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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Oct 21. 2023

빅토르 위고와 프랑스혁명

_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막은 내렸지만, 일어설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귀에는 ‘민중의 노래’가 울렸고,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 우리말로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빅토르 위고는 제목을 왜 ‘비참한 사람들’이라고 했을까.      


 청소년기에 읽었던 일본 만화 『베르사이유 궁전』은 나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왕비인 마리 앙뜨와네트, 스웨덴 귀족인 페르센, 여자이지만 장교인 오스칼 드 잘즈. 같은 해에 태어난 세 명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이다. 1789년 7월 14일에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루이 14세의 화려한 영화를 뒤로하고 루이 15세 때부터 프랑스 부르봉 왕가는 기울기 시작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사치와 향락의 음악 소리만 흘러나왔고, 왕이든 귀족이든 성직자든 나라 걱정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곪아 터진 상처는 걷잡을 수 없이 회복 불능의 상태였다. 그렇게 시민 계급에 의한 프랑스 대혁명은 시작되었다. 프랑스혁명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읽고 또 읽었다. 지금도 7월 14일이 되면 자연스레 프랑스를 떠올린다. 처음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도 첫 번째로 찾은 곳이 베르사유 궁전이었고, 두 번째로 찾은 곳이 바스티유 감옥이었다.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마리 앙뜨와네트가 동화처럼 만들어놓은 베르사유 궁전의 ‘왕비의 촌락’을 보면서 파티와 소꿉놀이에 빠진 왕비의 최후를 생각했다. 풍성한 갈색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채, 단두대에 목을 내민 아름다운 왕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사람의 최후이다. 프랑스는 왕정 폐지와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 그리고 다시 부르봉 왕가의 왕정복고와 몰락을 거치며 혼란이 계속되었다. 빅토르 위고는 이 변혁의 시대를 살면서 민중의 이야기를 『레 미제라블』에 담았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두 개 읽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와 『레 미제라블』이다. 두 권 모두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그는 서른 살에 파리의 역사를 담은 『노트르담 드 파리』(1831)를 발표했고, 예순한 살에 『레 미제라블』(1862)를 발표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니 『노트르담 드 파리』까지 생각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나서 한 이 년간 『노트르담 드 파리』에 빠져서 책도 읽고, 뮤지컬 인기곡을 매일 들었다. 문득 빅토르 위고가 어떤 마음으로 두 작품을 썼을까 생각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목차만 봐도 재치 있다. 소설의 시작도 소란스럽고 가벼웠으며 중간중간 엉뚱한 상상력을 넣어 읽는 내내 슬프면서 재미있었다. 하지만 『레 미제라블』은 시작부터 어둡고 무거웠다. 소설을 덮었을 때는 침묵의 무거움에 빠진 기분이었다. 두 소설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문학가이자 정치가인 빅토르 위고는 젊었을 때 프랑스 대혁명에 매료되어 민중의 힘을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클로팽으로 대표되는 민중(거지집단이지만)은 의리도 있고, 순수하다. 하지만 지배층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이기적이며 무책임하다. 결국 주교 프롤로와 근위대장 페뷔스가 가여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죽인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는 콰지모도가 투박한 질그릇 꽃병과 금이 간 수정 꽃병을 비교하며 자신의 마음을 에스메랄다에게 전하는 내용이다. 화려하고 잘생긴 페뷔스지만, 속물적이고 신의가 없으니 금이 간 수정 꽃병이고, 귀머거리에 못생긴 자신은 진심이 담긴 질그릇 꽃병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레 미제라블』에서의 민중은 혁명에 뒷전이다. 프랑스혁명은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어 프랑스는 백여 년간 혼란스러웠다. 빅토르 위고는 1830년 7월 혁명에서 왕정이 독재하는 것을 보았고, 1848년 2월 혁명에서 부르봉 왕가가 완전히 무너지고 나폴레옹 3세가 공화정을 수립할 때도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1851년에는 나폴레옹 3세가 황제가 되는 것을 반대하다 망명했다. 『레 미제라블』은 19년간의 망명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 집필한 소설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나 팡틴을 가장 멸시하고 학대한 것은 귀족이 아니라 민중 계급이었고, 오히려 주교와 청년 귀족들은 그들에게 힘이 되었다. 아마도 빅토르 위고는 민중이 혁명을 뒷받침해주지 않아 왕정(王政), 제정(帝政)이 자꾸 난립한다고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에서의 ‘비참한 사람들’은 장발장이나 팡틴이 아니고 바로 혁명에 스스로 뛰어들지 않는 비겁한 민중이라 생각한다. 불쌍한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장 발장과 팡틴은 구제받았고, 전혀 비참하지 않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를 보고 나서 소설 『레 미제라블』을 다시 펼친다. 오래전에 읽어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며 빅토르 위고의 안타까운 마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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