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찾아왔다. 목은 칼칼하고 머리는 무겁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쉽게 피곤해진다. 함께 앓는 아이들의 마른기침소리가 이어진다. 멍한 상태로 하루가 지나간다. 감염자인 엄마가 감염된 아이를 돌보느라 녹초가 되어간다.제한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의 짜증과 아픔을 받아내느라 내 몸은 홀대받는다. 몸 둘 곳도 마음 둘 곳도 없는 집안에서 불쑥 쳐 오르는 분노를 아이들에게 쏟아내고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른다.엄마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니라 신경질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한쪽에는 찌개가 끓고 세탁기는 빨래가 끝났다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아이는 똥이 마렵다고 엄마를 찾는다. 헝클어진 머리에 고단한 모습으로 정신없이 집안을 널뛰고 있다. 먹이고 입히고 정리하고 먹이고 입히고 정리하는 일은 끝이 없다. 혼자서 육아와 일 사이를 널뛰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하는 나를 대신에 낮에 아이를 돌보던 어머니와 잦은 다툼으로 관계가 나빠졌다. 끊임없이 눈치를 보면서 원망했고 한없이 미안하면서 서운했다. 아이를 낳아 엄마로 사는 것이 죄가 되는 일이었다. 아이가 아파도 어머니가 아파도 모든 것은 애를 맡긴 나 때문이었다. 애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어머니의 듣기 싫고 아팠던 많은 말들을 삼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모진 말을 주고받을 일이 아니었지만 의지만으로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둘째의 임신 사실을 알고 더는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때 이후로는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주말이면 아이를 맡기고 영화도 보고 사우나도 간다는 누군가의 하루는 내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아기의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부족한 것도 싫고 아이가 있다고 일에 소홀하다는 비난도 싫었다. 그렇게 하루를 업무와 육아로 나누어 빼곡하게 채웠다. 근무시간을 아껴서 퇴근을 맞추고 집에 있는 시간을 쪼개서좋아하는 일을 했다.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요가를 하고책을 읽고글을 썼다. 그마저도 아이가 허락하는 시간의 범위 안에서나 가능했다. 아이를 재우고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다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정감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는 집에서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누나답지 못하다고 맞았고 아프다고 하면 혼났다. 원하는 것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았고 아픔을 감추고 숨겨야 했다. 딸이라서 해도 되는 일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았다. 누나니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말을 듣는 착한 아이라는 조건이 나를 점점 더 비굴하고 빈약하게 만들었다. 나의 성장과 풍요를 원하지 않았다. 자립하려는 의지를 반기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해보아도 합당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언어를 싫어했다. 엄마의 말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이다. 말은 뜨거웠지만 행동은 차가웠다. 말로만 사랑을 하는 엄마에게 느끼는 온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그 말에 안심하지 못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그 말들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때의 어린아이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경험한 차가운 어미를 재생해서 아이들을 움츠리게 할까 봐 겁이 났다. 내가 느낀 냉담한 사랑을 대물림하기는 싫었다. 육아서에서 배운 법칙에 나를 맞추며 자기 검열을 했다. 기본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외면하고 억누르느라 애쓸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날의 나를 감싸주지 못하고 엄마가 된 내게 아이를 보는 일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엄마의 역할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숨 막히는 일상이었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몸에 쌓인 긴장은 질병이 되었다. 의식적으로 조절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몸은 고통을 숨기지 않았다. 스스로를 상처 내고 채근하는 일을 그만두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아픈 감정과 기분으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눌어붙은 딱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내면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나쁜 애착을 털어내야 했다.
지금도늙은 어미에게 아이를 맡긴 일에 죄스러워 자주 찾아가지 않는다.어머니에게 듣고 싶지 않았던 말들은 여전히 아프게 맺혀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내 아이를 어머니도 사랑스럽고 귀하게 여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착한 딸이 되려고 애쓰고 노력했지만 난 언제나 두 번째였다. 다정한 애정은 드물었고 충분한 인정에는 인색했다. 살림밑천으로서 큰 딸의 역할만을 강요했다. 좋은 것은 언제나 동생에게 양보해야 했고 번거로운 일은 모두 내 몫이었다. 누리는 일보다는 맡아야 할 일이 많았다. 할머니의 긴 잔병치레도 그중 하나였다. 사위에게 할머니를 맡기고 사우나에 가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할머니가 떠난 후부터 더 이상 그런 쓸모로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지 않았다.
주말 저녁 상을 치우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땅이 흔들렸다. 치우지 못한 그릇과 음식을 그대로 두고 소파에 누워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당황한 아이들은 창백한 내 얼굴을 보며 불안해했다.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감추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질병 앞에서 무력해진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남매는 두꺼운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고 동생을 챙기며 나를 살펴주었다. 질병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나를 도와줄 어른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사랑이 그리운 어른아이는 남편과 엄마를 떠올렸다.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이곳에 없는 무심한 그들을 떠올리며 원망을 품었다.
한 번도 바쁘지 않았던 적이 없던 그는 종일 소식이 없었다. 일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느라 가족에는 무심한 그를 언제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유가 있겠지, 그럴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일하는 아내에게 협조적이지 않은 그를 헤아리고 수용하려고만 했다. 이제는 부당한 그의 행동과 마음까지 들여다볼 힘이 없다. 너에 대한 환멸이 지나간 자리에 체념이 남았다. 이제는 억지로 애쓰는 일은 그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