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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Aug 08. 2022

징징대는 어른 아이

오늘도 엄마는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벨을 누른다. 이때마다 문을 열을까 말까 고민한다. 이동식 장바구니를 열고 반찬통을 주섬주섬 꺼낸다. 이런저런 음식이 뒤섞인 역한 냄새가 훅하니 코끝을 스친다. 낡고 오래된 집이 팔릴 일이 있겠냐며 독립하려던 의지를 방해했었다. 반찬이 필요하면 사 먹으라며 내쳤었. 이제 와서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자신의 감정을 앞서서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자녀를 위해 자기 인생을 바쳤다고 하는 말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하게 됐다. 당신의 희생을 또 다른 희생으로 무작정 보상받으려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것이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통행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문에 들어선 엄마를 마주 보니 마음이 또 시끄럽다. 기대하는 마음과 기대하지 않은 마음이 고개를 들고 서로 맞붙어 싸웠다. 엄마를 보면 서운하고 아팠던 기억과 해묵은 분노가 떠올라 나를 뒤숭숭하게 했다. 무의식적인 반응에서 놓이고 싶지만 애쓴다고 나아지지 않았다. 약해지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방어기제를 막지 못했다. 오늘도 나는 방어기제 앞에서 무력해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태도로 엄마를 밀어내고 거부했다. 그녀의 모든 호의와 정성을 의심하고 거절했다. 그런 내 행동이 불편하고 못마땅해서 자책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거 같았다.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용돈도 주고 가지고 싶던 물건도 사줄 거라는 약속에 더 이상 속고 싶지 않았다. 나로 인해 참고 살았던 세월을 보상받겠다며 따지고 달려들 엄마의 불콰한 얼굴이 떠올라 반찬을 받는 일이 꺼려졌다. 경직된 자세로 엄마가 건네는 호의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밀어냈다.  

  

내가 경험한 엄마는 냉담하고 야박했다. 엄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도 있다. 엄마에게 받고 싶은 사랑과 인정이 다소 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고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처음이자 전부였다. 아이가 엄마에게 바라는 사랑은 생존과 연결된 욕구다. 채워지지 못한 유아적인 본능과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늘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 결핍에 시달렸다. 수용되지 못한 경험이 쌓여갈수록 내 존재를 의심했다. 엄마에게 애정과 사랑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로는 감사와 존경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를 보면 화가 났다.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보살핌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 그것을 귀찮고 번거롭다며 내쳤었다. 아쉬울 때만 엄마를 찾는다며 핀잔하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고 감사하지 못하는 딸이 되어가는 내가, 윤리에서 멀어지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효도라는 사회적인 기준 앞에서 죄책감을 느꼈다. 어미를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고 그 마음을 숨기려 애썼다. 

   

아빠가 갑작스럽게 떠나고 할머니와 엄마 두 분만 남게 되었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친정 집 근처에서 살았다.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 할머니는 마음의 병을 몸으로 앓았다. 아픈 곳이 많았지만 약을 먹어도 났지 않았고 최첨단 기계를 사용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죽음만이 그녀를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내색하지 못했지만 가족들은 그녀가 질병이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자책에 묶여버린 노모를 살피는 일에 가족들은 눈치만 보았다. 할머니의 남은 자녀들과 손주들이 있었지만 안부 전화만 할 뿐 직접 모시고 다니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누구도 요구한 적 없는 도움과 아무도 시킨 적 없는 살핌을 제공했다.


아이들이 친정을 오가고 남편이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 오갔다. 그렇게 선의로 시작된 일들은 눈덩이처럼 불났다. 늙고 노쇠한 어른을 돌보는 일이 우리 부부의 몫이 되어갔다. 보살핌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병원을 오가고 다음 일정을 예약하는 신경 써야 할 번거로운 일들이 늘어났다. 엄마도 다른 가족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할머니를 남편에게 맡겨놓고 외출을 했다. 온갖 핑계와 지키지 약속을 남발하며 나의 희생을 이용했다. 착한 딸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얽매여서 조종당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마음을 잡아보아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맡긴 우리는 푸념할 자격 없다고 자책하며 불평 한번 하지 못했다. 자책과 분노를 끌어안고 번거롭지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받아들이려 했다. 착한 아이가 되려 애쓰는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우리의 수고와 시간이 소모되어 갔다. 몇 년간 병원을 오가던 할머니는 남편이 부른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후송되었고 며칠 후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우리가 했던 희생을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와 동생을 원망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우리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른을 보살피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스스로 떠맡고 있었다. 어른을 보살핌으로서 우리의 욕망을 채우고자 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할 일이었다. 분리불안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기 고양이처럼 내내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은 효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이었다. 희생이라고 말했지만 위선이었다. 나처럼 엄마를 도우며 효도하는 자식은 없을 거라고 동생을 꾸짖었던 것도 칭찬을 독점하려는 욕구였다.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마음이 만든 집착이었다. 인정받으려는 욕망과 목적이 숨겨진 허위였다. 그렇게 나를 희생하고 노력하면 내내 갈망하던 사랑과 관심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무의식적인 욕구불만을 할머니 간병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해소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도 엄마에게 만족할 만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자발적으로 돌봄을 떠맡았던 마음을 인정하고 헌신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엄마 곁을 맴도는 일을 멈춰야 했다. 세 아이의 엄마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독립해야 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얼마 후 이사를 했다. 코로나로 장기화되는 원격수업과 가정보육에 도움이 필요했지만 아이들을 맡기며 쓸데없는 감정에 소모되고 싶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멀어짐으로써 부질없는 인정욕구에서 물러서고 싶었다. 심리적인 불편함이 있었지만 한결 홀가분했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것이 더 이상 죄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    


엄마는 방학이니 아이들을 보러 오가겠다고 말했다. 억눌러 놓았던 어린아이가 뛰쳐나오려 했다. 점심도 챙겨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안되면 시작하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매몰차게 내뱉고는 냉랭해진 공기가 어색해졌다. 이내 없던 얘기로 할까 후회하며 망설였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가져온 짐을 챙겨 돌아갔다. 나는 왜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왜 그러한 엄마를 가질 수 없는 걸까? 나는 살가운 엄마를 가질 자격이 안 되는 걸까?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반찬 통을 노려보며 혼자 씩씩대는 내게 연민을 느꼈다. 무슨 희망을 주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일까?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설레었던 것일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번번이 속고 속상해한다. 이래서 문을 열지 않으려 했다.


삼 남매를 낳고서 동생 편에서 나를 꾸짖던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에게 안 아픈 손가락이었다. 혼자는 힘에 부칠 때 엄마를 찾곤 했다. 일하는 엄마로 사는 일이 힘에 부칠 때, 삼 남매 육아가 버거울 때, 그때마다 엄마는 이런저런 이유로 회피하거나 평가하기 바빴다. 수용하지 않았다. 거절당한 경험에 지배당하여 전화를 하는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생활비가 부족해서 망설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엄마는 그럴듯한 핑계를 둘러대며 거절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미리 준비한 것처럼. 네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했다. 부탁하는 나와 거절하는 엄마, 매번 상황은 거의 비슷했다. 엄마의 도움을 원하는 나와 그럴 생각이 없는 엄마. 거절을 당했다는 것보다 일방적인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더 힘들다. 오죽했으면 엄마를 찾았겠냐며 헤아려 주는 마음은 찾을 수 없었다. 되는 이유보다 안 되는 이유가 많았다. 엄마가 말한 안 되는 이유를 납득하려고 애쓸수록 자꾸 서글퍼졌다. 냉담한 엄마 앞에서 나는 항상 초라하고 못난 아이였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얘기하라고 했다. 무엇이든 방법이 있을 거라고 했다. 혼자 끙끙대다 삶을 놓아버린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 한 말이었다. 그 약속에 마음을 기댔지만 말 뿐이라는 걸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나를 자책했다. 결국은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는 절망에 빠졌다. 깊고 친밀한 관계를 원했지만 수용받지 못한 기억이 나를 휘두르며 할퀴고 있다. 착하고 양보에 익숙한 딸은 더는 매달리지 않았다.      


내 안에는 아직도 엄마의 보살핌과 애정을 원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엄마를 보면 어린아이가 설레발을 친다. 혼자서는 힘드니 엄마가 도와달라고 칭얼대며 보챈다. 상처에 갇혀서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수용되지 않을 것이 뻔하니깐 솔직하게 말하면 안 돼. 나는 스스로를 검열하며 마음을 단속했다. 거절을 예상하위축되어 분노하면서 방어했다.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말라며 씩씩한 척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마음이 편치 않아 며칠 동안 같은 말을 내내 곱씹었다. 사랑한다고 애쓴다고 말하지만 어떤 요구도 수용하지 않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사랑의 마음이라면 이렇게 불안하고 실망스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는 어떤 것이 엄마의 마음인지 더욱 혼란스러웠다. 엄마에게 채우지 못한 욕구가 쌓여서 자꾸만 화가 났다. 엄마다워야 한다는 욕망과 집념에 붙들려서 변하지 않는 늙은 엄마를 원망하기를 멈추지 못했다. 


며칠 후 그녀는 연락도 없이 와서 벨을 누르고 불쌍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 그런 소리 했었니 착한 우리 딸이 양보해야지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갈망에 빠져서 늙은 엄마에게 징징대는 어른아이였다. 


<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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