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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Oct 12. 2021

육아휴직증후군

갓난아기인 막내와 두 남매에게 엄마의 손길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때라고 확신하고 두 번째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법적으로 보장되고 경력으로도 유효했지만 한참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시기였다. 직장 내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사라졌지만 복직 이후 5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망설이고 주춤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직전 육아휴직 때 느꼈던 우울함과 답답함이 떠올랐다. 일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 정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집안을 종종거리며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입히는 하루가 예상되었다. 아이들이 예쁜 것과 돌봄은 다른 차원이었다. 아이들의 욕구를 무던히 수용하고 그들 마음에 맞추는 일, 그것이 어려워 육아가 버거웠다. 휴직계를 제출하면서도 마음이 편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휴직기간은 육아를 중심으로 하는 비슷한 일상의 변주로 이어졌다. 모든 것에 아기가 우선다 보니 밥은 아이가 한눈파는 사이, 노는 사이, 잠든 사이에 해결했다. 씹고 먹는 행위로 먹음이 아니라 배고픔을 해소하기에 급급한 욱여넣기였다. 맛을 느끼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사치였다.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는 것이 먼저였다. 삼 남매를 먹이고 남매가 막내를 돌보는 동안 밥을 먹었다. 오래전 내가 먹다 남긴 밥을 급하게 삼키던 어떤 여인의 익숙한 뒷모습과 다르지 않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양치를 한건 지 세수를 한건 지 오락가락했다. 첫 아이 휴직 때 느낀 우울감이 다시 찾아왔다. 짜증도 늘어났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웃음과 살랑이는 명랑함 사이에서 행복보다 불안감을 느끼며 마음껏 웃지 못했다. 그런 내가 엄마답지 않은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로 사는 일을 낯설고 버거워하는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역할에 몰입할수록 사랑하는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독이 되어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남편은 늘 바빴고 막내가 태어나고는 더 바빠졌다. 하루 종일 아이에게 매달려 있다 보면 남편이 기다려졌다. 남자만 바라보며 살지 않는 여자라고 자신했는데  퇴근시간이 다가올수록 현관만 바라보았다. 어른 사람과의 대화에 대한 갈증에 외로움이 쌓여갔다. 아이를 키우면서 발견한 기쁨, 놀라움, 아쉽고 어려운 순간을 같이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게 남편이었고 아이 아빠였다. 하지만 자기 일에 벅차서 허덕이듯 살아가는 그에게 나의 자리는 없었다. 말을 걸기도 쉽지 않았고 틈을 내어 몇 마디 건네 보아도 성의 없는 대꾸만 다. 대화는 짧게 끊어졌고 내 존재감도 점점 희미해다. 곁을 내어주기를 바랐던 기대는 어긋났다. 마지못해 귀만 열어두고 대답도 하지 않는 그에게 대항하듯 불쾌감을 퍼부었다.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서로 간의 차이만 확인하는 일을 반복했다. 부스스한 채로 아이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는 온전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자리를 튼튼히 다지고 그의 별을 찾아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무언가에 힘껏 몰두한 채 뒷모습만 보여주는 그에게 비친 내가 초라다. 아이에게 쏟아낸 그 시간은 촘촘했지만 내 삶은 점점 더디게 후퇴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선택한 잠깐의 멈춤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불안감,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서글픔, 모두 바쁘게 달리고 있는데 성과 없는 육아에 매달리고 있다는 참담함, 밀려오듯 반복되는 집안일과 육아로 소모되고 있다는 상실감, 집 밖을 넘어서지 못한 내 능력이 퇴화될 것 같은 두려움, 아이와 나로 이루어진 조그만 세상에 외떨어져 있는 것 같은 고립감이 나를 괴롭혔다.


약하고 여린 것들이 지배하는 힘은 강력했다. 온전히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징거리는 아이들과 무심한 남자 사이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양보하고 포기하고 체념했지만 마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웠다. 겉보기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갈라지고 있었다. 결혼과 육아로 소중한 것을 도둑맞고 아름다운 한 시절을 빼앗긴 것 같은 황량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자주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를 탓하고 원망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헛똑똑이라던 엄마 말이 맞는 것 같다. 스스로를 비틀고 쥐어짜며 가정을 머리고 이고 있는 상황을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자족하며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웃음에 마냥 기뻐하다가도 툴툴거리면서 아이를 밀어냈다. 아이를 두고도 나를 앞세우는 마음이 엄마답지 못한 것 같아 불편했다.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이 쌓여갔다. 억누르고 삼키며 감추었던 말들이 쌓이고 익어간 마음들이 꿈틀거렸다. 내 안에 혼란스럽게 얽히고 꼬인 감정의 실타래가 손끝으로 새어 나왔다. 아이들과 놀이를 하다가 빨래를 개다가 청소를 하다가 식사 준비를 하다가 말이 떠올랐다. 나를 맴도는 그 말들을 놓칠세라 서둘러 종이에 마구 적어댔다. 갇혀있던 말들이 단어와 문장이 되어 살아났다. 급하게 써 내려간 단어와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나를 짓누르는 수많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졌다. 마음을 짓누르던 덩어리가 내려앉는 개운함을 느꼈다.


마땅히 글을 쓸 시간과 장소를 확보할 여력이 없었다. 손이 닿는 곳에 메모장과 연필을 두고 적으며 떠오르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어떤 것은 너무 빠르게 어떤 것은 너무 어두운 곳에서 급작스럽게 써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읽어버린 조각들을 되찾아 맞추는 기분이었다. 흩어져 있던 생각을 옮겨 적으면 내가 좀 더 또렷해졌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만한 대상이 없었다. 엄마도 남편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쓴 글을 보면서 감정이 수용되는 경험을 다. 글을 쓰는 일이 단조로운 육아휴직에 숨통이 되었다. 좀 더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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