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거의 키워주셨다.지방근무 당시 아내와 나는 월요일 아침 딸만 데리고 원주에 왔다가 주말에 상경하는 날이 많았다. 19년 전호주로 해외연수차 가족의 엑소더스를 할 때도 할머니와 있겠다는 녀석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을 정도였다.
아침에 대구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의 질문을 받는 아내의 표정이 황당하다.
-시원이가 어제 대구 왔냐?
=아니.
-엄마가 자꾸 시원이가 어제 왔다며 밥 차려줘야 한다고 계속 이러신다.
=...
근래 들어 어머님의 기억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암 진단 이후 약 처방으로 몸상태는 많이 좋아지셨는데 인지력이 현격하게 떨어지셨다. 회고절정의 임계점을 넘어서신 것 같다. 오래전 일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시는데 최근의 일은 정렬이 잘 되지 않으신다. 아버님께서 먼저 떠나신 이후 지난 5년 간 여러 해프닝이 있었다. 갈아입을 옷 겉에 또다시 새 옷을 입으시는 일, 한 시간 전쯤 식사를 하셨는데도 왜 밥을 안 먹느냐는 말씀, 온 집안을 다 뒤진 끝에 팬티 기저귀 틈새에서 가까스로 현금 뭉치를 찾은 사건, 아랫집 아파트 문을 두드리시는 일... 사람을 헷갈리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놀라운 것은 아들 녀석은 분명히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손자를 아들로 착각하시는 경우는 있어도 아들 녀석을 다른 손자로 보시는 경우는 없다. 공유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지문 같은 흔적이다.
오늘 어머님의 아흔두 번째 생일이시다. 아내와 나는 전철로 가면 된다며 만류했지만 아들 녀석은 한사코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수서 역까지 오더니 SRT 플랫폼까지 따라와서는 탑승칸까지 좇아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고 간다. 할머니에게 직접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돌아선 등판에 서리서리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