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련 전 준비운동으로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양쪽 등배근에 아릿한 통증이 생겼다. 허둥대다 끝나는 수련이지만 매일 체육관을 찾는다. 몸이 힘들 걸 알면서도 찾아가서 몸을 괴롭히고 있다.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은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한 행동일지 모른다. 무언가 계속해야만 할 거 같아 스스로를 채근하는 것에 익숙하다. 소파에 몸을 내맡기고 싶은 마음을 금세라도 잠들 것 같은 무거운 눈을 부릅뜨고 도복을 챙겨든다.
여성 선배 수련생과 스파링을 했다. 여느 선배처럼 느슨하게 기술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초보에게 기회를 주려는 아량이었다. 자존심만 센 초보는 덜컥 "자꾸 봐주지 마세요. 평소 하던 대로 하세요"라고 괜찮은 척을 했다. 그다음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해맑은 웃음을 짓던 선배님은 순식간에 나를 휘어잡아 제압하고 배 위에 올라섰다. (마운트-배 위에 올라탄 사람이 이긴 것으로 종료) 스파링이 끝났다. 멋쩍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쥐뿔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자존심만 내세우다 제대로 혼났다. 자존심 그게 뭐라고 그런 말을 해서는 상대를 자극했을까
체격과 덩치가 크게 차이나는 남성 선배 수련생과 눈이 마주쳤다. 주저할 새도 없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어쩌다가 탑(공격) 위치를 잡게 되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발바닥을 사용해 방어하는 상대에게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원한 대로 초보라고 봐주지 않는 선배를 만난 것이다. 빈 곳을 찾아야 하는데 빈 곳이 안보였다. 주변을 맴돌며 망설이는 사이 다리가 잡히고 몸이 뒤집혔다. 도망치려고 버둥거려 보지만 눌려버렸다. 봐줄 것 없다고 쓸데없는 호기를 부리다가 순식간에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초보지만 선배님도 상대할 수 있다던 허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초보 수련생의 어리석은 과욕은 그렇게 뒤집힘을 불러왔다. 타인의 배려와 호의를 수용하는 것이 겸손의 시작이다. 그것을 주짓수로 배운다.
"조금 더 세게 누르고 조여도 돼요."
"상대방이 아프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러워요."
"에이... 괜찮아요. 남을 괴롭히려고 하는 운동인데요."
그렇다. 내가 하는 주짓수는 상대를 괴롭히고 짓눌러서 아프게 하는 기술을 익히는 운동이다. 그걸 알면서도 힘껏 누르지 못하고 주춤한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일을 악으로 여긴다. 인간이 선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관계에도 선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혼자 상처받고 돌아서기를 되풀이한다. 내가 고집하던 선의는 상대를 못되게 굴지 못하게 하려는 방어기제였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에 착한 척 가면을 썼다. 타인이 내게 보이는 태도에 따라서 나의 행동과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그것을 주짓수로 배운다.
수련생들은 엉성한 초보자에게 너그럽다. 자신의 실력과 기술을 뽐내기보다는 슬며시 풀어주고 내어주면서 초보에게 기회를 준다. 무해한 성인들을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장소다. 직장은 그렇지 않다. 권력과 경쟁의 논리만이 존재한다. 강자가 약자를 대놓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이다. 폭력과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곳이다. 조금 어설프고 순해 보인다 싶으면 달려들어 함부로 할퀴어대는 빌런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한껏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몸을 침대에 뉘인다. 침대 속으로 몸이 잠기는 듯한 나른함을 느낀다. 이리저리 재고 따질 것 없이 온전히 맨몸으로 타인과 승부를 겨루는 명쾌하고 선명한 세계, 그것이 나를 깊은 잠에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