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감각의 제국...'칼날'과 '섹스'
토지, 박경리
넷플릭스에 '감각의 제국'이 업로드 됐다. 오래전 보았던 이 영화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영화를 보았던 시기를 염두에 뒀을 때, 그때 본 영화의 반은 커팅된 상태였을 거다. 검열의 칼날은 늘 섹스 앞에서 무자비했으니까. 이번에 탑재된 버전은 감독판이라 하니, 원형에 가까울 것이다. 꼭 봐야지. 차고 넘치는 베드 씬 말고도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인상적인 장면은, 허구한 날 섹스에 탐닉하는 남자 주인공이 대공아 공영의 기치를 내걸고 전쟁터로 향하는 일본군의 행렬을 피하며 흘끔흘끔 곁눈질로 죄인처럼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감독은 포르노를 만든 것이 아니라 반전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성(性)을 도구로 썼을 뿐이라고 하는데, 그런 크리틱은 영화평론가들에게 맡길 일이고 나는 그저 무삭제 원본을 볼 수 없다는 데 분개했을 뿐이다. 아! 이 문화의 지체!! '폭력'과 '섹스', 그것과 연결된 부작용 운운하면서 19금 등급을 내리는 분들은 누구인가?... 무자비하게 가위질당한 영화를 보느니, 블러 처리된 히뿌연한 화면을 보느니, 나는 토지를 읽겠다. 작가 박경리는 토지 중반부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조선과 일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일인들 왈 조선에는 오 거지가 이리 많으냐, 총독부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땅을 약탈하여 배가 불러 터지게 된 동척(東拓)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조선인은 게으르다. 어찌 게으른가 그것 역시 총독부, 동척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내쫓긴 수많은 사람들, 날품팔이 행상, 남의 집 고공살이, 그런 일자리나마 과연 충분하며 입에 풀칠할 만한 수입인가. 그러나 어쨌든 거지가 아닌 그런 부동인구가 우선은, 앞서 말한 새로운 업종의 구매자요 이용자인 것만은 사실이다. 자리를 얻기 위하여, 얻은 일자리를 부지하기 위하여, 장사를 하기 위하여, 상투가 잘렸으니 이발소라는 곳에 가서 머리를 깎아야 하고 등물 할 내 집, 마을의 시내도 잃었으니 목욕탕에 가서 몸도 씻어야 한다. 이발관에서는 머리에 바르는 지쿠 냄새가 났다. 활동사진관 주변에서 올백한 건달들이 사이다, 라무네 등을 마시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곤 하는데 그들에게서도 지쿠 냄새가 났고 손가락 사이에 면도날을 숨긴 새로운 직종, 일본서 기술을 배운 쓰리꾼, 쥐꼬리만 한 급료를 받는 부류의 청년들도 월급날에는 이발하고 목욕하고 지쿠 바르고 유곽을 찾는다. 일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곳곳에 성곽과도 같은 거대한 청루, 그러고 보니 쓰리꾼, 유곽도 과연 새로운 직종이요 업체다. 칼날과 섹스,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일본의 수천 년 역사의 진수가 아니었던가." (13권 12~13쪽)
위안부 해법에 대한 한일정상회담 '제 3자 변제방식'을 놓고 여야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국익을 위한 '대승적 결단'과 역사를 외면한 '굴욕 외교'란 논평이 상충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의 식민지배에 대해 스무 차례가 넘게 사과했다. 누구는 50여 차례라고도 한다. 횟수가 뭣이 중헌가? 진정성이 중요하지. 지금까지 일본이 보여준 사과와 관련한 최대치 표현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다. 25년 전이다. 4반세기가 흘렀다는 얘기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 선언이 갖는 의미는 고노-무라야마 담화에 이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라는 점이다. 고노는 관방장관이었고 무라야는 총리대신이었다. 두 사람은 담화 형식으로 사과를 표명했다. 바로 그 담화를 통한 사과 수위가 김대중-오부치 정상 간에 공식합의 문서로 명문화된 것이다. 이 선언과 관련한 정부 당국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01년 최상룡 주일한국대사로부터 들었던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바라는 과거사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은 독일식 해법입니다. 이건 현실성이 없습니다. 얘기하자면 길어지고요. 그렇다면 지난 95년 무라야마 담화입니다. 이거 아주 중요합니다. 무라야마 담화가 왜 나올 수 있었는지, 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무라야마가 어떻게 집권했습니까. 93년 당시 호소카와 연정 출범으로 사회민주당이 연정 내 제1당으로 부상하지 않았어요? 이후 무라야마가 위원장이 된 것이지요. 사민당이 뭡니까, 정치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 경제면에서는 시장경제 유효성을 활용한다는 거 아닌가요. 94년 6월 무라야마 연립정권 들어선 것이고 그 해 8월 15일 전후 50주년 특별담화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렬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라고 했던 것이지요. 차기 총리인 자민당 하시모토는 나중에 무라야마 담화를 지지한다고만 했지, 정작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거든요. “과거로부터의 무거운 짐과 미래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 이라고만 말했단 것이지요. 이거 주목해야 합니다. 일본 정서에 무라야마 담화는 최대치의 사과 표현인 겁니다.
김대중 정부의 주일대사가 이 정도의 발언을 기자들과의 만찬 석상에서 할 정도면,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스탠스는 대략 감이 잡힌다. 그로부터 20년이 훨씬 흘렀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정권이 부침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이후 '굴욕외교'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제 3자 변제 방식'이 핵심이다. 비난받는 주체는 이런 식의 반문을 한다. 당신들이 한 얘기를 놓고 왜 우릴 비난하느냐, 하는 식이다.
"아, 이거 우리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국회의장을 지낸 민주당 '문희상 안'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그 배경에 있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거론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 무라야마 담화를 언급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우리는 부정적, 일본은 긍정적 반응이 높게 나오는 것 같다. 맞은 자의 기억과 때린 자의 망각이 극명하다. '감각의 제국'을 '칼날'과 '섹스'로 통찰한 박경리 여사께서 생존해 계신다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