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간
아이는 올 초부터 열심히 연습한 두 곡을 가지고 콩쿨장에 들어갔다. 학부모는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았다. 작년에 큰아이가 콩쿨에 참가한 적이 있어서 스탠드는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준다. 오늘은 십 년의 피아노 연습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십 년간의 나의 노고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남편과 나는 음치다. 부모의 노래에 대한 콤플렉스는 아이들에 대한 염려로 이어졌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텔레비전에서 야마하 음악교실의 광고를 봤다. 선생님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어린아이들이 ‘도레미파 솔라파 미레도….’를 노래한다. 뒤에서 엄마는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본다. 우리 부부는 단박에 광고에 매료되었고, 반드시 저곳에 보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체험 수업을 듣고 나서 바로 등록했다. 그때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이었다. 야마하 음악교실의 분원이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그렇게 삼십여 분 가면 되는 곳에 있었다.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늦으면 업고 뛰면서 음악교실에 다녔고, 또 끝난 후에는 작은 아이 어린이집 하교 시간이라 열심히 뛰어서 집에 오곤 했다. 시간에 쫓기는 마음은 항상 지하철을 통째로 들고뛰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야마하 음악교실의 아이들 반은 다섯 명으로 시작했다. 그중에서 우리 아이가 제일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섯 살짜리 아이가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어떻게 한 시간을 앉아 있겠는가. 나머지 아이들은 여섯 살, 일곱 살 쯤이었다. 아이가 잘하고 재미가 있어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온 가족이 노래를 함께 연습했다. 점차 아이도 음악교실 수업에 적응해 갔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났을 때 나머지 네 명은 그만두고 우리 아이만 남았다. 처음에 잘하던 아이들은 흥미를 잃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엄마와 불화가 생겨 그냥 그만둔 것이다. 개인 지도로 아이는 두 학기를 더 다녔고, 부산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서울 센터는 그만두었다.
부산으로 이사할 때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이 야마하 음악교실이었다. 다행히 부산 유일의 센터가 집에서 1km 거리에 있었다. 지하철을 안 타도 되는 것에 기뻐하며 바로 등록했다. 매주 수요일이면 아이를 데리고 야마하 음악교실에 걸어 다녔다. 다음 해에는 둘째 아이도 등록했다. 점차 피아노 비중이 높아지고 어설프게 작곡도 배우며 서울의 야마하 콘서트에도 참가했다. 조금씩 늘어나는 실력에 감탄도 잠시, 기나긴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결국 야마하 음악교실 부산센터는 폐원되었다. 이제 피아노가 손에 익나 했는데, 폐원이라니…. 대구 센터까지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야마하 선생님이 방문 레슨으로 두 아이의 수업을 이어가 주셨다. 두 아이의 특성을 잘 잡아준 선곡으로 아이들의 피아노 실력은 매일 깊어졌고, 듣기도 좋았다.
작년에 초등학교에서 알림이 왔는데, 부산예중 콩쿨에 관한 것이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꼭 나였다. 아이의 연주 소리도 좋고, 6학년이라 이제 피아노도 마무리해야 할 것 같고, 이런 콩쿨에 참가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면 좋을 듯했다. 시간이 너무 짧아 난감해하는 선생님과 아이를 설득해서 콩쿨준비를 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두 곡을 완성해야 했다. 아이는 바흐와 모차르트에 빠져서 허우적댔고, 목에 틱이 생겼다. 선생님의 노력과 아이의 강행군으로 실력은 월등히 좋아졌지만, 여러 달을 준비한 아이들에 밀려 결과는 참가에 의미를 둬야 했다. 지금이야 나아져서 한시름 놨지만, 한 번씩 목을 돌리는 아이를 볼 때마다 ‘모르면 무식하구나’ 싶은 생각에 매우 미안했다. 둘째 아이는 자연스럽게 콩쿨 준비를 일찍 시작했고, 오늘이 콩쿨 날이다. 남자아이라 손에 힘이 더 들어가고 오랫동안 준비한 덕에 연주 소리에 여유도 있어서 입상을 살짝 기대한다. 하지만 입상을 못 해도 서운해하지 않으련다. 아이는 긴 시간 동안 미치도록 바흐와 모차르트를 연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콩쿨이 끝나면 피아노 레슨도 끝난다. 피아노 선생님이 출산하셔서 더 이상 수업을 이어가기 힘들게 되었고, 둘째도 곧 중학생이 될 터라 이제 피아노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큰아이는 서울 센터를 다닐 때 그 반에서 가장 못 했고, 가장 힘들어했다. 하지만 잘하던 아이들이 지치고 빠졌을 때도 꾸준히 계속했다. 부산센터에 와서도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또래보다도 손가락에 힘이 없고 손이 작아 어른 손 크기의 피아노 건반이 부담되었다. 항상 다른 아이보다 못했다. 노래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야마하 음악교실이다. 이것도 무지에서 온 오판이었다. 야마하 음악교실은 노래가 중심이 아니고 악기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십 년 동안 한 번도 그만두지 않고 피아노 연습을 한 덕에 음정도 좋고 화음도 좋다. 제법 노랫소리도 좋다.
야마하 음악교실은 보통의 피아노학원과 달리 주 1회를 직접 데리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매일 집에서 연습하는 숙제가 있었다. 콩쿨을 준비할 때는 선생님이 계신 울산까지도 다녔다. 2년은 선생님이 집으로 레슨을 오셨고, 그렇게 다닌 시간이 8년이다. 여기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시작이 엉성하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고 오랫동안 노력하면 결국은 단단한 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콩쿨은 나와 아이들이 십 년간 만든 노력의 산물이다. 이제 무슨 일이든 자신감이 생긴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이 말은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말인데, 나는 여기에 더 큰 것을 보탠다. 樂之者不如久之者(락지자불여구지자). “즐기는 사람도 오래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피아노 건반을 쿵쿵 치던 다섯 살 아이는 이제 손가락을 우아하게 움직이며 피아노를 친다. 아무리 좋아하고 즐겨도 단시간 내에 끝낸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이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어렵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꾸준히 한다면 점차 쉬워지고 또 재미가 붙는다. 피아노를 통해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법을 배웠다. 피아노 연주 실력보다 값진 결과이다.
콩쿨이 끝나가는지 저학년부터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한다. 환희의 웃음소리도 아쉬움의 소리도 들린다. 우리 아이도 결과란에 이름이 오르는 영광을 누리길 바란다. 설사 순위에 들지 않더라도 칭찬받기에 충분히 열심히 한 아이지만, 아이의 노력에 어떤 성과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담아 두 손을 모은다.
에필로그>
결국 입상은 못 했다.
하지만 연습하는 동안 아이의 실력은 수직으로 상승했고, 노력의 가치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