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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Oct 27. 2023

익산여행 추천사

'처음'이 잘 어울리는 곳

  2023년은 익산방문의 해란다. 익산은 나의 고향이다. 곰곰이 눈 감고 생각해 보니 익산(益山)은 ‘처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이다. 그 도시는 품은 것에 비해 덜 알려졌다.

가톨릭 프레스 사진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대성전에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성상이 세워졌다는 소식이 뉴스매체마다 쏟아졌다.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 바티칸에 세워진 것은 처음이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두 팔을 벌린 석상의 모습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익산에서 김대건 신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845년에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 배를 타고 금강을 거슬러 익산 웅포면으로 오셨다. 김대건 신부가 조선에서 배에서 내려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지금의 나바위 성지이다. 천주교가 탄압받던 시기였기에 김대건 신부는 이듬해에 체포되었고 순교하였다.

 나바위 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중요한 역사적 장소로 1897년에 성당이 건립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 거부에 앞장섰으며 6·25 전쟁 때도 미사가 끊이지 않은 유일한 본당이라고 한다. 김대건 신부의 첫발이 신성한 힘이 되어 나바위 성지를 보호하나 보다. 나바위 성당은 한옥의 본당과 고딕 양식의 종탑이 있는 작은 성당이다. 이런 역사를 모를 때도 동서양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아서 자주 찾곤 했었다. 아마 지금 나바위 성당을 찾게 되면 내 마음속에 더 큰 성당이 되어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익산시 황등면을 지나다 보면 도로가에 돌 공장이 많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등산은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황등산에서 나온 황등석은 건축가들이 모두 인정하는 아주 좋은 돌이란다. 청와대 영빈관의 거대한 돌기둥은 하나의 황등석으로 만든 기둥이다. 청와대를 관람하다가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황등의 돌 공장들이 더 멋져 보였다. 이렇게 익산에는 좋은 돌이 많고 그런 돌을 다룰 줄 아는 석공이 많다. 백제 무왕이 부여에서 익산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맨 처음 한 일은 미륵산 앞에 절을 지은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거대한 목탑이 대세였다. 경주에 있는 황룡사지에서 나온 치미를 보면 황룡사라는 절과 9층 목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목탑이라 그 흔적만 남아있어서 아쉽다. 익산 미륵사는 가운데 큰 목탑을 두고 양쪽에 석탑을 두었다. 이때 사용한 돌이 황등석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석탑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솜씨 좋은 석공은 돌을 나무처럼 다듬어 목탑 같은 석탑을 만들었다. 목탑을 세울 때 상부를 지지하기 위해 가운데 큰 나무 기둥을 만드는데, 미륵사지 석탑은 그 기둥(찰주)까지 그대로 따라 했다. 황등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석탑이다. 천오백 년을 견딘 미륵사지 석탑은 20여 년의 복원을 마치고 마치 귀부인처럼 은백색의 드레스를 펄럭인다. 그렇게 익산 출신 석공은 실력이 좋았나 보다. 통일신라시대에 불국사가 지어질 때 익산 출신 석공 아사달은 석가탑을 만들러 갔고,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불국사를 찾은 아사녀는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다 호수에 빠져 죽었다.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익산 미륵사지를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금으로 만든 사리장엄구와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다. 사리봉영기는 얇은 금판인데, 미륵사 창건과정이 새겨져 있다. 또 금동으로 만든 사리 외호와 내호를 보고 있자면, 그 영롱한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일제 강점기에 문화재 수탈에서 벗어나 지금 우리에게 남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탁월한 금속 예술을 보여준 그 손은 이제 현대로 넘어와 보석을 세공한다. 197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귀금속 보석공업 단지가 익산에 문을 열었다. 익산은 보석의 도시이다. 보석박물관이 있고, 보석 축제가 열린다. 여러 원석이 전시된 보석박물관은 한 번쯤 둘러보기 좋다.     

 붓끝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는 캘리그래피가 익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1989년에 동양 최초로 원광대학교에 서예과가 만들어졌다. 그 뒤로 여러 대학에 서예과가 개설되면서 아쉽게도 과거의 명성은 과거에 머물고 원광대학교 서예과는 수년 전에 폐과 되었다. 원광대학교 서예과를 졸업한 김종건 작가는 ‘필묵’이라는 캘리그래피 회사를 만들었다. 25년이 지난 현재, 캘리그래피는 언제 어디서나 배울 수 있고 글씨체도 다양해지고 있어 대중 예술로 자리 잡았다. 캘리그래피는 그리스어 칼리그라피아(kalligraphia)에서 따왔다.      

익산시청 홈페이지

 ‘처음’은 아니지만, 가장 오래된 것도 있다. 익산은 천혜의 자연을 가졌다. 남으로는 만경강이, 북으로는 금강이 익산을 감싸며 서해로 흘러간다. 그래서 일찍이 농사가 발달했고,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만경강 근처의 춘포에서 출토되었다. 널따란 호남평야는 일제 강점기에 쌀 수탈의 상징이 되었다. 익산 들판에서 수확되는 곡식은 일본으로 넘어가기 바빴다. 1914년에는 익산역과 군산역 사이에 춘포역이 개통되었다. 춘포역은 당시에 이름도 일본식으로 불려 대장촌역(大場村驛)이라 했다.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내가 자라던 시절에도 그 이름은 그래도 유지되어 ‘대장촌리’라고 불리다가 1996년에서야 ‘춘포’라는 진짜 이름을 되찾았다. 지금은 기차가 멈추지 않는 폐역이 되었지만, 춘포역은 가장 오래된 역사(驛舍)로 역사(歷史)에 남았다. 춘포역 외에도 일제 강점기 건물들은 근대문화로 남아 당시의 역사를 보여준다.     

 익산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모든 시대를 가지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지만, 북적거리지 않고 한적하다. 익산을 방문한다면 여행의 마무리는 가톨릭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 정양원의 정원이 좋겠다.(전화예약 필수) 원래는 개방되지 않은 곳이었으나, 코로나19가 극성일 때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빗장을 풀었다. 햇볕이 따사로운 가을날. 익산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자.

*익산 관광 추천

- 왕궁 5층 석탑

- 웅포 입점리 고분

- 고도리 석불입상

- 근대역사관

- 가람 이병기 생가와 문학관

- 교도소 세트장

- 공룡테마공원

- 익산 아트센터

- 멋진 자연 전망의 카페들

- 맛있고 저렴한 식당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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