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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un 12. 2023

탈락이 예고되었습니다

더위를 피해 커피숍에 들렀다. 옆 테이블 손님들이 서로의 남편을 저울질하는 동안에도 나는 지난 며칠 간의 대화와 상황을 되새기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모멸감은 무엇인지 곱씹으며 되감기 한다. 무한 경쟁이 일상인 조직에 살고 있었는데 나만은 비껴갈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삶에 불안정과 유동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조직에서의 내 가치가 평가자의 몇 마디 말로 축약됐다.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팀장, 인정하고 싶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의 모든 과정과 노력을 간단하고 납작하게 요약해 버렸다. 권력자들이 내린 평가이니 씁쓸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정말 업무능력이 부족했던 걸까? 내가 너무 과신했던 걸까?


그들의 평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 이것은 회복할 수 없는 실패라고 자책한다. 잘해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그들 무리에 속해 어울리고 주목받고 싶었다. 열등감을 숨기고 성공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 시간을 쏟고 모든 용기를 쥐어짰다. 그것이 되지 않아서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 나의 능력을 입증하려는 노력과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팀원들의 실수를 감싸주는 게 팀장의 숙명이라고 믿고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것이 그들에게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이게 만든 기회가 된 것일까? 내 마음을 해쳐가면서 상대를 도우려 했던 것이 나를 초라하 만든 것까? 부족한 것이 있었지만 꾸준히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 또한 혼자만의 각이 되고 말았다. 그냥 그런 일도 있는 거라고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과장이 인사팀장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묻는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일인데 모르는 척하며 직접 확인하려 한다. 윗분의 뜻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말 막을 수 없을 만큼 내가 형편없다는 말과 같게 들린. 솔직하게 막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말해주는 게 낫겠다. 위선과 기만 앞에서 내 모습이 더 초라해진다. 불과 한 시간 전 인사팀장에게 들었던 같은 말을 다시 듣는다. 애써 추스르려던 마음을 헤집고 들쑤다. 참담해진 표정을 보고 싶었던 걸까 모 태도를 받아 줄 여유가 없다. 낙담한 표정을 살피는 그의 시선에 수치심을 느낀다. 송곳하나 들어갈 자리 없는 메마른 마음이 부글부글 끊어 오다. 당황과 자책사이에서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굳이 불러 세우는 것도 권력의 힘이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강펀치를 맞고 쓰러진 사람에게 다시 잽을 날리는 꼴이다. 나약하고 취약한 상대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 무례다.


내공을 쌓으면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점잖게 충고하려 애쓰는 듯했지만 표정은 미묘하게 변했다. 그의 태도는 적의와 정중함 사이를 오갔다. 보수적이고 올바르고 세련되고 예의 바른 모든 것 뒤에 숨겨진 악의가 나를 들끓게 했다. 사실은 그렇게 해서는 다른 곳에서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의심다. 그래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지만 웃지 못했다.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어색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필요한 질문과 탐구를 마친 그에게 나는 이제 쓸모를 다한 번거로운 존재일 수 있다. 간단하고 매끈한 답을 원한 그들에게 나는 적당한 상대가 되지 못했을 수 있다. 누구든 남보다 자기가 우선인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그러모아 만든 것들은 생각보다 불완전하고 미숙했다. 그들에게 강하고 능숙하고 아름다운 존재 되 못했다. 누구든 대 수 있는 조에서 헌신은 배신과 같은 말이 되기도 다. 화려한 찬사대신 초라한 뒷모습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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