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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Nov 02. 2023

신라, 바실라 그리고 사산조 페르시아

경주에서 만난 서역

“바실라는 평범한 도시가 아니었다.

선녀로 가득 찬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깨끗한 물이 사방에서 흐르고 있었으며,

정원에는 향기로운 튤립과 히아신스로 가득했다.

모든 길과 장터는 잘 단장되어 있었다.     

도시의 냄새가 너무나 향기로워서

사람의 넋을 잃게 하였다.

모든 길과 거리는 반짝거렸으며,

풍악 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졌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바로 신라(경주)이다. 2009년의 가을날, 이슬람 학자인 이희수 교수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란에서 온 메일에는 이란의 고대 서사시 『쿠쉬나메』에 나오는 ‘바실라’가 아무래도 한국의 고대국가 ‘신라’인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 이희수 교수는 즉시 테헤란으로 날아가 연구에 합류했고, ‘바실라’가 ‘신라’ 임을 증명했다. 신라는 이만리 떨어진 서역에서 아름다운 도시로 서사시에 등장했다.      


 서역은 중국의 서쪽 지역을 말한다. 주로 중앙아시아부터 더 서쪽 너머의 지역을 서역이라고 하고 서역에 사는 사람을 서역인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예성강 벽란도에는 서역인들이 드나들며 무역하였다. 그들이 ‘고려(고리)’를 부른 이름이 지금의 ‘꼬레’가 되었다는 것은 상식처럼 널리 퍼진 이야기이다. 고려시대에 무역이 더 활발하긴 했지만, 이제 서역과의 교류에 대한 역사는 다시 써야 한다. 고려 이전에, 헌강왕 시절의 처용보다 더 오래전에 문무왕 때 이미 서역인이 신라에 머물렀다.     

 『쿠쉬나메』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구전되던 서사시를 11세기에 이란학자 이란샤 이븐 압달 하이르가 문자로 정리하였다. 『쿠쉬나메』는 아주 아름다운 서사시로 구절구절 찬사가 가득하다. 『쿠쉬나메』를 읽어 보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가져다 노래한 느낌이다. 『쿠쉬나메』는 ‘쿠쉬의 책’이라는 뜻이다. 쿠쉬는 주인공 아비틴과 대립하는 중국의 왕으로 용모가 끔찍하고 무섭게 생겼다. 페르시아 왕자인 아비틴은 쿠쉬를 피해 바실라로 도망한다. 마음씨 좋은 바실라의 왕 태후르는 쿠쉬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아비틴을 받아준다. 아비틴은 공주인 프라랑을 사랑하여 그녀와 결혼한다. 아비틴과 프라랑은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 왕정 수복을 꾀하지만 결국 아비틴은 죽고 만다. 아비틴과 프라랑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페리둔이 장성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내용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산조 페르시아의 끝 무렵에 이슬람 세력과 항쟁을 주도하다 내륙으로 몸을 숨긴 마지막 왕자 피루즈와 시기가 일치한다. 이 시기의 신라는 선덕여왕-태종무열왕-문무왕의 시대이다.      

 동궁과 월지(옛 이름은 안압지)의 발굴 과정에서 유리컵이 발견되었다. 천오백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투명하고 아름답다. 유리는 모래로 만들기 때문에 사막 지역인 서남아시아에서 발달했다. 국립 경주박물관 월지관 입구에는 커다란 공작무늬돌이 있는데, ‘입수쌍조’가 새겨져 있다. ‘입수쌍조’는 하나의 나무를 두고 두 마리의 새가 마주 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양식은 좌우대칭을 이루는 페르시아 스타일이다. 너무 오랜 세월에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직아이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입수쌍조’ 양식은 동궁과 월지에서 발견된 수막새에도 새겨져 있다. 신라시대 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던 곳인데, 동궁에서 외국 사신을 맞이하여 연회를 베풀기도 했단다. 『쿠쉬나메』의 아비틴이 신라에 와서 머문 곳이 동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설화는 역사가 되어 아비틴 일행이 가져온 유리잔이나 입수쌍조 문양이 역사적 증거로 쓰인다. 학자들은 『쿠쉬나메』에서 태후르는 문무왕이고, 태자인 가람은 신문왕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쿠쉬나메』의 한국어 번역을 지원한 곳이 가구회사 ‘가람 컴퍼니’이다. 그리고 태자의 이름은 ‘가람’이다. 우연인지 신의 개입인지 ‘가람’이라는 이름이 시간을 초월하여 겹친다.     

바실라 카페 사진

 경주에서 유명한 카페 중의 하나가 하동 저수지 앞의 「바실라」이다. 해바라기 철에는 해바라기가 노란 자석이 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바실라 카페는 엄청난 크기와 아름다운 정원에 눈길이 가기 쉽지만, 세세히 살펴보면 『쿠쉬나메』에 충실하게 외관과 실내장식을 했다. 건물은 2017년 경주시 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웅장하다. 마치 바실라의 왕궁처럼 지붕도 높게 지어졌고, 기와는 입수쌍조 수막새로 마무리했다. 선반은 이슬람풍 그릇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경주에 하나뿐인 ‘얼굴무늬 수막새’ 조형물이 마치 태후르의 미소처럼 웃고 있다. 바실라 카페를 찾아 『쿠쉬나메』의 구절과 맞춰보는 시간은 모험가가 된 듯한 재미를 주었다.    


“왕의 이름은 태후르이며,

아주 현명하고 친절합니다.

왕은 신에게 기도하며,

결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서울의 공영자전거 이름이 ‘따릉이’라면 경주의 공영자전거 이름은 「타실라」이다. 덧붙이면 부산은 ‘타반나’라고 부른다. 따릉이나 타반나에 비해 타실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경주 사투리로 ‘타실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이름을 창안한 사람은 바실라에서 따오지 않았나 싶다.     


 역사와 전설의 경계 사이에 언제나 틈이 있다. 사실과 설화가 얽히고 얽혀 둥그렇게 만든 이야기는 공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한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계림, 대릉원, 천마총, 분황사 모전석탑, 국립경주박물관. 천년의 신라 역사와 또 천년의 역사를 더 해 이십일 세기의 경주는 눈을 돌리는 곳마다 보물창고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이국의 서사시를 더한다. 경주에서만 찾을 수 있는 서역의 서사시 『쿠쉬나메』를 찾는 여행을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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