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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ul 11. 2021

삼 남매

첫째 13살, 둘째 10살, 셋째 4살 삼 남매의 엄마다. 출산율에 기여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런 계획을 세울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나를 낳고 둘이 좋겠다 싶었다. 둘보다 셋도 좋겠구나 했는데 막내가 찾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육아가 뭔지도 모를 때 했던 순진한 소리였다. 삼 남매의 육아가 쉬운 일은 아니다. 계절 마디에 온갖 감염병이 돌 때면 아이들을 챙기느라 힘에 부쳤다. 아프고 짜증 내는 아이들 곁에서 휩쓸리고 소진됐다. 셋 중에 하나가 소아과 문턱을 넘고 나면 두 아이도 따라 앓고 아팠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주말마다 소아과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남매를 지나간 바이러스가 막내에게 호되게 머물 때는 입원하여 치료하기도 했다. 혹독한 계절을 겪고 나면 아이는 쑥 자랐고 엄마도 단단해졌다.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을 감지했다. 남매가 제법 성장하고 새로운 업무에 의욕을 띠고 있을 즈음이었다. 주말이면 찾아오는 익숙한 피곤함이 아니었다. 선명한 두 줄, 임신을 알리는 붉은 선, 우리는 놀랐고 당황했다. 어리둥절하기는 남편도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생리주기가 일정하지 않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심난한 감정에 휩싸여서 자책하며 서로를 할퀴었다. 우리를 찾아온 생명에게는 숨기고 싶은 이기적인 감정이었다. 반갑고 설레기보다는 부담스럽고 두려웠다. 자그마한 생명이 누워있다 고개를 들고 엉금엉금 기고 아장아장 걸어서 엄마에게 뛰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몸으로 기억한 돌봄의 날들이 생명의 기쁨을 방해했다. 세상에 없는 생명을 빚어내는 여정에 다시 오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냥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했다.


마흔을 넘어선 세 번째 출산이었다. 몸도 마음도 금세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꼬물거리는 아가의 모습이 예전과는 다르게 나를 사로잡았다. 쓸쓸하고 비루한 인생에 희망을 걸고 살아갈 힘을 만들었다. 애매하고 어리숙한 나도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밀하고 다정한 그의 세계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엄마의 동그란 배를 신기하게만 바라보던 두 남매도 생명의 신비로움에 빠졌다.


먹고 자는 일이 규칙적인 순한 아이였다. 막내는 가족의 애정을 독차지하면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외출도 여행도 마음껏 할 수 없는 답답한 일상에서 막내는 우리의 태양이 되었다. 그를 통해 웃고 떠들고 울고 때리고 싸우고 먹고 마시고 잠들었다. 우리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였다. 망설이고 주저했던 막내와의 만남은 생명의 기쁨 그 이상이었다. 좀 더 선명하고 생산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했다. 좀 더 확장하고 발전된 내가 되고 싶게 만들었다. 오늘의 나를 매일 새롭게 갱신시켰다.


직장에서도 삼 남매를 키우면서 일하는 여성 동료는 많지 않다. 하나를 두거나 친정이나 시댁의 조력을 받으며 둘을 키우기도 한다. 자녀를 몇이건 일과 육아 사이에서 버거워하는 것은 모두 다르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예고한 나의 소식을 알게 된 동료들이 생겨났다. 막연한 부끄러움에 나는 자꾸만 숨어 다녔다. 본성을 절제하지 못하여 경력관리가 미숙한 칠칠이라고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폐쇄적인 조직에서 여성에게는 엄격한 평가 기준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동료들이 건네는 가벼운 인사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못했다. 선한 의도라고 애써 마음을 달래도 신경이 쓰이고 짜증이 났다. 그들이 보내는 인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용기 있다, 대단하다며 감탄하거나 힘들지 않겠냐며 측은해했다. 삼 남매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 거라며 주머니 사정을 염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동료이자 선배로서 건네고자 했던 현실적인 걱정이자 안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반갑지가 않았다. 성인 여성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일신상의 변화를 궁금해하며 평가하는 태도가 불쾌했다. 격려와 호의를 가장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문화를 자상 함이라 여기며 너그럽게 넘어가는 곳이었다. 내색할 수 없었기에 숨듯이 지냈다.  


오랜만에 삼겹살을 먹으려 저녁 외식 길에 나섰다. 코로나 때문에 나서기 쉽지 않았지만 한창 식욕이 오른 큰 아이의 성화를 막을 수 없었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 출입자 명단을 작성하고 있는데 점원이 다가오며 물었다."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어머! 성인 두 분에 자녀분이 셋이세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당황하던 점원은 식당 홀의 테이블을 둘러보며 서둘러 자리를 마련한다. 일반적으로 식당 테이블은 4인을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다. 작은 테이블을 두 개 붙이거나 조금 큰 4인 상에 아이 의자를 덧붙여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가 태어난 이후로 외출할 때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이었다. 성인 남녀에 아이 둘... 4인 가족, 가족구성도 사회가 정한 이상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5인 가족인 우리를 사람들은 낯설어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낯선 이들의 무례한 질문과 충고를 맞닥뜨린다.


"둘째 하고 막내가 나이 터울이 좀 있나 보네?"  

"아휴, 힘들겠네. 그래도 키우고 나면 좋을 거예요"

"우리 애들은 하나 낳고 더 낳을 생각을 안 하더라고. 다복하니 보기 좋구먼"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가벼운 말들이 가만히 왔다가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의 쓸데없는 참견에 무던해지지가 않는다. 세 아이와 함께 사는 날이 매일이 생소하고 소란스럽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가끔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왕좌왕하며 진땀을 빼기도 하지만 야물지 못한 엄마 손에서도 아이들은 제 힘껏 자라난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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