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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an 22. 2023

낯선 이별, 서툰 작별

남편과 내 주변에는 갑작스러운 질병과 사고로 일찍 죽은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부모님과 할머니가 내게는 아버지가 그러했다. 를 만나기 몇 년 전 부모님 떠났고 그를 만나고 얼마 뒤 내 아버지 떠다. 이른 이별이었다. 사랑하는 이들 주변에 죽음이 서성이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함에 초조해질 때가 있다. 그의 부모와 나의 아비가 그러했듯이 약속도 예고도 없이 작별 없는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했다.


아버지가 서슴없이 선택하고 안도하게 만든 죽음을 떠올린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에 가까이 있었다. 별스러울 것 없이 엇비슷한 하루에 아무렇지 않게 성큼 찾아올 수도 있었다. 삶의 진부함과 비루함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모든 것이 구질구질하고 징글징글해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 때, 죽음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사소하고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생의 고단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제 그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졌을까?


사람들과 호형호제하면서 술을 마시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였다. 어려운 시절을 지냈지만 밝고 유쾌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능청스럽게 농담을 건네곤 했었다. 그러던 그가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에 멍하니 있는 날이 이어졌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자 친구를 만나려고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그랗게 구부러진 등과 어깨, 오래 입어 늘어지고 누릿해진 티셔츠, 눌려있는 반백의 뒷머리 '어디 가는 거냐?'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늦지 않을게요'  '응... 그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석 옆에 앉아있던 나는 아파트 입구에서 서성대는 아빠를 보았다. 딸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멀리 차를 돌려세워 급하게 남자 친구를 보내고 그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빠... 여기서 뭐 해?' '응.... 요즘 네가 만나는 애가 저 사람이냐?' '어........ 응' 그는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곤 멀어져 가는 남자 친구의 차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때는 그의 눈길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삼 형제의 장남인 아버지의 첫아이, 큰딸이었다. 어릴 적 내 행동의 이유는 그의 인정이었다. 동생에게 양보하고 아빠 뜻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고 공직을 밥벌이로 하고 있는 것도 전부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지만 그는 칭찬에 인색했다. 잘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에 꼽을 정도로 그는 완고하고 인색했다. 너그럽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장녀라서 해야 할 일은 많았고 평가와 인정의 기준 자체가 높았다. 반면에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와 선택권은 좁았다. 조금 성장하고 나서는 알아서 해주기를 원했다. 공부하고 취직하고 스스로 자립하기를 원했다. 네 인생 네가 사는 것이라며 물러서듯 말했지만 온전히 내맡기지는 않았다. 당신이 정해놓은 경로를 이탈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는 동정심을 자극하며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어머니의 돌봄과 가사가 내 일처럼 여겨지는 일이 빈번했다. 영역을 침범하고 넘어서는 일을 아무렇지 않아 했다.


당신의 영향력을 선하게 나누려던 사람이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보수적일 만큼 고리타분한 가치관을 가졌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아버지가 발견된 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시간 그는 짧은 편지를 썼다. 내가 보낸 편지에 한 번도 답장하지 않던 그는 답장을 할 수 없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흐트러진 차림새로 현관문을 나서는 그를 떠올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몇 발자국 곁에 영문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아내와 어머니가 눈에는 보였을까? 우리를 생각하기는 했을까?  존재로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머뭇거림 없이 길을 나서게 했을까?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일까? 답을 찾을 수 없는 닫혀버린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묶어두고 외면한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 글자 속을 헤맨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을 맴돌다 감정은 길을 잃다. 내가 쓴 글자들이 아름답지 않고 처참해서 지우고 다시 쓴다. 조금 더 말랑하고 낙관적인 글자로 바꿔보지만 어색해서 다시 쓴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았는데 벌써 15년 전 일이다. 그를 지탱해 준 나무는 베어지고 둥치만 남았다. 그를 발견하고는 창백해진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제야 현장에 있었던 엄마와 동생의 마음을 더듬어본다. 슬픔, 공포,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 쏟아지는 감정에 매몰되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가 죽어버린 장소가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서 그곳을 떠났다.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과 바람은 살랑이는 봄색깔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장례식이고 뭐고 남자 친구의 손을 잡고 달아나고 싶었다. 왜 하필 이런 날에... 아버지를 원망했다. 원망해 본들 달라질 것이 없었다. 쓸모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원망했다. 오직 그것만이 그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인 것처럼 매달렸다. 원망하면서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했다. 부지런함과 근면함을 제일로 여기고 의지를 신봉한 사람이 선택한 결말은 모두를 혼란과 실망에 빠트렸다. 어려운 정신분석 서적을 뒤져가면서 서툰 분석도 해보았다. 자신을 조여 내고야만 그의 선택을 이해해보려 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면 어떡해. 온갖 점잖은 척 어른스러운 척 다하더니 이게 뭐야? 자기 삶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더니 이렇게 가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꼭 그래야 했어?' 많은 시간 동안 들어줄 사람도 없는 푸념을 반복했다. 쓸모없는 짓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결코 죽지 않을 줄 알았으나 죽어버린 그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조금 편안해질 수 있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추측과 가정사이를 오가면서 헤아려 보려 했다. 그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실행에 옮기기 전에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틀린 가정이다. 모든 과거는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이 되었다. 시간마저 거스르려는 헛된 희망이었다. 설사 알게 되었다 한들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찌 그를 알 수 있겠는가 알고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은 아프면서 안 아픈 척하고 슬프면서 슬프지 않은 척하는 관계였다. 그것이 내 가족의 진짜 모습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지우고 그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그의 선택을 생각했다. 본질적 고독과 실존적 고민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점에서는 가능할 수 있었다. 아라고 생의 무게가 가벼울 리 없었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되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질주했을 것이다.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죽음을 조금 일찍 다급하게 찾아간 것뿐이라고, 남겨진 이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행운의 결말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비극적이고 비참하고 참혹하다고 했다. 그의 가족인 우리도 세간의 평가와 편견에 동조했다. 일일이 반박하기 어려운 현실에 타협하기 위해 그 모든 일을 비밀로 묶어버렸다. 그를 꺼내어 놓고 하염없이 불러보고 울부짖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목에 무언가 막혀있는 듯한 답답함과 먹먹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서둘러 덮으려고 했다. 말하지 못하게 했고 묻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슬퍼할 시간을 없애 버렸다. 아버지를 떠올릴만한 물건도 치워버렸다. 애도와 슬픔의 시간을 없애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아버지를 추억하지 않았다. 누구도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애도의 시간을 금지한 채 흩어지고 불화다.  서로를 모르는 척하면서 숨어서 그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애원했다. 안 그런 척하면서 그것을 무한히 되풀이했다. 그가 살아서 곁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리는 할머니 장례식 이후부터 만나지 않는다. 만나고 싶지만 만나려 하지 않는다. 가족을 보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슷한 그림처럼 겹쳐져서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서로를 들여다보고 싶지만 들여다보지 않았다. 궁금하지만 궁금해하지 않았다. 관심이 있지만 관심이 없는 척했다. 그를 떠올리는 것이 금지된 일이었다. 그들은 그와 함께한 시간이 기억하지 말아야 할 과거라 말했다. 그것이 나를 화나게 했다.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는 깊게 단절되었다.


이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다. 사랑해서 같이 살겠다고 맹세해 놓고 전생에 원수였던 것처럼 서로를 할퀴고, 열 달을 품었다가 낳은 자식의 행동이 못마땅해서 소리를 질렀다. 징글징글하다면서 행복이라고 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화를 냈다. 할머니는 오래 산 것이 죄라고 말하면서 약봉지에 숫자를 적어가며 챙겨 드셨다. 어머니는 쓸쓸하게 떠난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면서 그가 아끼던 난과 입던 옷을 남김없이 쓸어 버렸다.


<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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