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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ro Feb 18. 2024

세상에서 제일 착한 만두집

이 집은 성공할 거다. 아니, 이미 성공했다.

우리 동네 대표 만둣집인 이곳이 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부터 난 이 가게의 성공을 일찌감치 예감했다. 20년도 더 된다.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던 만두집은 골목보다 더 허름한 출입문을 열면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 벽에 붙은 신발장은 항상 빼곡히 차 있었고 신발이 널린 바닥엔 빈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동네 맛집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전 요즘 같은 어느 해 늦은 겨울, 나는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 어깨와 엉덩이를 부딪히며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난 뒤 내 눈길을 붙잡아 맨 건 메뉴판이 아닌 벽에 붙은 안내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신발 분실 시 책임지겠습니다.


개성만두만큼 큰 만두를 한입 베어 물며 아내에게 말했다.

"이 집, 돈 벌겠다."


다음은 20년 고객의 세줄 요약이다.

-가격이 착하다.

-주인 부부는 더 착하다

-맛있다.


주인께서 내 얼굴을 알아볼 즈음 벽을 쳐다보며 내가 물었다.


-그러다가 진짜 누군가 신발 잃어버렸다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그럼 물어드려야지요.

-만두전골보다 더 비싼 신발도 있을걸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시시때때 배고플 때마다 찾곤 했던 만두집에는 신발 에피소드 말고도 기억에 남는 안내문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할인행사 : 산모님들에겐 1/2 값으로 드립니다. 아기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최근 한 기업에서 발표한 출산지원금 1억 원 지급만큼 화끈하진 않지만 만둣국 육수만큼이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이 집에서 신발 잃어버렸단 얘길 들은 적이 없다. 

앞으론 더더욱 그럴 일 없게 됐다. 골목길 좁디좁은 공간을 벗어나 도로 건너편 제법 큼직한 장소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좌식 식당스타일에서 입식스타일로 바꿨다. 신발 벗을 일이 없어졌다. 내일은 석 달만에 서울에 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갈려고 한다. 암과 함께 살고 계신 어머닌 요즘 바닥에 앉기 힘들어하시는데 참 잘됐다. 지난번보다 기억이 더욱 가물가물 해지신 것 같은데, 만두집 얘길 하니까, "아~ 그 집!" 하신다. 믿음이 있으면 설명이 불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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