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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Jan 09. 2024

부산박물관에서

초등방학특강

 아이는 수업에 들어가고 나는 전시관의 유뮬들 사이를 산책한다. 자주 본 유물들이 친숙하게 맞아준다. 오랫동안 즐거운 박물관 나들이였는데, 이런 시간도 마지막이다. 작은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부산 박물관 방학 특강은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방학 선물이다. 빛보다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야 신청할 수 있다. 그만큼 박물관 방학 특강은 꽤 인기가 높다. 방학이 되기 전에 박물관 누리집을 확인하여 접수일을 적어놓는다. 접수 전날부터 호흡은 가빠지고 긴장한다. 아이는 둘. 남편과 나는 환상적인 팀이다. 다행히 한 번 빼고는 언제나 성공이었다. 아이들도 방학 특강을 좋아한다. 부산 박물관 근처에 있는 맛있는 돼지국밥집이나 우동집에서 점심을 먹으니 일 년에 두 번 있는 소풍 같은 날이고, 박물관에서 만들어온 작품은 방학 숙제로 제출하니 일거양득이다.

  부산 박물관은 시립박물관이다. 학예사 선생님은 한정된 박물관의 전시품과 역사 속에서 언제나 다양한 주제로 수업하신다. 내가 참가한 이래 주제가 겹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이들은 학예사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과 유물 만들기 체험을 통해 그만큼의 역사를 알아간다. 마치 어린 시절에 놀던 땅따먹기처럼 말이다. 커다란 테두리 선 안에 조금씩 돌을 옮겨 땅을 넓혀간다. 손길 세 번 만에 돌은 내 작은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 조심스럽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땅이 넓혀갈 때마다 그 땅이 내 땅인 양 기쁘다. 박물관 방학 특강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씩 하나씩 역사를 배우다 보니 아이들의 역사 지평이 넓어진다. 멋진 유물처럼 만들어온 작품들은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이들 방에 트로피처럼 자신을 뽐내며 서 있다. 이런 역사 활동은 책으로 배우는 역사보다 수명이 길다.

 박물관 특강 신청은 나에게 사명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대학) 박물관에 근무했던 경험이라던가, 아이들이 역사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합쳐진 듯하다. 특히 초등 5학년 2학기 사회는 국사 부분이다. 작은 아이가 단원평가에서 100점을 맞고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박물관을 잘 다녀서 내가 역사를 잘하나 봐.” 그 말을 듣고 감동했다. 쪼그만 녀석이 엄마의 노력을 알아주는구나 싶은 생각에. 부산 박물관뿐만 아니라 복천박물관, 부산 근현대역사관, 정관박물관 체험도 다녔고, 어디를 가든 박물관은 꼭 들리는 곳이다. 박물관의 유물은 전부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집중해서 봐도 된다. 유물 하나의 가치만 깨달아도 충분하기에 우리 여행에 박물관-역사관-전시관은 빼놓을 수 없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우리의 역사가 아이들에게 스며들길 바랄 뿐이다.     

 한반도 내의 한정된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이지만 그렇다고 반복되는 유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든 박물관을 들어서면 구석기시대 뗀석기부터 전시되어 있다. 고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발굴이지만, 줄줄이 전시된 비슷한 돌들의 향연이다. 막 떼어낸 돌들을 지나면 돌그릇이 이어진다. 청동기의 비파형 동검과 청동 거울까지는 대체로 구성이 비슷하다. 삼국시대부터는 발달한 문화가 달라서 눈여겨봐야 한다. 부산은 금관가야지역으로 고분 유물이 많다. 하늘과 맞닿은 높은 언덕에 있는 복천동 고분군은 꼭 추천하고 싶은 박물관이다. 부산 박물관에도 그런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가야-신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다.

 특히 부산은 일본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임진왜란, 조선통신사, 왜관, 개항,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독립운동 등의 자료와 기록이 시대별로 잘 전시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쳐 싸운 동래부사 송상현 장군이 치른 처절한 투쟁의 역사가 세 폭의 그림이 있는데, 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 우리가 글로만 배우면 짤막한 한두 줄의 역사일 텐데, (비록 복제품이지만) 그림을 보며 이렇게 가슴에 새긴다. 가끔 부산 박물관에는 특별전시도 있다. 기억에 남는 특별전은 2019-2020년에 있었던 <창령사 터 오백 나한전>이다. 강원도 영월까지 가지 않아도 이렇게 멋진 나한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지금도 익살스러운 나한의 얼굴을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우리는 다시 박물관을 관람한다. 아이들이 배운 것을 나에게 설명해 준다. 그 시간이 즐겁다. 학예사 선생님의 설명을 잘 기억하여 말해주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이렇게 복습도 되니 참 좋다. 가끔 아이들은 다른 박물관에서 부산 박물관과 겹치는 유물을 보면 ‘부산 박물관에서 보았다.’라고 꼭 짚어 이야기한다. 칭찬받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말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폭풍 칭찬을 해준다. 방학 특강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점점 줄어 이웃들 중에는 작년에 우리 아이들 둘, 올해는 작은 아이 혼자만 특강을 신청했다. 초등학교를 끝마칠 때까지 잘 따라주니 고맙다.     

 오늘 아이는 곡옥 목걸이를 만든단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며 주렁주렁 매단 것이 곡옥(曲玉)이다. 지금이야 번쩍 빛을 내는 서양의 보석들에 비해 그 가치가 밀렸지만, 옥이야말로 최고의 보석이었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목소리에는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옥은 은보다 귀한 평가를 받아 ‘금이야 옥이야’라는 말도 있다. ‘옥에 티’라는 비유는 훌륭한 사람이나 물건에 사소한 흠이 있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또 ‘완벽(完璧)’은 흠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화씨지벽’이라는 아름다운 옥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왕의 인장을 옥으로 만들어 옥새라 불렀으니 동양에서의 옥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박물관 마지막 특강의 주제가 마치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 아이가 만들어올 곡옥 목걸이가 너무 기대된다. 올겨울 곡옥 목걸이로 나를 꾸미려고 생각하니, 벌써 옥의 우아함이 나를 감싼다.     


덧말>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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