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큰 스파링 상대가 나를 들어서 던지는 것에 놀라 소리치다 잠에서 깨어났다. 태연하려 해도 심난한 건 어쩔 수 없다. 탈락 예고 이후 뒤죽박죽인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다. 아무렇지 않으려 해도 매일 조금씩 울분이 쌓인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주짓수 수련 등록을 했다. 도복을 입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근사했다. 장정 서너 명쯤은 너끈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의 복잡계를 초월한 무림 고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상상도 했다. 매트 위에서 산발을 하고 성인 남성과 실랑이를 벌이는 언니들에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잠들어 있던 내적 충동이 깨어났다. 내가 모르는 숨겨진 정체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호기심에 이끌린 발걸음이었는데 주짓수 그것이 나를 끌어당겼다. 3개월만 버텨보자고 카드를 들이밀었다.
대책 없고 무모하고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이다.소심하지만 내게는 이런 면도 있다. 마음먹은 일을 앞뒤 재지 않고 내지르는 것 말이다. 운동 잘 못한다. 운동 신경도 없다. 대학 시절 스키를 배워보겠다고 2박 3일 캠프를 참여했지만 슬로프 한번 제대로 타지 못했다. 엉덩이에 파스만 잔뜩 붙이고 집에 돌아와 며칠을 엉거주춤하게 지냈다. 물에만 들어가면 몸이 가라앉아서 수영 강습도 3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 흔한 태권도도 배우지 않아 하나쯤 가지고 있는 단증도 없다. 6개월 이상 해본 운동이 없다. 집에서 하는 랜선 요가가 전부였다. 막내 출산 이후 흐트러져가는 몸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가 잠든 새벽이나 늦은 밤에 동작을 따라 하는 수준이어서 엉성하고 볼품없었다.
참여수업을 마치고 두 번째 수업이 있는 날, 회원들이 적은 시간에 맞추어 체육관에 들렀다.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다. 반갑게 맞아주는 관장님의 덕분에 긴장을 풀고 수련을 시작했다. 몸 푸는 단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엉덩이와 골반이 들리지 않고 복근에 들어가야 할 힘이 얼굴에 들어갔다.동작을 설명하는 관장님의 목소리와 동작이 연결되지 않았다. 스파링을 하면서 따라 해 보지만 손과 발이 몸과 팔다리가 얼굴과 몸이 제각각 제멋대로 갈길을 갔다. 움직여도 같은 자리이고 힘을 주어도 맥없이 풀렸다. 힘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동작을 생각해도 몸이 반응하지 않고 스파링 상대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 "제가 앉아야 하나요?" " 이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 이렇게 하면 아프지 않아요?" 파트너를 붙잡고 도와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주짓수 2일 차 인 내가 상대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눈치를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이곳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다행히 자상하고 너그러운 관원들은 좋은 스승이 되어 주었다. 4분이라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생각보다 몸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몸을 쓰는 것보다 머리 쓰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의지대로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닥쳤다. 제 몸하나 쓰는 방법도 모르면서 머리만 굴리려던 내가 한심했다.
"자신 있게 하세요 이게 될까 안될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틀려도 괜찮아요. 그래야 배우는 거죠. 조금 더 자신 있게 하시면 돼요"
"몸을 쓰는 걸 보면 성격이 보이는 가 보죠? 어떻게 아셨죠? 부끄럽네요. 들킨 거 같아서"
"그럼요. 성격이 다 보여요. 하하하"
관장님이 무심코 던진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소심함과 주저함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처음이니까 서툴고 실수하는 것이 당연한 데 틀리면 어쩌나 걱정한다.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고 가볍게 넘기면 될 텐데 그게 잘 안된다. 몸은 마음의 그림자다. 뭐든지 완벽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나를 쭈뼛거리게 했다. 끊임없는 자책으로 쌓아 올린 자기 의심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완벽한 것을 집착하는 마음이 나를 부족하고 틀린 사람으로 만들었다.
요즘 들어 틀리고 잘못됐다는 말을 자주 많이 들었다.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고 그때 그것도 틀렸고 잘못됐다고 말한다. 도대체 이제까지 왜 이렇게 한 거냐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따지고 든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권력자의 풍모를 뽐내는 그들 앞에서 나는 다시 쉽게 무너져버린다. 모든 것이 다 무능한 팀장 때문이라는 부당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제껏 내가 한 노력과 성취가 모두 무효가 되고 있다.
일터에 번지는 훈계는 정체 모를 불안을 일깨운다. 일과 무관한 내 일상과 존재의 모든 것에 의구심을 만든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납작하게 만든다. 나를 평가하면서 자기만족을 느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 뒤로 물러선다. '어휴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거야. 바보 같으니라고 일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착하기만 해서 되겠어. 일이 그 모양인데 쯧쯧' 정작 사람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떠올리며 암흑에 빠진다. 예전에 내가 누군가를 납작하게 만들며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말이었다. 모두가 나를 인정해 주기를 원하다가 누구의 인정도 얻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내 존재를 입증하려 골몰하다가 고꾸라지고 말았다.
내가 일하는 조직에는 잘난 사람이 흔하다. 똑똑하고 공부도 일도 말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좋고 심지어 사람의 마음도 금세 사로잡는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에 비하면 나라는 인간은 하찮고 작고 미약한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미물의 버둥거림은 미련스럽다. 매일 의심하는 내 능력을 사람들도 의심한다. 재주 대신 저주를 끌어안는다. 거대한 조직의 지워야 할 얼룩이 되었다. 최선을 다해 말하려 해도 말문이 닫힌다. 때로는 일하는 의미를 포기해야 깊은 모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별일 없는 일상이 감사했지만 무료함을 막지 못했다. 일도 육아도 무료했고 집과 직장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일상에 지쳐갔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상을 찾겠다고 문을 닫아걸었다. 전두엽의 빠른 성장을 견디지 못하고 불손해져 갔다.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업무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일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내 가치는 희미해졌다. 성과를 인정해 주지 않는 노동은 보람이 없었다. 성실함이 업무 성과에 직결되지 않았다. 나의 역량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갔지만 관계를 뒤흔들만한 사건도 만들지 못했다. 마흔의 나는 지치고 풀이 죽은 채로 무기력해졌다. 어쩔 수 없어서 살고 있다는 죽상을 하고 있었다. 촘촘하게 짜인 틀에 꼼짝없이 붙들려 도망치지도 수용하지도 체념하지도 못하고는 이유 없는 짜증만 늘었다. 엄마, 직장인, 여자, 아내로 정해진 어떤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다. 사회적인 제약과 규범에 따라 정형화된 가는 삶에 숨이 막혀왔다. 역할에 매몰되어서 나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해오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 내 삶의 방식에 얽매여있지 않은 다른 것을 해보기로 했다. 벗도복을 입었을 때의 느낀 묘한 기분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여자다움이나 엄마다움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홀가분함. 그래서 오늘도 무모하게 세 번째 수업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