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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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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ro Mar 28. 2024

나를 사랑하는 법

넉 달 전 이곳에 난 이렇게 적었다.


나는 두 어머니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다.

친어머니를 통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장모(난 이 단어가 혀에 감기지 않는다)님을 통해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때만 해도 장모님을 염두에 둔 이별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순서가 바뀔 것 같다.

며칠 전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죽기 전 사람들 하나하나 만나보고 가라고 이렇게 살려주시는 것 같구나."


연로하신 분들의 내일은 예측 불가다.

새해 벽두 고관절이 부러진 이후, 인공관절 수술이 잘 돼 전화위복일 수도 있겠나 싶었는데, 복통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응급실 행, 암 진단 후 장루 수술받은 다음부터 사경을 헤매다가 항암 포기, 사실상 호스피스 과정에 들어갔다. 통증완화 치료 이후 아픔은 잊고 지내지만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고 계시다. 문병객들이 놀랄 정도로 정신은 또렷하시다. 카톡을 읽고 답을 보낼 정도니까.


... 잘했네. 기도 덕인가. 덜 아프더군. 큰아들. 고맙군. 더 아플 거라고 하더군. 어렵지만. 견뎌야지.


어머니의 문장은 호흡에 비례한다.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고 있다. 그만큼 메시지가 분명해지고 있다. 보조 의자가 하나밖에 없다며 앉을자리를 탓하는 손주딸애에게 농담도 하신다.


니들 불편하면 어떠냐. 나만 좋으면 되지...

   

딸애는 할머니 성격 나온다며 웃었다.


어머닌, 자기애가 강한 분이시다. 삶의 중심에 늘 본인이 있었다. 스물하나에 결혼했고, 서른여덟에 이혼했다. 그 세월의 곱절되는 싱글 라이프를 씩씩하게 살았다. 우린 따로 또 같이 살았다. 어머닌 자식들 혼례에 화촉을 밝혔고, 헤어진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흔 이후의 인생을 그리고 있었다. 그 여정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예기치 않은 급정거에 어머닌 처음엔 당황, 이내 본모습을 되찾았다.

병상에 누워 자식과 친척, 지인을 하나 둘 소환하는 일상의 만족스러움이 나름 쏠쏠하신 것 같다. 피니시 라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다. 담담하고, 때론 당당하다. 저승 땅값은 별로 비싸지 않을 테니 먼저 가서 사놓을게 천천히들 뒤따라 오라며 배시시 웃는다. 생의 마지막 관문 앞에서도 자기주도적이다.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방식이다.


17년 연하 늦둥이 막내, 어머니의 유일한 남동생, 내겐 친구 같은 뉴욕 외삼촌, 선거 전날 도착한답니다,라고 전하자 마른 입술에 침을 적시며 화답하신다.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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