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뒷면 Jul 29. 2021

아이라는 타인

사람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어느 것 하나 같지 않다. 엄마의 자궁을 공유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탯줄을 자르고 세상에 나온 순간 아이는 타인이 된다.


코로나가 4단계에 접어들고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어린이집도 휴원에 들어가면서 불가피한 긴급 보육만 가능하다. 세 아이들과 종일 붙어 있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재택근무 중이다. 일을 하는 것인지 육아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하루를 살고 있다. 48시간 같은 24시간이다. 돌아서면 식사시간이고 돌아서면 세 아이들이 싸우고 있다. 꽁냥꽁냥 놀고 있다 싶어 마음을 놓으면 금세 한 명이 울고 한 명은 소리 지르고 한 명은 조르르 달려오는 일이 반복된다. '아.... 이 녀석들,,,  온라인 강의도 듣고 육아서도 읽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럴 때마다 성마른 본성이 고개를 바짝 쳐든다. 짜증이 솟구치고 목소리는 날카로워지고 눈빛은 사나워졌다.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의 존재감은 다르다. 엄마를 통해 돌봄과 살핌을 받고 아빠를 통해 안전함을 확인한다.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이제는 제법 커버린 큰 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방안 여기저기 물건을 어질러 놓았다고 잔소리를 들은 큰 아이는 혼자 방을 정리하겠다고 하더니 1분도 채 되지 않아 나를 부른다.

"엄마~~~~!" 정리하다 보니 없어진 물건이 어디 있는 거냐며 행방을 내게 묻는다.  

"엄마~~~~!" 외출할 때 입으려고 따로 챙겨놓은 옷이 없다며 둘째가 나를 부른다.

"엄마~~~~!"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발에 차여 아프다며 칭얼대는 막내가 나를 부른다.

세 개의 욕구와 세 개의 절망이 동시에 부딪혀 내게로 다가온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정신이 산만해진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얘들은 왜 이러는 거지? 이럴 땐 어떡하지? 누구한테 먼저 가야 하나?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짧은 순간 꼬인 상황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신경이 곤두선다. 막내를 안고 첫째와 둘째를 부른다. 화장실에서도 아이들의 목소리에 놀라 서둘러 일을 보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 녀석들은 함께 있으면 10분도 채 넘기지를 못하는 것일까?'세 아이 모두 저마다의 사정을 쏟아내지만 듣고 있노라면 답답함만 차오를 뿐이다. 싸움의 발단과 경과와 결말이 명확해도 쓸데없는 일이다. 아이들도 나도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서 상대방 얘기는 듣고 싶지도 않다. 왜 싸우게 되었는지도 잊어버렸다. 저마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누구를 탓하고 꾸짖어야 한다는 말인가? 엄마의 판결을 바라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세상 제일 곤란하고 난감한 숙제를 떠맡은 기분이다. 모르겠다고 냅다 도망치고 싶다.


인간은 익숙한 것에 끌린다. 나만 해도 그렇다. 타인이 나와 비슷한 취미에 성격을 가졌다면 더없이 좋다. 마음에 든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분명 모르는 사람인데 낯설지 않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마음이 안 맞아서 싸우려고 한 게 아닌데 자꾸 싸우게 되는 것이다. 첫째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귀찮고, 둘째는 오빠와 동생이 맘에 안 들고, 막내는 형아와 누나가 못마땅할 것이다. 그래도 형제고 남매니까 맞추라는 엄마의 바람이 억울할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맞추려고 애쓰다 보니 싸우게 되는 것이다. 15년을 함께 살아도 서로를 이해 못 하는 부부도 있는데 아이들이라고 다를 리 없을 것이다. 우리 집에는 한없이 멀고도 가까운 타인 다섯 명이 동거 중이다.


첫째는 낙천적이고 호기심이 많다. 어느 누구의 꾸짖음이나 핀잔에도 쉽게 낙담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대방이 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 하고 넘긴다. 날이 선 말들도 모서리를 잘라내고 툭툭 털어내는 힘이 있다. 버스를 잘못 타서 길을 잃고 헤매다 돌아온 일을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한다. 치즈, 스테이크, 생선회처럼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고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역사와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아서 사회면에 등장하는 기사를 주제로 자유분방하게 수다를 떤다. 할 말이 있어도 눈치를 보다가 집에서 이불 킥 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는 도전적이고 성취욕이 강하다. 지는 걸 용납하지 못하고(이래서 오빠와 자주 싸운다!) 한번 마음먹은 과제는 어떻게든 해내려고 한다. 마음에 에너지가 많아서 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흥이 차오르면 부끄럼 없이 밖으로 표현하고 표출한다. 깔깔대고 웃다가 펑펑 울다가 감정 변화가 심하다.(사춘기 초기) 초콜릿처럼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고 영상을 편집하는 재주가 있다. 등을 대면 1초 안에 잠이 든다.


셋째는 눈치가 빠르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노련한 형과 누나사이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방법과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는 동물적인 직감이 있다. 중장비, 소방차, 경찰차 온갖 탈것과 사랑에 빠져있다.


가족이라고 내 마음과 같을 리 없다. 다른 것이 기본값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의 다름은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이럴 때 폭력이 되고 무기가 된다. 종일 집안을 떠들썩하게 하는 외침소리는 다름을 받아들이려는 지난한 과정이다. 지치지 않고 싸우는 아이들은 금세 서로를 보고 웃는다. 오늘 싸우고 내일은 웃고 어제는 웃고 내일은 싸운다. 하루만큼의 싸움으로 하루만큼의 다름을 배운다. 아이들의 단순함은 타인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사진출처:pinterest>


<사진출처:pintere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