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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Oct 02. 2023

돌과 물과 사람의 나라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 유적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은 앙코르 와트였다. 차오(양조위)는 수 리첸(장만옥)을 잊지 못하고 거대한 돌 사원에 와서 그녀를 사랑했던 마음을 돌기둥에 말하고 풀로 구멍을 막았다. 그의 비밀은 앙코르 와트 돌기둥에 봉인되었다. 돌과 물의 도시인 앙코르 와트 지역은 시작부터 기대되는 여행이었다.

<화양연화> 마지막 장면

 캄보디아 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뱀들의 여왕이자 용왕의 딸인 소마 여왕이 지배하던 땅에 인도 청년 카운디나가 나타나 전투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소마와 카운디나가 결혼하자 용왕이 물을 모두 마셔 잠겨있던 땅을 꺼낸다. 학자들은 인도인들이 캄보디아까지 들어와 토착세력과 대결 후에 결합했다고 말한다. 크메르족은 힌두교 신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영광을 돌로 만든 신전에 기록했다. 특이한 점은 신전은 돌로 만들고, 왕궁은 나무로 만들어 현재는 오로지 신전만 남아있단다. 크메르족은 특히 시바 신을 숭배했다. 그들은 시바 신의 남근인 링가를 만들고, 아내 파르바티의 자궁 모양인 요니를 만들어 시바 신에게 바쳤다. 시바 신은 파괴의 신이지만 또 창조의 신이다. 무너진 사회는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새 생명은 탄생한다. 크메르족의 기질에 온순한 비슈누 신이나 인드라 신보다 시바 신이 더 어울리나 보다. 신전마다 박공에 시바 신의 신화가 세밀하게 새겨져 있다. 우리는 돌에 새겨진 역사를 통해 시바 신뿐만 아니라 선한 신과 악신이 뱀을 돌려 젖의 강을 휘저어 비슈누 신이 도덕과 질서가 창조되는 신화도 알 수 있다. 물의 요정 압사라는 벽마다 새겨져 신전을 위해 여전히 춤을 춘다.

 압사라 춤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부산 <아세안 문화원>에서 캄보디아의 달이 있었는데, 큰 행사로 치러지면서 캄보디아 음식과 다양한 어린이 체험이 있었고, 주한 캄보디아 대사 부부가 와서 그날을 더 빛내주었다. 로비 무대에서 압사라 춤과 다른 전통춤을 봤는데, 화려하게 치장된 무녀의 춤사위는 내가 본 최고로 아름다운 무용이었다.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신전에서 만나는 압사라의 조각은 내 눈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걸음 뗄 때마다 발목에서 울리는 찰랑거리는 발찌 소리, 우아하게 꺾어지는 손가락, 기품이 가득한 표정. 크메르루주의 대학살을 겪으면서 압사라 무녀와 기록은 사라졌지만, 돌이 남긴 기록이 다시 살아 우리에게 압사라 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기대하고 설레던 압사라 춤은 보지 못했다. 강행군의 하루 일과에 저녁은 쉬고 싶다는 가족들의 원성에 나의 바람은 묻혀버렸다.

 크메르족은 신화만 돌에 남긴 것이 아니다. 그들의 찬란한 역사도 앙코르 와트 회랑이나 앙코르 톰의 바이욘 사원의 외부 회랑에 빼곡하게 조각했다. 그들은 돌의 힘을 믿었다. 백 년 가까운 프랑스의 식민 지배와 베트남 전쟁(미국은 베트남과 국경을 맞댄 캄보디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폭탄을 투하했다)과 들판을 시체로 메운 크메르루즈의 폭정에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미리 알았다. 그 무엇보다 돌은 강하다. 때론 부처의 얼굴로, 때론 강력한 왕의 얼굴로 보이는 사면상을 만들어 신전에 새겨진 역사를 보호했다.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 당시 학살의 수는 200만 명에 달한단다. 친미파를 색출한다는 명목하에 자행된 폭정은 지식인을 모두 죽였다. 지금의 캄보디아가 지식인/기술자가 없어서 가난에서 못 벗어난다는 말도 있다. 내가 본 캄보디아 사람들의 얼굴에는 가난이 보이지 않았다. 수수한 옷차림에 밝게 웃는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서슴없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한 마디지만 강렬한 한방으로 우리를 반긴다. 툭툭 기사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한국말을 더 잘한다. 한국•일본•중국 구별이 어려울 법도 한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한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들은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동북아 삼국의 사람들을 구별하나 보다. 앙코르 와트 사원 앞에는 여러 언어를 쓰는 가이드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유창한 한국어로, 발음 좋은 영어로, 그 외에 다양한 언어로 그들의 역사를 안내한다. 신화와 역사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좋은 장소에서 멋진 사진을 찍어준다. 그들의 모습은 여유 있고 낙천적이었다. 씨엠립에서 보낸 나흘동안 내가 본 캄보디아인들은 누구보다 영리하고 친절했다. 내가 볼 때 그들은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크메르족이 거둔 승리의 역사는 지금의 캄보디아인들의 피에 흐르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프랑스의 지배를 구십 년이나 받았지만, 왕은 끊임없이 독립을 시도했고, 결국 스스로 독립을 이뤄냈다. 풍요롭던 캄보디아가 친미파의 쿠데타와 크메르루즈의 폭정과 공산화로 초토화되었지만, 23년 만에 왕정이 복고되고, 입헌군주제가 되었다. 시하누크 왕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벗어나려 끊임없이 노력했듯이, 결국 내전에서도 승리했다. 시바 신이 분열된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재창조하듯이, 천 년 전의 크메르 왕국의 왕들이 전쟁을 승리하고 신전을 바쳤듯이, 캄보디아는 승리의 역사의 행진이다.

 세계에서 네 번째, 아시아에서는 제일 큰 톤레삽 호수 근처에서 크메르 제국은 시작되었다. 점차 영토가 확대되면서 지금 앙코르 와트 지역으로 세력이 넘어왔다. 톤레삽 호수와 멀어졌지만, 씨엠립은 사방 천지가 물로 가득한 도시이다. 물은 많지만, 물이 말라버릴 수 있는 건기를 위하여 크메르족의 왕은 끊임없이 저수지를 만들고 목욕탕을 만들었다. 왕은 신을 위해서는 돌로 신전을 짓고, 백성들을 위해서는 돌로 저수지를 만들어 백성들을 살폈다. 호수와 저수지의 물들은 캄보디아인의 얼굴처럼 잔잔하다. 평온 그 자체, 흔들림이 없다. 그들은 툭툭도 오토바이도 절대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 오토바이에 네 명이 타고 있는 모습은 처음에는 아찔하고 위험해 보였다. 심지어는 어린이든 어른이든 운전자 말고는 아무것도 잡지 않는다. 여유 있게 뒷좌석에 앉아 손을 내리고 풍경을 감상한다. 교통사고가 많은 나라에 사는 내 눈에는 깜짝 놀랄만한 광경이다. 자세히 보다 보니 그들은 절대 빠르게 가지 않는다. 천천히 운전하면서 시야와 안정을 확보한다. 그들은 얼굴만 평온한 것이 아니라 행동도 편안하다.

 씨엠립의 거대한(앙코르) 여행은 바켕 사원의 석양에서 마무리했다. 저 멀리 톤레삽 호수도 보이고, 발아래에는 밀림이 무성했다. 더 멋진 석양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석양마저도 강렬하지 않고 잔잔하게 내려앉는다.

 아시아 동쪽 끝의 작은 나라는 지금 K-문화를 세계에 끊임없이 확장한다. 한자문화권에 있으면서도 한글과 우리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킨 우리 민족다운 힘이다. 캄보디아도 곧 있으면 천년 전의 크메르족의 영광을 이어받아 세상에 그 뿌리를 뻗칠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타 프롬에 유적을 감싼 천년 나무처럼. 씨엠립을 떠나며 그날을 기대한다.

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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