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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Oct 09. 2023

정읍 여행

다섯 개의 공깃돌

 한 도시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정읍이 그렇다. 내장산 단풍,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로만 알았는데, 정읍이 가진 것은 그 이상이다. 해마다 정읍에 간다. 남편의 학회 모임 장소가 정읍이고 우리는 여행 삼아 따라간다. 우리는 끊임없이 걸으며 바쁘게 그 도시의 모든 것을 보려 하는 여행자이다. 정읍은 해마다 오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하나씩 볼 수 있다. 느리게 보기에 더 깊이 보인다. 어린 시절에 다섯 개의 공깃돌을 던지고 하나씩 줍듯이, 정읍이 가진 보석 다섯개를 하나씩 찾는다.

악학궤범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흐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를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가논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에는 정읍사(井邑詞)가 있다. 오래전에 행상을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몸이나 편하게 다니게 해달라고 달에게 축원하는 백제 여인의 마음이 담겨있다. 정읍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백제 지역에서 유행하던 가요였단다. 경덕왕 때 이 지역의 이름이 정읍이 되었으니 정읍사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잔잔한 마음이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여인이 바람대로 남편은 잘 돌아왔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정읍에는 최치원 선생을 모신 사당도 있다. 고운 최치원은 태산군(정읍)에 태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고, 선생을 모셔 「태산사」라는 사당이 만들어졌다. 그 후에 조선시대 숙종이 사액을 내려 『무성서원』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무성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광풍에도 존속되었다. 무성서원에 도착하여 처음 만나는 홍살문은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말하는 것 같다. 안동의 서원들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강당에 앉으면 논어의 구절이 쓱쓱 머리에 박힐 것 같은 아주 기분 좋은 곳이다. 무성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홉 개 사원 중의 하나이다. 기대했건만 태산사의 문은 닫혀있어 최치원 초상을 볼 수 없다. 최치원 선생은 공자가 말하는 군자임이 틀림없다. 배움을 익히고 그것을 현실정치에 반영하려 노력했다. 욕심 많은 진골 귀족의 반대로 중앙정치에서는 노력이 꿈으로만 남았지만, 선생은 태산(정읍), 천령(함양), 부성(서산)의 태수를 하면서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다. 함양 상림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숲으로 범람하는 강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 선생은 인공 숲을 만들었다.      

최치원초상 채용신 1924

 정읍은 쌍화차가 유명하다. 쌍화차가 한 지역의 특별한 음식도 아닌데, 쌍화차 거리가 있는 것이 신기하여 그 이유를 찾아보니 정읍이 유명한 지황 생산지더라. 지황은 생으로는 생지황, 말린 것은 건지황, 술에 담가 쪄서 말리기를 아홉 번 반복하면 숙지황이다. 무성서원이 있는 칠보농협이 지황으로 숙지황을 제조한다. 숙지황과 작약, 당귀, 천궁, 황기, 계피, 감초, 생강, 대추가 주재료라서 숙지황 제조 지역인 정읍에 쌍화차 거리가 만들어졌나 보다. 한의학의 중요한 처방인 원기 회복에 좋은 쌍화탕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한잔의 쌍화차로 마신다. 여러 번 정읍 발걸음을 한 끝에 처음으로 쌍화차를 마신다. 첫맛도 두 번째 맛도 한약 맛 그 자체이다. 결국 설탕 두 스푼을 넣어서 달달하게 마셨다. 내 입맛은 달달한 대추차에 길들여져 쌍화차도 달달하길 바랐나 보다. 진한 쌍화차 한 잔에 음양의 조화가 몸속 깊이 퍼진다.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노래가 전해지고, 최고의 학자 최치원이 다스렸고, 중요한 한약재가 생산되는 정읍이다. 井邑이라는 이름답게 물도 많았고 농사도 잘 지어 구한말에 탐관오리가 수탈하기 아주 좋은 곳이기도 했다. 결국 고부군수 조병갑의 착취 끝은 농민반란으로 이어졌고, 그 반란은 정부군을 무찌르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혁명으로 기록되었다. 동학농민군은 외세의 개입으로 일본군에 처절하게 쓰러지긴 했지만, 스스로 일어서 조선 왕실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고, 근대적 개혁이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황토현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죽창을 든 농민군의 함성이 들리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에서는 사발통문을 돌리던 농민군의 비장한 얼굴이 보인다. 동학농민군이 실시한 개혁대로 역사가 진행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찬란하게 빛났을 것이다. 아마 일본은 그것이 두려웠을 테고, 결국 우리 땅에 군대를 들여보냈다. 어쩌면 조선은 외세의 개입보다 농민이 일어선 것이 더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외세에 쉽게 길을 내주자 그 길을 통해 조선왕조도 빠르게 망하고 말았다.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전멸했듯이.     

 시월의 정읍은 구절초가 한창 이쁘게 피었다. 그리고 한 달 후면 내장산이 빨갛게 불타오를 것이다. 오래전에 나름 일찍 출발한다고 일곱 시에 내장산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절정’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꼈다. 내장산을 10km나 두고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갔고, 오랜 시간 끝에 힘들게 도착한 내장산 입구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평하는 마음을 누르고 내장사에 도착했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이래서 ‘절정’에 와야 하는구나 싶었다. 내장산이 온통 빨갰다. 그 모습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마음속으로 다음 해에도 와야지 생각했지만, 정읍 여행의 일정이 단풍철을 비껴간다. 오늘 아쉬운 마음에 단풍이 들기 전의 내장산을 찾는다. 호수에 비친 내장산을 바라보며 호수의 색이 빨갛게 물드는 상상을 해본다.     

 정읍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소도시가 풍기는 한적함도 좋다. 식당에서 길에서 관광지에서 만나는 정읍 사람들의 한결같은 친절도 좋다. 그들의 따스함이 내 마음에 스며든다. 내년에는 정읍 여행이 칠월이면 좋겠다. 뜨거운 햇살을 받은 태인 피향정에 가득 핀 연꽃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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