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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Feb 27. 2023

아이라는 행성

아이에게는 출근과 퇴근이 없다. 엄마가 아침마다 바쁘게 안절부절못하며 서두르 이유를 모른다. 아침부터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재촉하던 엄마가 성을 내는 이유를 모다. 화를 내는 엄마가 무서워 눈치만 본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모조리 챙겨가고 싶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호통을 친다. 아침부터 잠도 덜 깨서 기분이 좋지 않은데 쫓기듯 정신이 없다.


은 반 친구들은 하나둘씩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이제 장난감도 가지고 놀만큼 놀았다. 약속한 시간이 된 거 같은 데 엄마가 오지 않는다. 저기 불쑥 아빠가 나타났다. 아쉽지만 집에 갈 수 있으니 달려 나간다. 퇴근시간 되지 않아 올 수 없었다는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엄마가 보고 싶었는데 왜 오지 않았냐고 투정하며 울었다. 엄마의 다독임에도 서러움가라앉지 않아 계속 떼를 부렸다. 내내 조용히 받아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이제 에 가고 싶다.


집에 오면 엄마 옆에 꼭 붙어있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엄마는 저녁도 해야 하고 빨래도 돌려야 하고 분리수거도 해야 한다. 만화를 보는 동안 차린 저녁을 먹고 나니 엄마의 얼굴이 지쳐 보인다. 오늘은 엄마랑 종이컵 쌓기를 하고 싶었는데 엄마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좀 더 놀고 싶은데 슬슬 잠이 오는 것이 기분 안 좋다. 엄마가 옆에서 재워주면 좋겠는데 늦게 온 형아 간식을 챙기느라 바쁘다.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어 엄마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엄마가 느닷없이 화를 낸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간식을 만들 수 없잖아. 엄마 곧 갈 테니 방에서 우유 먹고 자고 있어. 응?" 종일 떨어져 있었는데 졸릴  때도 엄마 옆에 있을 수 없다니 서럽다. 하는 수 없이 우유 먹으며 기다려야겠다. 엄마가 없으니 잠이 오지 않는다. 언제 오려나 애착배게를 끌어안고 엄마가 있는 부엌을 바라본다. 드디어 엄마가 내 곁으로 왔다. 엄마가 안아 주니 이제 잘 수 있을 거 같다. 엄마의 손길에도 잠이 오지 않아 더 꼭 안아달라고 다. 왜 안 자고 자꾸 엄마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지른다.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피곤해서 목욕도 마다하고 누웠건만 잠이 오지 않는다. 엄마가 좀 더 안아 주웠으면 해서 한 말이었는데 속상하다. 으앙~~~~ 이제 그만 자야겠다. 훌쩍이다 잠이 들었다.


방금 전 아이 잠이 들었다. 오늘도 아이의 마음을 알지만 그 마음을 품지 못했다. 퍽퍽하고 변덕스러운 마음으로는 일관되게 아이를 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사랑하는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알고도 받을 줄 모른다. 내 삶과 존재의 무게에 짓눌린 채 엄마가 되어버린 나약한 사람이다. 에 대한 집착이 나에 대한 집착이라고 착각한다. 지나가는 한때임을 알면서 호통을 친다. 넘치는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이가 잠든 후에 후회를 반복한다. 아침 되면 서두를 이유 없는 아이를 원망하는 철부지다.


엄마라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고단하고 외롭다. 내 모든 욕구와 가치와 우선순위는 모두 뒷자리로 물러난다. 인간은 외부로부터 음식물을 제공받고 몸속에 잔여물을 밖으로 내보내야만 살 수 있다. 이 나약한 존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이 엄마의 손길과 움직임에서 시작한다. 음식물을 제공하고 싸놓은 자리의 오물들을 닦아내고 철에 맞게 몸을 보호해 줄 옷이 필요하다. 먹고 싸놓은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제거해야 한다. 집안의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생존을 유지하는 의식주에 연관된 모든 일이 지금도 매일 매 순간 내 손을 거쳐가고 있다. 바닥을 향해 가는 생활비와 금세 비어버린 냉장고 사이에서 고민한다. 수량과 금액과 리뷰를 번갈아 보면서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다 빼기를 반복한다. 통장의 잔고와 체크카드의 잔액은 밑 빠진 독이다.


주말의 독박육아는 내 몫이다. 자동차와 장난감과 로봇과 블록을 모두 펼쳐도 해가 저물지 않는다. 친구들과 코인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고 온 작은아이의 표정이 반짝인다. 점심을 먹자마자 할 일이 있다며 사무실로 도망가는 남자 원망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언제고 그에게는 일이라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배우자가 있는데도 독박을 썼다는 찝찝하고 불쾌한 느낌은 언제쯤 사라질까?  하루에 나와 아이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내 삶은 아이라는 행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언제쯤 되어야 내 일상을 지배하는 아이라는 위력적인 존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네가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지만 너로 인해 내가 하지 못한 것들과 놓쳐버린 시간과 선택하지 못한 것들을 셈하기도 한다. 아끼는 물건을 예고도 없이 한꺼번에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 그것에 맺힌 억울함, 아이가 주는 기쁨과 위안은 충분하다. 그것이면 잊고 털어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아이가 내 일상을 가로막을 때마다 맞닥뜨리는 이런 감정은 나를 엄마답지 못하게 한다. 체념하고, 포기하고, 굴복하고, 인정하고, 후회하고 자책한다. 엄마지만 나를 포기하지 못해서 엄마이기보다 나이고 싶어서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와 실랑이를 한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이런 내가 때로는 낯설고 이따금 위험하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기본적인 생활습관부터 이유 없는 투정과 심통과 쉬지 않는 질문에 대꾸하는 일까지 규칙적으로 아이의 주변을 맴도는 일상, 그것이 전부 엄마의 몫이라는 현실에 숨이 막혀 올 때가 있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면 아무도 모르게 홀로 조용히 문 밖을 나서고 싶 충동을 느낀다. 엄마로 사는 일상이 넌더리가 난다며 도망갈 궁리를 한다. 내가 없는 그들의 세계, 골탕을 먹이고 싶다는 심술이 들 때가 있다.   


엄마가 아닌 나로서 살고자 하는 욕구는 참고 누른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의 주변을 맴도는 엄마의 궤도는 단순하고 지루했다. 육아만으로는 황량해지고 흩어져가는 나를 망각할 수 없었다. 남매를 키우며 억누른 욕구, 조금만 참으면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덮어둔 욕구, 충만히 나로서 살고 싶었던 욕구, 그것에 대한 갈증 조급해졌다.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육아 아이와  삶의 틈에서 근심하고 번민다. 자꾸만 아이에게 밀리고 미뤄지는 내 일상과 시간이 안타까워서 초조해다. 그들의 일상이 하찮고 시시해서 그런 것이 아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였어서 내 삶에 대한 갈망은 아이로 대체되지 않았다. 아이의 웃음으로는 마음이 달래 지지 않았다. 내 삶을 간절히 원할 수록 엄마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붙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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