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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Feb 19. 2024

선덕여왕과 경주를 걷다

선덕여왕이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다(『삼국유사』 善德王知幾三事)

선덕여왕이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다

1. 당태종이 보낸 꽃에는 향기가 없다.

2. 나를 도리천에 장사지내라.

3. 여근곡에 백제 군사가 숨어 있다.


광목에 그린 목단화

  오월이면 첨성대 주변에 모란꽃이 활짝 핀다. 4월에는 튤립, 5월에는 모란, 6월에는 양귀비… 가을에는 핑크뮬리와 해바라기가 서로 시간을 주고받으며 피고 진다. 선덕여왕을 위한 경주시의 배려이다. 모란은 선덕여왕의 꽃이다. 당 태종이 꽃 그림과 씨앗을 보냈는데, 여왕은 그림만 보고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 신하들이 기이하게 여기고 씨를 심어 꽃을 피우니 정말로 향기가 없었다. 여왕은 그림에 나비가 없음은 꽃에 향기가 없는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실제 모란꽃은 향기와 꿀이 많아 벌이 아주 좋아한다. 어쩌면 지금의 모란과는 다른 꽃이었을 수 있을 것 같다. 『삼국유사』를 읽다 보니 선덕여왕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아직 모란꽃은 없지만 봄을 기다리며 경주로 향한다.  

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지 치미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어 딸이 왕위를 계승하니 신라 첫 여왕인 제27대 덕만이 바로 그이다. 시호는 선덕여왕으로 성은 김씨이다.” 선덕여왕은 16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불교를 발전시키고 불교의 힘으로 국가를 안정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황룡사 건립이다. 황룡사 구 층 목탑의 높이가 아파트 30층으로 추정될 정도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치미는 황룡사지에서 발견되었다. 지금은 타고 없어져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치미만 봐도 황룡사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은 두 번 결혼했지만, 자식을 얻지 못했다. 대신에 조카인 김춘추를 발탁하고, 김유신에게 군사를 지휘하게 하고, 자장율사에게 불교를 맡겼다. 정치와 군사와 종교를 통해 신라의 삼국통일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선덕여왕릉은 다른 왕릉보다 크기가 작다. 하지만 소나무가 동그랗게 보호하고 있어서 신성한 기운을 풍긴다. 선덕여왕릉을 한 바퀴 돌며 『삼국유사』를 펼친다. 선덕여왕이 어느 날 ‘내가 무슨 해, 몇 월, 며칠에 죽을 것 같으니, 나를 도리천에 장사 지내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신하들이 어딘지 모르자 여왕은 그곳이 낭산 남쪽이라고 알려주었고, 정말로 예고한 날에 세상을 떠났다. 낭산은 신라에서 신성하게 여기던 곳으로 산보다는 언덕쯤에 해당한다. 신하들은 여왕을 낭산에 장사 지냈다. 진덕여왕과 태종무열왕을 거쳐 문무왕 때 나당연합군이 삼국을 통일했다. 욕심 많은 당나라는 신라마저 멸망시키려고 군대를 보냈다. 문무왕이 명량 법사에게 적을 물리치라 했고, 명량 법사가 선덕여왕릉 아래에 사천왕사를 지어 문두루비법(다라니경을 독송하면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비법)으로 주문을 걸자 서해를 건너던 당나라 배가 뒤집혀 신라는 무사하게 되었다. 선덕여왕 사후 30년 후의 일이다. 불경에 “사천왕사 위에 도리천이 있다”라고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여왕의 신령함을 알았다고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 썼다.      

복원된 사천왕사 탑 기단부
국립경주박물관 녹유신장상벽전

   『삼국유사』의 기록에 “양지 스님이 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을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다. 선덕여왕릉 아래에 있는 사천왕사의 건물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돌 몇 개만 남았지만 다행히  팔부신장의 조각들이 발견되어 복원되었다. 경주시에서는 사천왕사지에 탑 기단부를 복원하여 양지 스님이 만들었다던 팔부신장을 새겨 넣었다. 진짜 팔부신장(녹유신장상벽전)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2층에 있다. 1915년에 조각 일부가 처음 발견되었고 2012년에야 수백 개의 조각을 짜 맞춰 완성하였다니 고고학자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1,500여 년이 흘렀지만, 양지 스님의 조각은 흘러내리는 천의 움직임이 그대로 살아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할 때 빼놓지 않고 꼭 봐야 할 보물이다.      

건천읍 신평리 여근곡

   또 이런 일도 있었다. 636년 겨울에 영묘사 옥문지(연못)에서 개구리가 울자 선덕여왕은 군사를 여근곡으로 보냈다. 군사들이 여근곡에 가니 과연 백제군이 숨어 있었다. 신라군은 백제군을 치고 돌아와 여왕에게 어찌 알았는지 물었다. 여왕은 성난 개구리는 군사의 모습이고, 옥문은 여자의 음부이기에 여근곡에 적이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여근곡은 경주 서쪽의 건천읍에 있다. 선덕여왕을 찾아 나선 길이니 건천까지 차를 달렸다. 계절도 겨울이고 미세먼지도 많아 기대하지 않았지만, 선덕여왕이 말한 옥문의 모습이 보였다. 여근곡 산책길을 걸으니 ‘옥문지’라는 이름의 작은, 아주 작은 샘도 있었다. 여근곡 설명판에는 옥문지가 가뭄과 관계없이 물이 솟아난다고 하는데, 한겨울에도 물이 졸졸 흐른다. 교과서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삼국유사』는 기이하고 신기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적은 일연 개인의 기록으로 치부되었다. 사실과 결과만 가지고 역사를 기록하면 틈이 없다. 『삼국유사』는 틈 사이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전설과 신화를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가 확장되니 『삼국유사』가 참 좋다. 선덕여왕릉에 있는 소나무들이 직선과 곡선의 아름다움이 함께 하듯이. 역사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고, 저런 이야기도 있다.      


  이름은 덕만(德曼), 시호는 선덕여왕(善德女王). 불교를 중흥시켜 백성들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첨성대를 만들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세금 감면이나 가난한 사람들 구휼정책을 펼친 선덕여왕은 이름처럼, 시호처럼 德이 가득한 사람이다. 큼직하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모란이다. 꽃 중의 꽃인 모란처럼 선덕여왕도 왕 중의 왕이 틀림없다. 선덕여왕과 함께 걸은 오늘 하루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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