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쉬어가는 시간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 있나요?
이 질문은 바로 아니라는 대답이 나온다
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한 것 같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나는 연애경험이 없다
가족도 그저 피로 엮인 관계라고 생각했다
조증으로 입원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아, 지인이나 스쳐가는 동물, 아이에게 사소한 애정을 표현한 적은 있다)
흔히 말하는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선, 깊은 사랑
나의 삶은 늘 결핍을 감추고 채우기에 바빴다
그래서 늘 모든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에
마음이 가 있다 보니 정작 타인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내가 사랑받는 것에 쏠린 관심,
그 관심이 주변 관계를 더 깊어지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입원하기 전까지 나는
타인에 대한 서운함과 슬픔이 내면 깊이 머물렀다
왜 날 사랑해주지 않지?
왜 날 받아주지 않는 거지?
입원치료를 받고 1년의 쉼을 가지며 서서히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 안에 그들과의 깊은 관계를 막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타인을 아프게 하고 나 자신도 아프게 하는
고약한 것이 내게 있음을
마음의 이물질이 제거되고,
고장 난 부분을 치료받고,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애쓴 모든 것을
강제로 내려놓게 되며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나보다
퇴원 후 1년이 넘은 지금 돌아보니
어느 순간 나는 가족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친구를 사랑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의 신앙고백
언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다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모르겠어요, 저에게 사랑을 알려주세요'
사랑하는 감정 자체가 생소하니 알고 싶어서 했던 기도다
그저 흘리듯 한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
근데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서
생각보다 좋지도 않고, 오히려 막막하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도 서툰데 더 깊은 연인과의 사랑은 어떻게 할 수 있으려나..
나는 내가 사랑하면 너그럽고, 헌신적이고, 다정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사랑하기 시작하면 다소 찌질해진다
의심하고, 생각이 많아지고, 사소한 것에 서운해지고, 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또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삼가는..
상대방에게 상처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긴 하지만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내가 좀 상처받았고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라 할 수 있다
퇴원 후부터 주기적으로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다
서로 다름을 말로 꺼내어 드러내고, 이해하고 맞춰가는 시간을 가졌다
입원 전엔 말을 하지 않고 그만큼 부모님과 거리를 두었지만
퇴원 후에 자주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용기 내어 마음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부모님을 향한 나다운 사랑의 표현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에 겨워 좋지만은 않다
핸드폰 하고, 각자 할거 하고, 좀 밉상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이게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 툴툴거리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또 기분이 풀린다
이런 경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꼭 같이 있는 내내 꽁냥 거리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 같지만 나는 이제야 이것을 체감하는 중이다
그럼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겠구나 싶다
같이 있는 내내 즐겁고 좋아야 더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 상태에서 함께하고, 순간순간의 행복을 같이 느끼는 것..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거 말이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내가 더 경험하고 배워나가야 할 것은
애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과정에서 오는 불안함과 불편함을 다루는 것과
관계에서 꼬이는 순간을 잘 풀어가는 것이겠구나 싶다
지금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중이다
막막한데 한편으로는 좋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발돋움을 시작한 것 같아서
언젠간 사랑을 느끼고, 잘 표현하는 법도 익혀지겠지
미래의 배우자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것은 나자신도 포함된다
내가 무엇에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지 알아가고, 나에게 해주는 것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넌 지난 1년 동안 쉬면서 마음으로 숨 쉬는 법을 익혔어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버튼이 작동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나는 기뻐
다만 사계절동안 우울감과 처짐, 집중력 저하를 온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본능에 따라 행동할까 봐 겁나기도 해
그래도 나는 너에게 장하다고, 하나는 건지지 않았냐고 말해주고 싶어
그럼 결실은 있는 거라고
1년 동안 잘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