 권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나약하지 않다고 은근 자부하며 대상과 대상 간의 구분을 짓고 었었다. 그게 내 상담의 본질 중 하나였다고 확인하니 괴롭다. 들킬까 겁도 난다.     

병원을 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인정이 잘 안된다.


‘아닐 것이다. 이 쪽 계통에 오래 머문 소진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건 나의 센티멘탈, 멜랑꼴리일지 모른다.’


라고 병원의 문턱은 어떻게 밀어내고싶은 내 마지노선인가도 싶다.     

이리되고보니 내 이력의 전반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나는 상담사였나.

상담에도 립싱크가 있다면 내가 그 립싱크 상담사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당하기 전에 깨달음이라고는 없는, 비범한 척만 하고 살았던 자기고백이다.     


당분간 이 우울은,

그에 동반한 불안은 불가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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