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뒷면 Mar 26. 2023

통통볼 인생

어슴프레 창밖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벌써 6시 50분이다. 거실 커튼을 열고 호흡을 고른다. 반가부좌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 요가수련을 시작한다. 20여분의 아침수련은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몸이 깨어나면서 정신이 들고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창밖 나무 위에 매달린 새둥지를 발견했다. 앙상한 가지를 촘촘하게 엮어 매달은 둥지였다. 까치 한 마리가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뭐가 저리 바쁠까? 저렇게 딱 맞는 둥지는 어떻게 지었을까? 허공 위에 매달린 둥지를 바삐 오가는 작은 새가 요즘의 내 처지같이 느껴졌다.     


새로운 직무에 도전한 지 1년이 되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낯설고 생소한 과제들을 만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매번 고민과 갈등에 빠지지만 망설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제한된 기회를 잡으려 경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소한 일에도 첨예하게 대립하기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제 결괏값만을 보지 않았다. 과정에서 기준은 공정했는지 결정은 올바르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하던 대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다.


 전의 나는 일 년 후의 나를 기대했다. 일 년 전의 나보다 금쯤 성장하고 발전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일 년 전의 나는 그렇게 새로운 일을 앞둔 새로운 마음이었다. 지금의  오래된 가구처럼 낡 마음이 되었다. 이제는 그런 희망이나 도전 따위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체념해 버렸다. 성공을 욕망하던 마음들어 버렸고 넘치던 의욕은 메마른 대지처럼 건조해졌다. 마음이 생기를 잃 그늘져 버렸다. 일 년 전의 나를 떠올는 일이 아득했다.


팀장으로서 적절한 길잡이가 되고 싶었다. 때로는 상급자의 결정이 납득하기 어렵고 팀원들의 반항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정쩡하게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다 결론에 닿지 못할 때도 있었다. 혹자는 그런 상황조차도 뚫고 나가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말하던데 사실 잘 모르겠다. 결단과 설득사이에서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눈치만 보는 게 현실이었다.     


오늘 나는 팀원의 강력한 항의와 상급자의 단호한 요구 앞에서 리더십을 말아먹었다. 했던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팀원의 저항이 한심하게 들렸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주먹을 꽉 쥐며 분노를 억눌렀다. 벗었던 마스크를 찾아들었다. 팀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굳어가는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나의 분노가 새어 나와 공기 중으로 번져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그런 태도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라고 훈계를 해야 하나? 나도 그렇게 쉽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해야 하나? 팀원끼리 좋게 좋게 하자고 타일러야 하나? 다른 대안이 없으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질러야 하나?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주저하다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엉뚱한 소리로 상황을 악화시키게 될까 봐 침묵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 곤란한 상황을 피해 가고 싶었다. 이런 쓸모없는 언쟁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회의감이 들었다.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안 해도 될 일을 만든다는 의심과 오해를 사기도 했다. 팀원의 불평도 상관없이 상급자의 호통에도 굴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는 조직이다. 조직에서 나의 역할은 얽힌 의견들 사이를 헤치고 길을 내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조직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고 언제든 누구로도 대체될 수 있다. 내가 손쉽게 대체될 수 있다면 나의 가치는 직무수행능력과 직결되었다. 역할에 충실하며 그만큼의 성과를 내야 했다. 욕먹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길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다.


인생도 통통볼과 같다.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티끌만큼의 확률인 걸 알면서 길을 나선다. 당첨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폐를 집어넣는다. 천 원 지폐 가느다란 희망는 마음, 실 희망은 그런 것이다. 실체가 없지만 실체가 있다고 믿고 싶은 음, 들은 다 놓쳐도 나만은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마음, 간신히 집어 올린 한 줌 통통볼, 하나 둘 힘없이 떨어지고 가까스로 버틴 한 개가 목표점에 도착했다.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도 한참을 헤맨 통통볼은 길을 잃고 빠져버렸다. 희망하다 좌절한 남자는 주저하다 지폐 한 장을 마저 넣어본다. 작은 희망을 지폐 끝에 걸고서, 통볼이 이번에는 목표점까지 수 있을까? 씁쓸한 뒷모습을 보니 희망은 나에게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닌다.


번화한 시내 한 건널목 길가 추레한 차림의 늙은 남자가 서서 예수를 부르짖고 있다. 골방이 아닌 길에서 예수를 부른다. 무표정하고 퍽퍽한 얼굴을 한 사람들, 서로의 눈을 보며 연인 확인하는 사람들,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들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든다. 이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은 그의 확신을 의심한다.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고조된다. 빌딩 사이에 메아리가 된 그의 말은 흡사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 애원지 협박흐느낌인 를 그 소리가 건널목 앞에 선 사람들을 난처하게 한다. 천국을 외치는 소리가 쨍하게 빛나는 주말 오후를 어정쩡하게 만든다. 골방을 뛰쳐나온 예수는 그의 입 위에 올라타 춤을 다. 사람들 찌푸린 미간에 날 선 자국을 남긴다. 희망의 끝자락에 매달린 나는 막막한 세계 속 천국을 그려본다. 


왼쪽 눈 흰자위에 터진 실핏줄이 붉은 자국을 남겼다. 빛깔이 명해서 눈물마저 붉어질 것 같다. 누구는 아이를 노려본 거냐며 웃고, 누구는 모니터를 오래 보니 생긴 것이냐며 안쓰러워한다.  눈 위에 일어난 일을 두고 나누는 그들의 말이 꼭 다른 사람얘기 같다. 눈은 애써온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 못한 말들이 눈가에 붉게 맺혔다.

이전 13화 아이라는 행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