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검색한 대로 집 근처 빌딩에 주짓수 도장 간판이 보인다. 떱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뒤따라오는 큰아이는 진짜로 갈 거냐고 되물으며 나의 표정을 살핀다. 물론 당연하지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들어가야지 무슨 소리야? 큰소리를 쳤다. 주책없이 콩닥이는 심장소리를 숨기려고 씩씩한 척하며 건물로 들어섰다. 사실 속으로는 여기서 그냥 돌아갈까 이건 좀 무리하는 거 아닐까 망설였다. 여기서 뒤돌아서면 가기 싫다고 툴툴거리던 아이를 끌고 나선 체면이 구겨질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건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푸른 도복을 입은 소년과 검은 가방을 멘 남성이 있다. 자연스럽게 4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자연스럽지 않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리는 그들을 쫓아서 무겁게 닫히려는 철문을 열고 도장으로 들어섰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는 두리번거렸다. 넓은 매트와 운동기구들 푸른색, 검은색, 하얀색 도복과 줄지어서 매달린 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몸을 풀고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그가 멀찍이 있던 관장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일전에 전화문의하신 분이군요? 어서 오세요? 어색하지 죠? 들어오세요."
반갑고 상냥하게 맞아주었지만 긴장이 풀리지 않아 얼굴이 실룩거렸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몸을 어떻게 두어야 할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게로 시선이 모이고 있다는 착각과 문득 부딪히는 시선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조그만 몸을 접어서 숨기고 싶었다. 나보다 머리가 한 뼘이나 큰 아이는 뒤에 숨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수업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남성들과 어리고 발랄해 보이는 젊은 여성, 마스크에 얼굴을 숨긴 수줍은 남학생들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내 또래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전화상담을 하고 참여하는 체험수업이었다. 체형에 맞을 만한 도복을 찾아주었다. 도장 한편에 자리한 탈의실에 들어섰다. 사람이 없다는 안도감도 잠시 문이 열리며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재빠르게 등을 돌리고 눈을 내리깔고 도복을 갈아입었다. 까슬한 느낌이 살갛에 닿았다. 도복을 입었지만 맨 몸이 된 것 같은 어색한 느낌, 문을 천천히 열고 심호흡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다른 공간 속에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내가 어색했다. 조심조심 게걸음으로 매트의 빈자리를 찾았다. 관장님이 건네준 길고 딱딱한 벨트를 순서에 따라 동여매었다. 어랏, 이건 또 무슨 미묘한 설렘이람? 무언가 굉장한 것이 시작될 것 같은 달뜬 느낌이 쿵하고 가슴팍에 내려앉았다.
수련시간이 시작되었다. 매트에 둥글게 둘러앉은 회원들은 관장님의 동작 설명을 진지하게 듣는다. 다리를 들고 손을 걸고 무릎을 펴고 미끄러뜨리고 골반에 다리를 얹고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고 시범동작을 보는 눈과 설명을 듣는 귀가 바빠지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분명 몸을 움직이겠다고 도장에 들어섰는데 귀와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동작을 보았고 들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얼굴 새하얘졌다.
3분 수련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모두 손뼉을 치고 짝을 맞추었다. 큰 아이와 나는 멀뚱하니 얼굴만 쳐다보았다. 관장님의 도움으로 동작을 따라 했다. 흉내에 가까웠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것이 과연 내 몸인가 하는 부끄러운 깨달음의 시간이 찾아왔다. 손과 발, 머리와 몸이 따로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따라 하고 있었지만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상태였다. 삑 하고 울리는 알람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큰 아이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나를 노려보았다. 몇 개의 동작을 설명하고 따라 하기를 반복했다.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헤맬 때마다 관장님의 살펴주었다. 나의 빰은 점점 붉어져 갔다.
잠시 흩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나니 스파링을 하겠다고 한다. 스파링? 그거 권투경기에서 보던 그거 스파링 그거 말하는 건가? 아, 이거 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덤볐네 잘못 알고 온 건가? 어쩌지? 이제라도 제가 잘 모르고 찾아온 거 같다고 고백하고 조용히 나가야 하나? 여기서 스파링이 왜 나오지? 내가 스파링을 한다고? 뭐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먼저 넘어지라고? 상대를 밀어서 자빠 뜨리라고? 흔들리는 동공을 하고 멍하게 있는 내 표정을 알아챈 관장님은 매트 한편에 자리한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회원들의 스파링이 펼쳐졌다. 티브이에서 보던 광경을 눈앞에서 보자니 눈이 번쩍 띄었다. 흡사 유도 경기장에 있는 것 같았다. 거친 숨소리와 팽팽한 긴장감이 체육관을 채워가고 있었다. 여성회원들의 스파링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저걸 한다고? 밀고 넘어지고 밀치고 끌어당기고 잡아채고 끌고 누르고 꺾고 비틀고 뒤집고 넘어서고 와? 내가 이 나이에? 저렇게 할 수 있다고? 저걸 배우러 왔다고? 상대방을 이기려고 온갖 기술을 쓸 수 있다고? 아무리 보고 있어도 거기에 내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과 몸을 부딪히며 맞붙을 수 있다고? 맞붙어 보겠다고? 내가 찾던 격렬한 운동이 이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