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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Apr 19. 2023

감정쓰레기통

내게 사람들이 묻는다. 직접 상대하기는 꺼려지나 알고 싶은 일을 묻는다.  대부분 어떤 사람에 대한 소문이나 평가에 관한 궁금증이다. 도대체 왜 그런  물어보는 까? 조직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에 관한 정보 캐려고 질문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곰곰이 되돌아보면 나는 주로 듣는 일에 익숙했다.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에서 뭉쳐있던 감정은 내게로 흘다. 엄마는 할머니와 작은엄마들을 욕했고 나중에는 떠나간 아버지를 다. 작은엄마는 엄마를 욕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욕했다. 남편은 직원을 욕했다. 직장후배는 동료와 상사를 욕했다. 동료는 동료와 상사를 욕했다. 상사는 상사를 욕했다. 그들은 자기에게 못마땅한 사람에 관한 험담을 내게 흘러버렸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싶은 마음에 들어주었다. 어만 가는 험담은 끝이 없었다. 듣는 일이 힘에 부쳤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런 적이 많았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에 익숙했지만 듣는 일이 힘들었다. 말을 자르고 모르는 척 넘기지 못했다.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내가 못마땅했다. 


나는 정쓰레기통이었다. 그들은 혼자 가지고 있기 불편한 감정을 털어곳이 필요했다. 그들은 쉽게 공감하는 나의 태도를 이용다. 내 감정이나 상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욕구가 해소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어울렸다. 그들은  자기 삶을 살았다. 들이 버린 재를 뒤집어쓴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쾌쾌하고 칙칙한 감정에 시달렸다. 사람들이 때로는 선의를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서 알게 되었다. 


원하지 않는 친절을 베풀고 뒤돌아서 호구 잡혔다는 느낌에 이불을 쳐내곤 다. 뒤돌아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욕을 하며 원망하기도 했다. 내가 애써 지은 다정함을 거절하는 너를 수용하지 못했다. 그동안 다정했던 모든 일들이 헌신짝처럼 취급받고 있다는 불쾌감에 시달렸다. 나의 다정함을 시샘하고 훼방하고 방해하고 조롱하고 있다는 웃기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썼다 지웠다. 관계의 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이 다가와도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상대에게는 너무나 부족하고 못나고 하찮은 존재였다.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 너는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였다. 불쾌하고 불편한 일이 있어도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숨겼다. 상대의 감정에 신경을 쓰느라 내 감정을 외면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쓸데없이 예민해서 별것 아닌 일에 서운해한다고 나를 꾸짖고 억눌렀다. 어둠이 내려앉는 밤이 찾아오면 묶어놓았던 마음은 흐트러졌다. 지난 일을 곱씹으면서 괴로운 마음에 버둥거렸다. 열정과 냉소를 오가며 쌓은 부정적인 경험은 타인과의 관계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사랑을 갈망하는 만큼 절망이 두려워 관계를 차단하고 기피했다. 혼자가 싫었지만 혼자가 편했다.


지에 몰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렸다. 들의 삶을 도와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에 사로잡힌. 타인을 정하고 연민하는 그 마음은 상대의 말에 쉽게 귀를 여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마음을 내고 듣는 일은 익숙했지만 비난과 원망의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상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불편한 말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기분과 상태는 무시한 채 나쁘고 아픈 말들도 받아냈다. 그것을 거절하버리지 못한 채 여서 음이 시궁창이 돼버렸다. 갈등과 분쟁이 싫지만 예고 없이 가는 모난 말에 찔리는 일이 많았다. 내 마음이 다치지 않 지키는 법을 알지 못했다.


A는 그런 나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퇴근길에 전화를 해서는 업무 중에 일 털어놓았다. 맞장구치며 듣고 나서 내 얘기를 하려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꺼내기가 어려웠다. 비슷한 얘기인데 해서 뭐 하나 싶고 안 그래도 힘들었을 텐데 내 고된 얘기까지 덧붙이는 게 미안했다. 내가 너로 인해 힘들어도 너는 나로 인해 힘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배되고 있었다.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하지 않을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듣는 역할을 맡았다. A는 직장에서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얘기하 나니 후련하다고 말했다. 못다 한 얘기가 있지만 A의 밝아진 목소리를 들으면 뿌듯해졌다.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에 충만해졌다.


화를 끊고 나면 헛헛하고 짜증이 솟구쳤다. 가슴이 답답하고 피곤했다. 그가 버린 감정이 내게로 옮겨 붙은 것이었다. 형체가 없는 어떤 탁하고 어두운 감정이 나를 짓눌러 지치게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고 나니 진이 빠졌다. 전화벨이 울리면 모르는 척 피하고 받지 않기도 했다. 부재중 전화를 쌓아놓고 보지 못했다고 잠들었다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푸념만 하는 전화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 역할에서 벗어나면 나를 찾을 이유가 없을 거 같았다. 그게 싫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하지 못다. 아무렇지 은 척했다. 웃으며 듣고 신경 쓰면서 위로와 조언까지 덧붙였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위선을 떨었다. 털어놓고 싶은 얘기를 숨기고 감추면서 내 일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범한 척했다.  A가 점점 버거워졌다. 그러다 결국은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말았다.


잘 들어주면 상대도 내 얘기를 잘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보이지 않는 약속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에 절대적 약속은 다. 책으로 익히고 배운 관계는 실제와 달랐다. 들을 줄만 알았지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 하지 못했다. 게다가 부정적인 감정은 꾹꾹 누르고 숨겼다. 말하지 않았다. 직하게 말하면 무슨 큰일이 일어것만 같아 불안했다. 관계가 깨지고 좋아하는 사람을 잃어라고 생각했다.  A와의 관계는 회피하다 끝내는 단절되었다.


그저 상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괜찮은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용당했다는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적이 많았다. 부당하면 화를 내고 부담스러우면 거절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슬프면 울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걸 안 하려고 억눌렀다. 그래서 관계가 어렵고 사람이 부담스러다. 계가 발전하고 밀착될수록 두려워 도망을 치고 숨어버다. 습관적으로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그것에 익숙해졌다.


<그림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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