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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Oct 07. 2021

잘 배운 딸의 현실

이제 초6이 된 큰 아이의 3개월 출산 휴가가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직장에서 아등바등하는 동안 친정엄마는 깽깽 대는 아기를 안고 종일 아등바등했다. 시간에 쫓기면서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했다. 퇴근 시간 6시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친정에서 전화가 왔다. 보채는 아기를 등에 업고 아파트 공원을 서성이는 엄마가 보였다.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괜스레 퉁명러워졌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출근을 하니 획기적이고 중대하고 잔혹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아가를 두고 출근을 해야 했다. 나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은 같지 않았다. 나는 출근시간에 쫓기며 초초해했지만 아이는 급하지 않았다. 출근시간 9시는 나에게만 해당하는 규칙이었다. 급하게 먹이고 입히고 잠이 덜 깬 아이를 들쳐 매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헤어진 아이의 얼굴이 종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수시로 울려오는 전화는 아가의 현재를 실시간으로 전송해 주었다. 그의 모든 행동과 변화에 신경이 곤두섰다. 마음은 아가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지만 직장에서는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맴도는 울음소리를 지워내려 엉덩이를 떼지 않고 일에 전념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와 눈을 맞추려면 근무시간 내에 일을 마쳐야 했다. 아이는 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한 잡담과 목적 없는 만남은 아이의 하원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일하는 사람으로 누려야 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친정엄마에게 맡겨둔 아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와 엄마 둘이 마주 앉아 눈을 맞추는 시간이었다. 일하는 동안 종일 그리워하고 염려했던 아이인데 막상 앞에 있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눈을 맞추어야 하는데 초점이 흐려지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되는데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끝내지 못한 일을 쌓아두고는 진한 커피를 들이키며 아이가 잠든 후에 책상에 앉기도 했다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가 되지 못 어정쩡한 상태였다. 울고 보채는 아기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아이를 두고 어떻게 출근을 하고 일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진 듯한 불편한 느낌에 시달렸다. 친정 엄마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아기를 낯설어했다. 하지만 엄마가 아가를 낮에 보살피고 있었기에 나는 임금노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사실 친정엄마는 사별하고 난 후부터 보살핌 노동을 그만두고 싶어 했다. 자꾸 아프기만 하는 할머니의 돌봄을 내가 대신해주고 있는 탓에 친정엄마는 낮동안 아기를 보살펴 주다.


백일이 지나고 아이의 잔병치레가 시작되었다. 일교차가 조금씩 커지고 계절이 바뀌며 찬바람이 불기 시작면 감기에 걸리고 열이 오르내렸다. 자녀가 있는 여직원은 자꾸 자리를 비운다는 평판이 오가는 곳이 직장이었다. 아이가 아파도 쉬이 연차를 쓰지 못한 것도 평판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듣기 불편하고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파서 보채고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고 약병을 손에 쥐어서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했다. 뒤돌아 서면 종일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매일 어떻게 출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삼 남매를 차례대로 깨우고 차례대로 먹인다. 손이 서투른 막내를 살피면서 칫솔을 입에 물고 출근준비를 한다. 남매가 등교를 하고 나면 마스크와 겉옷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엄마 품에서 다정한 인사를 나눈 막내가 제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으로 들어선다. 한 손에는 미처 마치지 못한 화장품을 쥐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사무실로 향한다. 아침에 아이의 눈물을 보면 종일 그 얼굴이 따라다니고 뒤늦게 챙겨주지 못한 준비물이 생각나면 퇴근 때까지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들과 떨어졌지만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나는 마치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했다. 사실은 그런 척했다. 아픈 아이를 두고 돌아선 어미가 어찌 냉정해질 수 있을까? 아이의 칭얼대는 울음소리가 내내 환청처럼 들려왔다.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은 아이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불안한 상태였지만 1초도 낭비해서는 안되었다. 약간의 오기와 반항이 뒤섞인 상태로 일을 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을 듯 온 신경을 집중했다. 12시가 되기 전에 호박마차에 올라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6시가 되기 전에 사무실에서 나가야 했다.


업무에 빠듯하게 쫓기고 있는데 아이들이 아픈 경우는 어떠한가? 아파도 쉬지 못하고 등원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아픈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만 돌볼 수도 없고 업무 완성도가 높다고 성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이 모든 일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책의 회로를 돌리며 하루를 보낸다. 한때의 어려움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소중한 경력을 희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진퇴양난, 앞으로 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은 아이의 성장을 따라 엄마의 일상을 옥죄였다.


서둘러 친정집의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선 순간, 엄마는 아이를 등에 업은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원망과 짜증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네가 데리고 있어라....' 정확한 말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애를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친정엄마라는 아쉬운 대안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고 있었을 뿐 그녀의 사정 같은 건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그동안 잘해오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며 잔뜩 성을 내고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나왔다. 생색낼 수 있는 일인데도 생색내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녀에게 내뿜은 분노의 원천은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 육아가 생색을 내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이라는 현실, 육아를 둘러싸고 친정엄마와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길에,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종종 눈물을 흘렸다. 현실의 육아는 달콤 쌉쌀하지 않고 현실의 워킹맘은 우스꽝스럽고 불쌍했다. 남들처럼 배우고 공부해서 경력을 쌓았만 육아에 쫓기고 있었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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