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가 울려 퍼진다. 하얀 옷을 입은 학생들이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선창 한다. 나도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속 혈관을 타고 흐른다. 우렁찬 소리와 태극기 물결이 하늘을 메운다. 지금 여기는 부산 동래구이다. 기미년 삼일운동 때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동래시장을 중심으로 삼일절 재현 행사에 참여했다.
동래구는 순국선열의 뜻을 이어 1996년부터 <동래 3‧1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개최한다. 동래구-금정구에 있는 고등학생들은 하얀 무명옷과 검정치마와 하얀 머리띠를 두르고 만세운동의 선두에 선다. 마치 105년 전의 학생들이 그랬듯이. 농악단이 꽹과리와 장구를 치며 신명을 이끈다. 행사는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의지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된다. 올해는 동래 일신여학교 출신인 박차정 의사를 내세웠다. ‘박차정, 총을 든 소녀.’ 선배들의 힘을 이어받아 총을 든 후배의 모습이다.
올해는 박차정 의사 순국 80주년이다. 박차정 의사는 1939년에 입은 총상으로 결국 1944년에 돌아가셨다. 일제에 쫓기며 숨어 지내는 신세였으니 제대로 된 치료나 받았을까 싶다. 동래시장과 동래고 사이에 박차정 의사의 생가가 있다. 박차정 의사의 두 오빠도 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 그 집은 동래의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박차정 의사의 아버지는 일제의 무단통치에 비분강개하여 1918년에 자결하였다. 어머니는 항일 운동가 김두봉의 사촌이다. 이러한 가족의 분위기 속에서 삼 남매는 대한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1919년 3.1 운동 당시에 박차정 의사는 열 살이었다. 어린 꼬마의 맑은 눈망울에 독립의 열기가 새겨졌나 보다. 동래 일신여학교(동래여고)를 다니던 열여섯 살 때인 1925년부터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1930년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여자의 몸으로 총을 들고 싸웠다. 결국은 그녀의 열망인 대한 독립을 누리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광복 후에 남편인 의열단 김원봉 단장이 유해를 가지고 와 밀양에 안장했다. 밀양은 김원봉 단장의 고향이라 거기에 모셨겠지만, 김원봉 단장은 북한에서 돌아가셨다.
동구에 있던 일신여학교는 부산 최초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여학생들은 3월 11일에 좌천시장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했다. 3월 13일에는 동래고보 학생들이 동래시장 장날을 맞아 만세운동을 했다. 다시 18일 장날에도 학생들은 만세 시위를 하였고, 19일에는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제 순경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이후 부산‧기장은 이어달리기하듯 장날마다 3‧1 운동을 이어갔다. 구포, 기장, 철마, 일광, 가덕도에서도 장날에 만세운동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부산의 곳곳에서 오늘 삼일절 행사가 열린다.
퍼포먼스까지 마치고 거리 행진을 시작한다. 학생들과 깃발이 먼저 앞서고 주민들이 그 뒤를 따른다. 가는 도중에 누군가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 하면 파도를 타듯 ‘대한 독립 만세’가 물결을 이룬다. 행사장인 내성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정해진 길을 따라 동래고등학교를 지나 박차정 의사 생가도 지나 동래시장으로 발길이 이어졌다. 동래시장 앞 특설무대에서는 풍물 연주와 횃불 점화, 난타 공연, 단막극인 ‘삼정꽃(삼월, 민족정기의 불꽃)’ 공연을 했다. 10시에 시작한 행사는 12시까지 이어졌다. 최근 들어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이 마음을 보태기 위해 찾아와 운동장마다 거리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도 2019년에 처음 동래 독립 만세에 참여한 이후 이번이 세 번째이다. (코로나19로 삼 년간 열리지 않았다) 삼일절만 되면 서로에게 힘을 받고 마음에 애국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스레 동래로 향한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전부터 다닌 삼일절 행사가 익숙하기도 하고, 또 어색한가 보다. 작년만 해도 우렁차게 큰 소리로 만세를 외치던 소리가 많이 작아졌다. 남의 시선이 중요할 때이니 그러려니 한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서 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다. 거리 행진을 하는데 동래시장의 맛있는 음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떡, 튀김, 빵, 족발 등등… 오래된 시장의 낮은 처마는 우리를 이것저것 사라고 부른다. 한두 개씩 산 간식들이 가방에 가득하다. 아침부터 서둘러 나서고 거리 행진까지 했더니 배가 고파 시장에 있는 국밥집에 들어가 돼지국밥을 시켰다. 역시 부산은 돼지국밥이다. 진득한 국물에 배를 채우고 나니 추위도 가신다. 돌아오는 길에 박차정 의사 생가에 들렀다. 단아한 네 칸짜리 마루에 잠시 머물며 박차정 의사의 이야기를 읽었다. 단단한 그녀의 얼굴에서 ‘영원한 향기’가 퍼진다. 마치 마당에 심어진 향나무의 향기처럼.
삼일운동은 단순한 만세운동이 아니다. 국권피탈 후 숨죽여 살던 한민족이 한반도를 들썩이며 들고일어난 경이로운 사건이다. 우리 민족은 간디보다 먼저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대동단결하였다. 그 결과는 일제의 무자비한 폭력과 진압이었고, 또 다른 결과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4.11)이다. 물결은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높은 곳으로 치솟았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가 조상들의 피땀으로 얻은 것임을 안다. 오늘은 더 깊이 고개를 숙이고 감사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