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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Mar 23. 2023

예민하고 불안해서 그래

집과 직장을 오가는 삶의 틈바구니에서 피어오르는 우울에 익숙. 귓속의 소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팀장, 엄마, 아내, 나를 구속하는 사회적 규범과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다. 삶의 번잡스러움서 벗어나고 싶다.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모두들 자기만의 고독으로 힘겨워 보이지만 내 것 제일 무겁게 느껴진다. 고독을 나눌 사람은 없을까? 이럴 때는 가족도 남과 다름없다. 그들의 무관심 나의 외로움 더욱 돋보이게 다. 차라리 서로를 모르고 살았으면 덜 미워했을지겠다.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엄마도 있지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 만족하지 못한다. 물을 먹어도 목마른 사람처럼 끊임없이 갈증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얼마나 허술하고 쓸모없어 보일까 염려한다. 대체로 불안정하고 우울하다. 당장 오늘 웃으며 인사한 아이들이 내일은 사라져 못 보게 될까, 옷장에 옷이 화장실에 수건과 휴지와 비누가 떨어질까, 상대가 내 말을 오해해서 엉뚱한 소문을 낼 까봐, 오늘은 사랑한다고 말한 그가 내일은 사라져 버릴까 불안하다. 눈앞에 보일 때까지 전화하고 카톡을 보낸다. 우리가 모아놓은 사진과 기록을 누군가 이용하다 한순간에 뭉개버릴까 불안하다. 실체도 없으면서 시시때때로 나를 에워싸는 불안을 확인해 본다. 막상 적고 보니 실체가 없지는 않지만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미약하다. 즐거운 마음은 찰나이고 내내 좋을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은 걱정이 생긴다.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나는 나를 독하고 검열한다. 촘촘하고 세밀하고 정밀한 자를 사용해 날카롭게 비난한다. 어느 순간에도 못한다. 만족함과 동시에 안주하게 될 거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보다 더 잘하려고 애쓰며 나를 닦달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칠 때까지 채근한다. 긴장과 불안이 만든 강박이다. 스로 찍을 휘두르며 계속해서 내달린다. 아무도 채근하고 꾸짖지 않아도 스스로를 검열한다. 이래서 되겠어 창피한 줄 알아야지 나는 늘 이유 없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자꾸만 숨어든다. 이곳보다 더 나은 곳, 아름답고 평화롭고 고요한 세상이 어딘 가에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완벽과 순수를 동경하며 꿈꾼다.


참고 버티는 것은 잘할 수 있다. 인정받을 때까지 참고 인정받고도 만족하지 못한다. 더 잘해야지, 교만해서는 안돼 스스로를 채근하고 채찍질한다.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모른다. 노력해야지, 최선을 다해야지,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돼, 게으름 피우지 마, 네가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거야, 초자아의 목소리에 사로잡혀 내 능력을 무한으로 넓히려 한다. 휴식과 나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악착같이 매달리고 붙잡는고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 근성 깡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지를 부린다. 나정도 되니까 이만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려다 내가 나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불공정한 결정을 포함한 모든 것과 타협한다. 내 생각과 가치관과 취향을 접고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조그맣게 만든다. 예의 바른 표정과 말투로 상대에 대한 경멸과 조소를 감춘다. 기준을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 공적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도 나쁘게 보일까 봐 내 의견을 말하며 맞서지 못한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상대의 약점을 집어내는 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앞선 감정을 생각이 따라잡지 못한다. 작은 자극에 예민하다. 사람들이 많은 시끄러운 곳보다 집이 좋다. 책을 들고 침대로 숨어 들어서야 마음이 놓인다.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게 편하고 익숙하다.     


심약한 마음은 상처에 취약하다. 내면에 수두룩하고 무수한 자아가 서로 충돌하고 뒤엉켜서 난장판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 일어서지 않고 뭉쳐진 마음을 가만히 웅크 살펴본다. 이제는 장을 풀어도 된다고 래도 별일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긴장하지 않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긴장을 풀고 나면 날 것의 내 모습이 드러나게 될 까봐 두렵다.


이 정도면 충분히 열심히 부지런히 성실히 살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고 문제가 있다 여기는 마음 이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초조해진다. 늘 쫓기듯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촘촘하게 할 일을 정해 놓는다.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한 게 많은 지 모르겠다. 나는 왜 사람들의 말에 자꾸 상처받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하는 말일 텐데 나는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 곱씹으며 생채기가 난다. 전부 내 문제인 것만 같아 마음 열기가 두렵다. 이제는 편안해지고 싶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알고 싶다. 내 마음이 고장 난 것처럼 자꾸 오작동을 일으킨다. 작은 일에도 쉽게 뒤엉키고 예민해지는 나의 마음을 살피고 싶다. 불안에 쫓기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다. 안정감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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