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단지에 소금을 담는다. 매일 보는 단지지만 눈길이 소금 단지로 간다. 이 단지는 경옥고가 담겼던 옹기였다. 지금은 천일염을 덜어서 보관한다. 단지가 우리집에 온 지도 벌써 이십 년이다. 크기는 메론만하고, 옹기명장이 만든 이름 있는 옹기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옹기와 다르게 작지만 위풍당당하다. 소금 단지가 오랫동안 싱크대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집 터주대감 같다.
가끔 마당이 있는 집에 장독대가 있으면 그 모습에 반한다. 그저 커다란 장독 몇 개가 햇볕을 받고 있을 뿐인데. 아마 마당 대신 베란다가 있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집에도 옹기가 몇 개 있다. 소금을 담아두는 작은 단지, 조금 큰 단지 그리고 꽤 커다란 항아리가 두 개 있다. 아파트에서 옹기라니. 이것은 한때 남편의 취미였던 막걸리를 담그기 위해 구입한 것들이다. 옹기에 막걸리를 숙성시키면 맛있다고 좁은 집에 두 개나 들여놨었다. 한동안 우리집 거실에는 항아리가 나란히 서 있었다. 술 익어가는 냄새가 날듯말듯, 맛있어질 때가 오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관심과 보살핌을 받던 항아리였지만, 소금 단지 말고는 아직 다른 역할을 못 찾고 비어있다.
나는 대학 박물관에서 잠깐 조교로 일했다. 그때 박물관 1층에는 옹기 특별전을 했었다. 작은 양념통부터 커다란 물항아리, 똥항아리도 있었고, 심지어는 어린이가 죽으면 매장하던 옹기로 만든 관도 있었다. 박물관에서 내 역할은 지역 주민들을 모집하여 여러 곳으로 역사 답사를 다니는 것이다. 대학교가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니 저렴하게 당일치기 또는 일박이일동안 전국을 다닐 수 있어서 인기가 많았다. 나는 학예사 선생님이 결정한 지역의 자료집을 만들고 답사일에 사람들을 인솔하는 일을 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곳은 고창이다. 북방식 고인돌을 보기 위해 어느 가정집 뒷켠으로 갔었다. 우뚝 서있는 고인돌 옆에 옹기들이 무리를 이루며 고인돌과 친구를 하고 있었다. 이십 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햇빛까지 기억한다. 눈부신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던 고인돌과 장독대는 사진처럼 내 마음에 찍혔다. 원래 고창은 작은 굄돌과 크고 두꺼운 덮개돌이 있는 남방식 고인돌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고인돌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높이 세워진 북방식 고인돌은 강화도에 많이 있다. 어쩌면 세력 다툼에 밀려 내려온 북방 민족의 누군가가 이곳에 세웠을지도 모르겠다. 수천 년이 흘러 고인돌의 주인은 뼈 한조각도 남지 않았겠지만, 고인돌만 남아 주인을 기억한다. 이년 전에 고창에 갔다. 그 집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 고인돌을 만났다. 고인돌박물관 로비에 우뚝 서 았었다. 초라하고 작은 집을 지키며 햇빛을 골고루 받던 고인돌이 유리관에 갇혀 있는 모습에 아쉬움도 들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다.(장독대 고인돌은 지금 도산리에 집도 장독대도 없이 혼자 서 있고, 고인돌박물관의 고인돌은 복제품이다.)
옹기는 나에게 특별하고 친근한 존재가 되었다. 박물관 안내는 내 담당은 아니었다. 그러나 옹기가 신기하여 친구들을 불러 자세히 설명하곤 했었다. 아주 커다란 똥항아리에 아직도 똥냄새가 난다고 하면 친구들은 한발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나도 실제로 맡아본 적은 없다. 학예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을 때, 나도 진짜 냄새가 날까 봐 뒤로 한발 뺐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한발 앞으로 나아가 수백 년 묵은 오래된 똥냄새가 정말 나는지 확인해 봤을 텐데, 아쉽다. 문득 지금의 박물관은 어떤 모습인가 궁금해진다. 마음은 언제든 찾고 싶은데, 아직 발끝이 향하지 못했다.
옹기는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간다. 흔하디 흔한 진흙으로 만들고, 깨지면 흙이 된다. 옹기를 구울 때 생기는 구멍으로 안과 밖에 공기가 통하여 음식이 잘 보존된다. 그래서 옹기에게는 ‘숨 쉰다’라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청자나 백자처럼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높은 곳에서 장식하는 것이 아니고 낮은 곳에서 사람들의 쓸모를 돕는다. 그래서 옹기가 좋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쓰임이 있는 것이 아름답다. 나는 사회에 쓸모가 있을까. 사회구성원의 역할은 하고 있지만,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조금 더 의미 있는 존재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고민 중에 찾은 역할은 아이들을 사회에 필요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었다. 세상의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뒤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두 아이를 바른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뜻처럼 쉽지 않겠지만,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고 하지 않던가.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하니 나부터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어둠 속에서 아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고 본인은 가지런하게 떡을 썬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갑자기 내 시선이 우두커니 부엌 뒤편에 서있는 빈 단지로 간다. 역할을 찾지 못하고 비어있는 단지가 쓸쓸해 보인다. 저 단지도 쓸모 있게 만들면 좋겠다. 무엇을 담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생활필수품이던 옹기는 점차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유리 등에 밀려서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무겁고 밀폐가 잘 되지 않은 것도 그 이유이다. 숨 쉬는 옹기가 공기 틈이 없는 밀폐용기에게 밀린 셈이다. 생활의 편리함은 자연에게 무거운 짐을 주기도 한다. 옹기는 다시 흙이 되지만, 플라스틱은 오래 묵혀야 하는 쓰레기이다. 다시 빈 단지를 바라본다. 무엇을 담을까? 그래, 꽃을 담자. 꽃항아리로 쓰면 투박한 질그릇과 화사한 꽃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으로 마음에 꽃향기가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