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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Aug 23. 2022

막내의 벙어리장갑

세 아이를 만나는 동안 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첫째가 어렸을 때나 막내가 유아기인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육아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눈곱만큼도 나아진 것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를 둔 젊은 남녀들이 언제까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살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이 놈의 보육제도는 언제 나아지는 것일까? 달라지기는 하는 걸까? 아이를 둔 부부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을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직장어린이집이 입사 10년 만에 개원했다. 법이 바뀌어도 만지작 거릴 수 있는 모든 조건에 걸려 밀리다 내려진 결정이었다. 돈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 아니었다. 경과 조건이 안정곳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건 부모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옆자리의 동료도 다른 부서의 후배도 서로의 아이가 등원하는 모습을 보며 인사를 나누고 일과를 시작했다. 그런 사소한 스침 서로의 존재와 역할 대한 위안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아이들의 알림장이 차례대로 제각기 울린다. 오늘의 숙제, 내일의 준비물, 선생님 당부사항, 오늘의 일과, 세 아이마다 제 각각 다른 과제가 있다고 알려온다. 차근히 보려 해도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부족하다.  뒤죽박죽 갈린다. 메모를 하고 신경을 써도 한 두 개씩은 놓치고 빠뜨리거나 헷갈리기 일 수다. 아이가 등교(원)하고 나서 놓친 준비물이 라 당황하는 일도 다. 가끔은 선생님에게 꾸중 듣고 친구들 앞에서 민망진 때에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일하는 엄마라는 자책이 따라왔다.


막내의 어린이집은 연령이 어린 만큼 수시로 챙겨야 할 준비물이 많았다. 종종 눈이 내리던 지난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어 볼 예정이라며 벙어리장갑을 챙겨달라는 알림이 울렸다. 분명 보았는데 못 본 것처럼 기억하지 못했다. 오전의 일과를 사진을 보고서야 챙기지 못한 벙어리장갑이 떠올랐다. 아이는 작은 손에 눈 더미쥐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맨손에 그러쥔 눈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내 눈을 의심하고 부주의를 자책했다. 눈이 대로 오는 것이 아니니 알림을 보자마자 준비해야 했다. 어린이집은 일정대로 진행했을 뿐 장갑은 내가 놓친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순식간에 마음이 얼어붙었다.


원을 하고 아이와 함께 집 근처 잡화점에 들렀다. 온통 커다란 어른용 장갑뿐이었다. 5살 이하 유아에게 맞는 작은 장갑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벙어리장갑의 수요가 얼마나 될까? 내가 주인장이라도 재고를 챙길 리 없는 품목이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는 엄마를 보며 막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갸우뚱한 표정을 하고 묻는다. "엄마~~~ 왜애~~~~?" 말간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애써 태연한 척 웃었다.


늦은 시간 퇴근하던 아빠가 대형마트로 향했다. 제품의 폭이 넓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벙어리장갑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그곳도 작은 손에 맞는 것은 없었다. 벙어리장갑이었지만 고사리 손에 한 뼘은 넘치게 컸다. 아쉬운 대로 이름표를 붙여서 챙겨 보냈다. 며칠 후 막내 알림장에 올라온 사진에 아이는 또 맨손으로 눈을 그러 쥐고 있었다. 손보다 큰 장갑으로는 눈을 만지기 어려워 한 두 번 쓰다 벗어던진 것이다. 벙어리장갑 때문에 며칠 마음을 졸였다.


냉장고에 무엇이 부족한 지, 우유는 떨어지지 않았는지, 오늘 저녁은, 주말 점심은, 애들이 좋아하는 간식은, 아이들 속옷과 양말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제출할 서류는,,, 매일 확인해야 한다. 아이들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엄마의 체크리스트였다. 계절이 바뀌면 작아진 옷을 확인고 온라인 쇼핑을 한다. 금세 작아지고 더러 워지는 운동화는 주기적으로 세탁소에 맡기고 바꿔야 한다. 코로나로 보육과 교육이 가정으로 려들면 챙겨야 할 것들이 다양하고 복잡하고 많아졌다. 여러 개의 촉수를 펄럭이는 말미잘처럼 민감해야 했다. 덜렁거리는 엄마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잘 익은 홍시처럼 단단하게 여물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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