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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Aug 23. 2022

78년생 김지영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선택이 아니고 의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결혼을 한 것처럼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엄마가 되었다.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어도 자꾸 울고 안고 달래서 어렵게 재워도 내려놓으면 눈을 바짝 치켜뜨고 울어댔다. 아이의 웃음에 사르르 정신을 놓다가도 해가 질 무렵부터 울기만 하는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아가는 천사도 되었다가 악마도 되었다가 하면서 혼을 쏙 빼놓았다. 엉덩이 붙일 새 없이 계속되는 위기와 실패 속에서 허둥대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 밖의 하늘은 찬란하고 꽃이 만발했지만 아이와 단둘이 있는 이곳은 세상과는 멀찍이 떨어진 섬과 같았다. 드넓은 세계에서 벗어나 아가와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가는 매일의 과업을 완성하며 성장해 갔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나는 초라해졌다.      


출산 후에 아이 돌봄에 필요한 일도 늘어나고 감정도 풍부해졌다.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이 가라앉았다 차오르기를 반복했다. 무슨 일에도 흔들림 없을 거라던 불혹, 마흔의 늦은 출산 이후에서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 널뛰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을 흘리고 버럭버럭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이것이 산후우울증인가? 설사 그렇다 해도 삼 남매 엄마에게는 사치였다. 지금 당장 아이를 돌보고 살펴야 했다. 감정의 정체를 인식하는 과정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을 내 감정으로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일 이외의 시간은 오로지 아이에게 집중하려 했다. 사회가 정한 모성의 기준을 내재화하며 강제했다. 내 것에 집중하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양보를 선택했다.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를 꾹꾹 누르고 불만을 감춘 채 엄마라는 역할에 몰두했다.


남편이 곁에 있어 주기를 원했다. 영문을 모른 채 쉬지 않고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있을 때,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웃어주는 아이를 볼 때, 낑낑거리면서 머리를 들어 올리고 배밀이를 할 때,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유를 먹을 때,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 때, 그와 함께 난처해하고 기뻐하기를 바랐다. 아이와 둘이 보내는 일상에 그의 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이가 성장은 핸드폰에 쌓여갔고 그는 영상으로 아이를 만났다. 


아빠인 그의 일상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유효했다. 평소처럼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회식을 했다. 아내의 우울함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살았다. 육아의 고단함은 공통분모가 되지 못했다. 엄마인 나의 일상만이 달라졌다. 아이로 시작되어 아이로 끝나는 하루, 아이와 완벽히 밀착된 하루였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변을 보는 기본적인 욕구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성장하는 아이들 뒤편에서 수고하는 아내의 손길에 무심했다. 살림하고 육아하는 여자의 말을 쓸데없는 잔소리로 평가절하했다. 도와주는 입장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았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했고 체념했다. 엄마가 되면서 유예된 나의 삶이 불공평하다고 분노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냥 행복하지 않은 막막하고 깜깜한 육아에 흘리는 눈물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불쾌감을 드러내며 화를 내기도 했다. 아이를 길러보니 그도 별다를 것 없는 남자였다. 육아에 있어 엄마에게 어떤 역할과 의무를 정해놓고 있었다. 세상이 익숙하게 여기는 방식, 육아는 궁극적으로 엄마의 몫이라는 인식, 그도 그런 사회적 관습에 배여든 사람이었다.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 사회적인 인정을 포기한 남자라는 평판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반사적 불이익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불편했지만 현실이었다. 엄마가 양육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은 관습이었다. 의 보살핌을 피하려는 변명이었다. 경험해 보니 그랬다. 여자인 엄마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아기를 보살피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이었다. 어색하고 서툴고 실수투성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같이 울기도 여러 번했다. 돌보는 시간이 늘면서 학습하게 되는 것이 많았다. 어린 생명체를 탐색하고 알아가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먹이고 안아서 달래고 씻기는 일상적인 행위들이 아이를 성장시켰다. 남자도 적응하고 익숙해지면 수월할 수 있었다. 아빠의 역할을 아기 엄마와 아이의 보호자로 한정해서는 안되었다. 새벽에 깨어 우는 아가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그가, 저녁 먹고 금방 오겠다는 그가 내가 사랑했던 남자와 같은 사람인가 혼란스러웠다. 


아이는 오히려 자잘하고 끈질긴 마찰의 원인이 되었다.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고 셋이 되면서 휴직이 이어지니 가사 육아가 의심 없이 내게로 쏠렸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애원하며 등을 떠밀어 아빠의 역할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다. 육아와 살림에 있어서 그는 엉터리였다. 무엇이 힘들고 고단한 것인지 알려하지 않고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뻔뻔하고 고약했다. 일하는 아내를 두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지만 육아에선 방관자였다.        


무턱대고 좋아하며 달려들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은 사랑하고 원하던 마음을 마비시켰다. 그와 나는 스스로 선택한 삶에 짓눌려 서로를 쌀쌀맞고 차갑게 대했다. '고생했어... 애들도 잘 크고 있고...'  육아로 지친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뜬금없이 카톡을 보냈다. 너무도 간단한 감사의 말이 나의 지난한 모든 과정과 외로운 시간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고작 그런 얄팍한 말 한마디로 보상하겠다고? 육아를 떠넘기듯 도망 다니면서 의무감에 건네는 인사는 듣고 싶지 않았다. 틀어지고 냉담해진 마음 때문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무도 결혼과 육아의 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성인 남녀가 사는 일은 자질구레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육아는 생경한 생명에게 통째로 나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지루한 반복 속에 파뿌리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 진짜 삶은 '철수와 영희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행복하게'와 '살았습니다' 사이에 가리어진 이야기가 있었다. 행복이라는 포장으로 덧씌워진 이야기 밖의 세계는 달랐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고통과 슬픔을 지우고 기쁨으로 덧칠하는 일을 멈춰야 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낯선 두 성인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어떠한 일인지 알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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