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연필과 종이 사이에서
연필을 깎는 시간은 온 우주가 연필 끝에 집중된다. 첫발을 떼는 아기의 발처럼. 잠시 1초라도 딴생각하면 여지없이 뚝 부러지고 만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일 중에 가장 섬세한 작업이다. 나는 그 시간이 좋다.
오래전에 연필 인물화를 배웠다. 급하고 얼렁뚱땅한 성격으로 수강생 중에서 가장 못 그렸다. 연필은 깎다 보면 수시로 부러졌고, 연필 깎기가 싫어서 그림에 집중도 못 했다. 세밀하게 바탕을 깔아야 함에도 비가 내리듯 빗금이 그어진 내 그림을 보다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형편없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3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배우러 다닌 나도 대단하다. 오래 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다른 수강생들은 초반에 잘 그렸고 스스로 만족하여 자체 하산했다. 나는 그들보다 더뎠지만, 오래오래 연필을 잡는 힘이 내 몸에 밸 때까지 열심히 다녔다. 연필인물화를 적당히 잘 그려낸 후에는, 흑색 연필에서 한 단계 나아가 수십 가지 색연필로 인물화를 다양하게 그리게 되었다.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오랫동안 다니던 인물화 반을 그만두었다. 아쉬움이 남아 태교로 연필 인물화를 이어갔다. 연필을 깎아야 하는 불편함을 넘어 오랫동안 연필 인물화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샤프에 있었다. 연필을 너무 못 깎는 나를 처량하게 여긴 강사님이 좋은 샤프를 추천했고, 샤프를 쓰다 보니 연필 깎는 일에서 해방되었다. 역시 신문물은 참 좋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아이들이 좀 커서야 다시 샤프를 잡았고, 내 아이들이나 친구 아이들 얼굴을 그려주곤 했다. 어느 날 샤프로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샤프 특유의 번들거림과 깊이가 없는 검은색이 눈에 거슬렸다. 그때부터 다시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다시 깎는 연필은 신세계였다. 걱정했던 것보다 연필을 잘 깎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조급하고 덤벙대는 성격이 차분해진 것도 한몫했다. 연필을 깎는 순간은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에 빠진다. 오로지 연필만 바라보며, 뾰족하게 깎는다.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수를 위해 대장장이가 뾰족한 창을 만들 듯이. 오늘도 아들 얼굴을 그리려고 연필을 깎다 보니 행복하다. 연필은 비우고, 종이는 채운다. 그림은 비움과 채움의 미학이다.
지난가을에 타계하신 한국 추상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의 전시가 부산에서 있었다. 박서보 화백이 돌아가시기 전 수개월간 찍어둔 다큐멘터리를 KBS 「다큐인사이드」에서 방송했다. 화가라고는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만 알았고, 추상화의 세계는 너무 어려워 눈길도 주지 못했다. 그런 나였으니, 화백의 이름도 처음 듣고, 단색화는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눈빛을 반짝이며 인터뷰하는 박서보 화백의 모습에 끌려 끝까지 보게 되었다.
단색화는 가끔 서양의 모노크롬과 같이 이야기된다. ‘서양의 모노크롬이 형태와 색채를 절제해 하나의 색으로 작가의 의도를 표현해 내는 미니멀 아트라면 단색화는 표현의 예술이 아니라 생각의 예술, 여기에 차별점이 있다는 것’ (다큐인사이드 내용) ‘생각을 토해낸 것을 이미지화하는 것이 서양미술이라면 단색화는 작가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작가의 정신이 투영되는 것’ (다큐인사이드 내용) 모노크롬이 채움의 그림이라면, 단색화는 생각을 토하고 비움의 미학이다. 또한, 6·7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침묵시위를 벌이던 것처럼 단색화는 화가들이 끊임없는 반복적인 작업으로 자기를 비우며 저항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방송을 통해 설명을 들어도 비움 저항 이런 의미를 모르겠다. 한두 가지의 색깔을 사용한다는 공통점 말고는 모노크롬(Mono chrome)과 단색화(Dansaekhwa)의 차이를 알기도 어려웠다. 방송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니 마침 부산에서 전시가 있었다. 부랴부랴 그 단색화란 것을 보러 다녀왔다. 박서보 화백이 남긴 단색화를 눈으로 보고 있노라니 텔레비전에 말하던 비움의 의미가 느껴지며 내 마음도 텅 비워지고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단색화 중에서도 박서보 화백의 묘법(描法)은 더더욱 비우고 또 비운다. 노구의 화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팔 질로 그가 가진 욕심을 내려놓는다. 화백은 어린 자녀가 열 칸 공책을 쓰는 모습에서 묘법에 착안하였다고 한다. 네모 칸 안에 글자 한 자를 써넣어야 하는데, 네모 칸 밖으로 삐죽 나온 글씨를 연필로 빗금을 그으며 지우는 모습에서 화백은 체념과 포기를 찾았다. 박서보 화백은 젊은 시절부터 진부한 미술 국전을 거부하고, 새로운 화풍을 찾기 위해 도전하고, 젊은 화가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번번이 벽에 부딪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박서보 화백은 단단한 차돌이었고, 좌절의 순간에도 언제나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세상일에서 물러난 화백은 비로소 그림에만 몰두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생기는 마음속 욕망을 포기와 체념으로 자신을 스스로 다스렸다. 보고만 있어도 비워지는 그림 앞에 남편이 해석을 더한다. “바탕색 노랑은 평화와 풍요를, 주색인 회색은 겸손과 절제와 균형을 뜻한다. 가로의 구멍수는 동양에서 완전수라 여겨지는 9개이며, 세로의 구멍수 12는 12궁도, 12달, 12시간 등으로 알 수 있듯이 우주의 운행을 의미한다. 가로 9, 세로 12, 그렇게 생긴 108개의 구멍은 인간의 108 번뇌를 상징하며 이 그림을 통해 화백은 자신의 번뇌를 다 비우고 우주의 안녕과 평화를 염원한 것 같다.” 그림 문외한인 남편의 즉석 해설은 꽤 멋있는 해석이다.
위대한 화백의 정신이 담긴 그림을 보아서일까. 점점 깎여가는 연필톱과 연필심에서 희열이 느껴진다. 절대 부러뜨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집중한다. 마음속의 고민도 그 순간에는 비운다.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숨도 고르며 칼끝만 바라본다. 미세하게 칼끝이 연필과 겹치는 소리만 들린다. 마치 가는 숨을 쉬며 쌕쌕거리고 자는 아이의 숨결같다. 이제 마음과 연필도 비웠으니 하얀 도화지에 수십 가지 색을 더한다. 아직은 아들을 닮은 듯, 안 닮은 듯. 내년에 새로 단장할 아들 방 한쪽에 걸기 위해 연필을 든다. 수십만 번의 선을 반복하며 아들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