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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an 23. 2022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는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병에 걸려 죽을 거라고 했다. 말 안 듣는 어린이를 잡아간다는 호랑이보다 무서웠다. 나의 잘못으로 그녀가 죽을 수 있다니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착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요구하지 않고 떼쓰지 않고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가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녀 죽음의 원인이 되기는 싫다.


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내게 어떤 위험한 일이 일어날까 봐 염려했다.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 많았다. 미래에 대한 설렘을 두려움으로 바꾸었다. 애정의 다른 방식이라고 이해하려 했다. 그녀는 걱정한다는 말로 어린 날의 도전에 대한 적대감과 불안을 감추었다. 그녀의 불안이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엄마 말 안 듣고 네가 겁도 없이 뭘 모르고 그래, 엄마 말 안 듣고 그다가는 고생할 걸, 엄마 말 안 들으면 일이 잘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나에게 막연한 공포감을 남겼다. 그것으로 나를 조종하려고 하였다. 그녀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큰 용기 필요다. 때로는 그녀가 알지 못하는 일을 벌이고는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다. 그녀 대로 일이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무서웠다. 내가 선택한 모든 일이 그녀의 주문대로 흘러가게 될 거라는 불안이 현실이 될 것 만 같았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녀가 만든 불행의 시나리오를 점검했다.


엄마는 무기력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졸았고 자주 아팠다. 우산 없이 비를 맞은 채 하교하던 날도 그녀는 자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가 아프고 내일은 저기가 아플 예정이었다.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은 항상 어딘가 아팠다. 첫 아이를 낳고 젖먹이 곁에서 밤을 지새우던 때도, 아이들 유치원 학예회 때도, 할머니가 낙상으로 넘어져 입원해 있을 때에도, 코로나 가정보육에 지쳐갈 때도, 그녀는 아팠다. 그녀의 질병은 삶의 모든 번거로움을 피해 가는 방패막이였다.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씩씩하게 알아서 잘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엄마는 혼자서 결정하고 선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러한 일에 자격과 기준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여자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아버지의 결정 뒤에 그녀가 있었다. 학원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놀러 갔던 그날도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엄하게 꾸짖는 아버지의 체벌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졌다. 굳게 닫힌 문뒤로 그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도와주지 않았다. 거대한 부모 곁에 흐트러진 내가 참을 수 없이 초라했고 참혹했다. 그녀는 나의 노력을 평가절하하거나 부정했다. 남자가 벌어다 주는 돈을 편하게 쓰면 그만이지 돈을 벌려한다고, 보조석에 편하게 앉아 가면 될 것을 운전을 하려 한다고, 집에서 살림이나 할 것이지 일을 하려 한다고, 안일도 대충 하고 애들 역성도 적당히 들어주면 될 것을 유난을 떤다고 꾸짖었다. 당신이 살았던 익숙한 생활 속으로 나를 욱여넣지 못해 안달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사랑과 인정을 그리워하며 엄마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남들이 먹다 버린 고기라도 집어먹으려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사랑에 굶주려있다. 사랑을 얻으려 여기저기 헤프게 마음을 흘리고 다닌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기만 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세로 나를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 내리다 멈춰버리고 만 비에 길을 나선 지렁이는 돌아갈 때를 놓치고 말라비틀어졌다. 박제된 그 모습이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행성을 향해 맹목적으로 내달리는 내 모습 같아 한참을 그 앞에 멈춰 있었다.


정작 죽어버린 것은 아빠였다. 죽음으로 자신을 드러낸 것은 아였다. 좀 더 일찍 그의 마음에 들지 못한 걸 후회하게 한 건 아빠였다. 그 죽음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도 아빠였다. 녀의 말대로 내가 아빠 말을 듣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도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벌을 받은 걸까? 나 대신 그가 엄마의 주문에 린 걸까? 의 선택과 죽음을 없었던 일처럼 지우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엄마의 주문이 짜는 아닐까 의심했다.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고 경계를 두 엄마의 나쁜 주문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파장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잠깐 숨어들었다가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나를 혼란스럽게 다. 유령처럼 내 의식의 주변을 맴돌고 서성거렸다. 어린 날의 나를 보살피던 그녀 남긴 나쁜 주문에 사로잡혀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상관없고 의식적으로 애를 써도 쉽지 않았. 도망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착하지도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엄마 말대로 살지 않아도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을 되찾아야 했다.


<사진출처: na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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