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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Mar 08. 2023

다정함이 그리운 사람

증상이 나타나고 치료를 시작 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약물을 동반한 신경치료로 일주일에 한 번 이동시간까지 보태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연차가 많지 않아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실비보험이 있지만 비급여 항목 때문에 치료비가 많다. 월급의 절반이 치료비로 들어가서 생활비가 빡빡해졌다. 교육비와 생활비는 줄일 수 없으니 통장을 보면 한숨만 늘어간다. 예정된 진료를 미루고 버텨보지만 귓속의 이물감과 소리는 줄지 않는다. 생활비가 여유로운 적은 없었지만 요즘만큼 부족하고 아슬아슬한 적은 없었다.


에서 나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오늘도 의료진들은 반가운 인사로 맞아 준다. 은 친절과 다정함이 몸에 배어있다. 방문하는 환자에게 베푸는 의례적인 행동이려니 싶다가도 의아해진다. 그들은 거리낌이 없다. 괜찮으세요?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지금은 어떠세요? 잘 지내셨어요? 많이 좋아지셨죠? 요도 아프세요? 습관적인 질문이라도 나를 궁금해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때로는 그들이 무심코 건넨 온기 어린 한 마디에 울컥해지곤 다. 서비스업 종사자의 상투적인 행동과는 다자연스러움을 느낀다. 다정함이 그리워 그들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어쩌면 저리도 자연스럽게 다정수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다정해질 수 있었을까?


주사를 맞다가 엉엉 울어버렸다. 몸에 닿은 주삿바늘이 억눌린 마음을 건드렸다. 고여있던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다 콸콸 쏟아졌다. 몸이 이렇게 굳을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냐는 그 말에 한참을 소리 내서 울다 숨을 골랐다. 다정한 시선들이 모여 등을 쓰다듬고 휴지를 건네주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훌쩍이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나는 다정함을 원한다. 다정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학습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배우고 싶다. 하지만 다정함이 호구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정할수록 하찮아지고 소모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다정할수록 위험해진다는 편견을 넘어설 만한 확신이 필요했다. 다정함이 서툴고 낯선 나는 그저 그리움으로 다정함을 상상한다.


완벽한 타인과 어떻게 해야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다정함이 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준다고 믿다. 내가 가진 친밀함의 느낌은 막연하고 막막해서 비현실적이다. 몽상에 가깝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 같다. 다정함에 모양있다면 어떨까? 동그랗고 푹신한 쿠션 같을까? 몽글한 솜사탕 같을까? 색깔과 향이 있다면 어떨까? 연한 핑크색에 청량한 향을 풍길까? 


모순적이게도 타인의 다정함에는 크게 끌리고 흔들린다. 내게는 없는 온기를 타인을 통해 느끼고 위안받고 싶어 한다. 남편은 떠도는 바람처럼 끊임없이 밖으로 맴돌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설렘 뒤에 마주한 그에게 다정함을 찾을 수 없었다. 받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며 지쳐갔다. 생활에 필요한 이야기를 했지만 감정을 나누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의 학업과 건강과 마음과 일과를 챙기는 돌봄의 울타리 안에서 홀로 바쁘고 분주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는 혼자맥주를 마시며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원망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다정함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다정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불안이 많은 나는 회피형 애착을 가진 남자를 만났다. 우리는 서늘한 상태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대가 없이 환대하고 선선하게 다정할 수 있는 것도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너를 믿지 못하면 너에게 건네는 나의 호의를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다정함은 상처받기 쉬운 나를 열어내는 도전이고 용기이다. 다정함이 없는 게 아니라 자애와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다정한 그들에게 이끌릴 뿐 마음을 열지 못한다.


<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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