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이불 사이를 뒤척이며 더 잘까, 말까 잠시 고민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눈을 뜬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보이차를 한 모금 입에 물고 방 한편에 말려있는 매트를 편다. 또르르르르.... 돌돌 말린 매트가 펴지며 뭉쳐진 마음도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마음에 둔 요가 선생님 (서리님, 요가 소년님, 에일린 님, 요가은 님) 수련 영상 중에 오늘은 한 시간짜리 빈야사로 정했다. 매트 앞쪽에 영웅자세로 앉아 숨을 가다듬는다. 나지막한 호흡과 함께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 따뜻한 기운이 발끝부터 차오른다.
왼쪽 오른쪽 오르락내리락 자세를 따라가다 보면 아이에게 소리 지른 나, 엉뚱한 실수로 문서를 작성한 나,,, 영화 장면처럼 일상의 조각들이 지나간다. 호흡은 가빠지지만 마음은 가볍다. 뒤죽박죽 꽉 차서 제멋대로 날뛰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란스러운 감정들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가고 송장 자세로 자리에 눕는다. 온몸이 스르르륵 매트 속으로 녹아내리는 것 같다. 기분 좋은 나른함에 야트막한 잠으로 빠진다. 횡격막을 드나드는 뜨거운 호흡과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있다.
시간도 공간도 모든 것이 정지된 것만 같은 고요함... 평화로운 그 찰나의 시간
거실 한편 요가매트가 놓인 그곳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온전한 나를 인식하고 내 숨이 드나드는 것을 바라본다. 손끝 발끝으로 전해오는 찌릿함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나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존재함 자체로 충만함을 느낀다. 오늘도 건강하게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느슨해질지 모를 잠깐의 다짐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틈이 생긴다. 이불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삼 남매 사이에서 치이고 도돌이표 같은 집안일에 허덕이고 말도 안 되는 어젠다가 넘치는 직장에 숨이 턱턱 막히다가도 내일 새벽 수련에서의 나를 생각하며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하루를 시작해야 할 가장 큰 이유에 요가가 있었다. 요가를 시작한 것은 막내가 백일을 막 넘긴 시점이었다. 마흔을 넘은 나이에 세 번째 출산은 몸에도 마음에도 무리였다. 금방 피곤해지니 쉽게 짜증이 나고 아이가 귀찮게 여겨졌다. 그냥저냥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아기띠를 착용하고 아이를 안고 있던 나의 모습이 거실 한 편의 큰 거울에 비쳤다. 깜짝 놀랐다.
'이건 누구지? 이게 나라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꾸부정하고 추레한 어떤 낯선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아...... 이건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틈만 나면 눕고 싶었고 수시로 잠이 몰려왔다. 책 읽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그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건만 그마저도 진도가 나가지 않고 제자리였다. 몇 장도 넘기지 못하고 졸음이 몰려와서였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싫었다. 그건 진짜로 싫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운동을 했다. 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출산 이후 늘어지고 약해진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을 찾다 보니 요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매일 10분 20분 30분 40분씩 시간을 늘려가며 몸을 움직였다.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10분을 채 못한 적도 있었고 한껏 자세를 잡고 있는데 아이가 깨는 소리가 들려 후다닥 옆에 앉아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남은 수련을 마 저하기도 했다. 요령도 없고 이론도 없이 너튜브의 영상만 보고 무작정 따라 했으니 누구에게 보여주기도 창피할 만큼 제멋대로였다. 그럼에도 수련을 마치고 나면 뿌듯했다. 어제는 어정쩡하기만 했던 내가 오늘은 좀 덜 어정쩡한 모습이 되었다. 오늘의 나를 위해 무언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했다는 것에서 오는 즐거운 기분이었다. 매일의 소중한 일상이 된 그 시간을 작은 수첩에 '00 선생님의 00 요가 00시간'으로 적어 내려갔다. 한 권이 다 채워질 때쯤 몸에도 힘이 생기고 마음도 탄탄해진 기분으로 하루를 가뿐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일상을 살아있고 생동감 있게 하는 건강성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복직을 한 이후로는 종종 새벽알람을 듣지 못하고 뒤늦게 눈을 뜨기도 한다. 그래도 꼭 10분이라도 매트 위에 앉아 숨을 고른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는 새벽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요즘은 촐랑이듯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면 햇살이 벌써부터 쨍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를 배경 삼아 수련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