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뒷면 Apr 06. 2023

정해진 길은 없지만

아이 식탁 의자에 앉아 스팅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2년 전부터 기타를 배웠다. 아이의 방에서 기타 소리가 려오기 시작했다. 일렉기타를 연주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했다. 자기만의 기타를 가지고 싶어 했다. 값싼 금액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간절 요구를 물리치지 못했다. 악기를 붙들고 동영상을 찾아보며 연습했다. 과제와 학원수업을 빼고는 연습에 열중했다. 연주를 녹음하고 들으며 자신만의 방식을 탐했다. 음악사와 연주자를 연구했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기질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중학교 1년을 마치고는 기타로 할 수 있는 진로를 진지하게 탐색했다. 고민하고 질문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실용음악을 배우겠다고 했다.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음악을 취미가 아니라 밥벌이로 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당황 철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꾸짖을 뻔했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질문하는 아이에게 뻔하고 성의 없는 대답할 수 없었. 시간이 필요했다.


구글검색을 해보았다. 실용음악 입시, 실용음악 진학, 알고리즘은 적당한 정보들을 제공했다. 정보가 쌓일수록 암담하고 막막해졌다. 어디에서 어떻게 준비하는 게 아이에게 좋을지는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투명 무한의 선택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어떻게 분별하고 알려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대중음악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나 평가도 긍정적으로 변했지만 현실은 빈약했다. 배고픔과 외로움과 가난 벗처럼 여기며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탁월한 재능 없이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는 팍팍하고 험한 세상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이 큰 만큼 좌절이 클 수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혹독한 현실 앞에서 부서지고 꺾버릴 수도 있었다. 공부가 싫 도피하려다 더 큰 난관을 만날 수도 다. 레슨비와 생활비와 학비도 따져봐야 했다. 몰입해 있는 아이에게 엄마의 사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밀어주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하는 반대생각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실적인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했다.


아이를 지켜본 기타 선생님은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연주에 대한 열정이 있으니 심리적, 경제적 지원이 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듣고도 의심스러다. 단 한 사람의 의견만 가지고는 아이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었다. 재능이라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불확실한 재능에 아이의 미래를 걸어 한다니 망설여졌다. 단 한 사람의 확신이 있다면 매달려 보겠지만 그런 상황이 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원하는 것을 하며 행복게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막상 음악을 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단호한 표정과 의지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크빛 세상이 사실은 회색 빛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꿈이 아니라 세상의 영화와 물질의 풍요가 너를 지탱해 줄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서가다 다치고 말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냉혹한 현실은 꿈을 가진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너의 확신이 틀렸다고 서툴다고 탓할 수 없었다.


애초에 길은 정해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정해진 길이라 해도 반듯하고 탄탄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어디로 가야 매끄럽고 정확한 길을 만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남들 가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 옳은 것이라 믿었다. 정형화되고 안온한 일과에 익숙해진 나는 음악이라는 험난한 길이 두려웠다.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의 설익은 용기가 무서웠다. 직장생활을 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조직생활에 서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감사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목적과 의미에 자주 회의를 느낀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려 돌아갈 길을 놓고 말았다. 다른 길은 알지도 못하고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일이 좋고 재밌어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권태롭고 지루한 표정으로 오늘도 같은 길을 걷는다.


이를 통해서 실현하지 못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너무도 다른 길, 인적이 드문 척박하고 좁은 길을 가려는 아이에게 불안이 앞선다. 모든 위험과 불안과 실패가 숨겨진 길, 사방이 열려있어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길, 이정표도 드물고 목적지도 보이지 않는 길,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길,  길을 선택하려는 아이의 발걸음을 막아야 할지 뒤따라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 설익은 열정맹렬한 마음이 나를 주저하게 한다.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예기치 못한 도전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 그것에 아이를 맡겨도 되는 것일까?


<사진출처:pinterest>

이전 10화 내편이라는 착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