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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an 16. 2022

손톱 물어뜯기

불안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알지만 고쳐지지가 않는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건조함이 짙어지는 계절이 오면 내 손톱과 손마디는 엉망이 된다. 손가락 마디가 갈라지고 뜯겨서 붉은빛의 상처 자국을 손마디에 감고 있다. 크림과 오일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봐도 소용이 없다. 입으로 물고 손으로 뜯어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기 어려운 감정, 특히 불안이 떠오를 때면 나는 손톱을 만지작 거린다. 손톱을 뜯고 있으면 조금 편안해진다.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잠깐 동안 외면하고 벗어날 수 있다. 감정은 모호하지만 손톱은 명확했다. 감정은 어색하지만 손톱은 익숙했다. 감정은 막연하지만 손톱은 확실했다. 감정은 멀지만 손톱은 가까웠다.

 

오은영 선생님의 방송에서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쥐어뜯는 아이를 보았다. 입술을 앙다물고 머리를 쥐어뜯는 표정이 미간을 찌푸리고 손톱을 물어뜯는 내 모습과 같았다. 어린 날의 나와 염려하며 꾸짖던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선생님의 해석에 고개를 덕인다. 부모님은 내가 손톱을 입에 대기만 해도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았다. 온갖 회유와 협박과 협상이 오갔다. 더럽다고 지긋지긋하다고 보기 흉하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그러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궁금해하지 않았다.


매니큐어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도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에 숨어 머리카락을 집어삼킨 아이처럼 나는 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시선을 피해서 피가 뚝뚝 떨어질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었다. 교묘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쉴 틈 없이 손을 뜯었다. 살짝 아려오는 손끝을 보면 사방에서 나를 조여오던 어떤 것에서 놓여나는 느낌이 들었다. 울렁이던 마음이 느슨하고 편안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힐 때면 짓눌린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손끝을 물었다. 손끝이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속마음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드러내기 어렵고 들키기 싫은 마음을 손끝에다 걸어놓았다. 상대가 내 손끝을 보고 복잡한 마음을 알아채고 바라봐주고 살펴주기를 기대했다. '아니? 손이 왜 그래? 손이 왜 그 모양이야?' '무슨 일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행동의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손을 뜯어 상처가 나서 어떡하냐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런저런 좋은 방법들이 있다고' 걱정하거나 평가하거나 충고하기에 바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라 당황하며 손을 그러쥐었다. 어린애들이나 하는 지저분한 버릇을 들켰다는 부수치심에 밴드로 손가락을 감추었다. 타인의 무심함에 얼어붙은 마음을 숨기고 억눌렀다. 


내 손톱은 어쩌지 못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파고들어 가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모양도 울퉁불퉁 망가지고 삐뚤빼뚤 못생겨져 갔지만 그것은 나를 탓하지 않았다. 붉게 물든 상처를 드러내며 네 마음이 아팠구나, 네 마음이 힘들었구나 하고는 나를 수용해 주었다. 손톱 물어뜯기는 모습은 사회적으로 평가하기 쉬운 행동이다.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다. 혼자 하는 은밀한 행동이다. 올바르지 않지만 그것이 있어서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화면 속 그 아이처럼 고쳐야 할 잘못된 습관이지만 나에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손톱을 뜯으면서 위로를 받고 불안으로 일렁이는 마음을 해소할 수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손끝을 입에 물고 있는 아이가 있다.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손톱을 입에 물고 있는 이 아이를 이제는 내가 안아줘야 한다.


이제는 일도 하고 살림도 하는 삼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 손끝에 아리고 쓰라린 마음을 매달고 있다. 앙다물고 뜯어낸 마음을 들여다보며 글자를 더듬어 찾는다. 메마르고 건조한 일상,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종일 긴장하고 뻣해진 를 새하얀 종이에 내려놓는다. 느슨하고 몽롱한 재즈선율에 따라 흐트러진고 비틀어진 마음을 풀어낸다. 함부로 말하여진 것들과 말하지 못한 것들을 적는다. 눌러놓았던 응어리들이 손끝으로 빠져나가 검게 변한다. 쓰다 보면 투명해지고 뚜렷해진다. 못나기만 했던 나도 제법 찮아 보인다. 용기를 내게 하는 주문이 된다. 는 일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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