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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희 Dec 28. 2021

올빼미형 엄마에게 아침이란.

 저녁형 엄마와 아침형 딸의 공존

SCENE1



나는 이름모를 망망대해에서 큰 파도를 만나  어느 바닷가에서 난파된 나무조각 붙들고 기적적으로 둥둥 떠내려왔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어느 무인도 해변가에 정신을 잃고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의 잠잠했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어떤 에너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나를 깨운다. 굳어있던 손가락이 움직임을 의식하고 꺼져있던 뇌의 휴즈가 다시 끼워지며 감각이 열리는 시간이다.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쩌벅쩌벅' 바로앞에서 소리는 이내 멈추고 마치 사람의 온기가 나에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나의 질끈 감은 두 눈에 힘이 들어왔고 닫힌 귀는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아(마치 저 멀리 아득하지만 낯익은 소리같은데.).................."

"일어나"

".......................??"

"일어나!!!!!!!!!!!!!!"

"엄마일어나라고!!!!!!!!!!!!!!!!!!!!!!!!!!!!!"


소리치는 아이 목소리에 번쩍 눈을 뜨인다. 꿈은 아니었네.

정남향 집을 파고드는 해는 이미 환히 떠서 내방이 비추고 , 닫아놓은 베란다 창문 틈으로 엠뷸런스 소리 돌아간다.  내 앞에 날 깨우는 딸 아이의 동그란 얼굴. 그래 너였네. 시계를 보니 8시가 좀 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우리딸. 자기 침대에서 먼저 일어나 꼬물짝대다 심심하고 지루해서 날 깨우러 왔던 참인가보다.

본능적으로 잠자던 무의식을 깨운건 바로 너였구나..

벌써 아침이다. 딸아이는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낄낄대며 웃는다. 여유넘치는 우리 딸의 미소. 유치원은 겨울 방학이다.

 


"엄마 일어나서 나랑 놀자."

귀여운 긴머리 휘날리며 종종 거실로 달려가 나를 기다린다.



아이는 8시간 동안 맞닿았던 내 무거운 두 눈커풀이 서로 떼어질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아이는 이미 마음은 거실 한가운데에 나가 엄마와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일꺼다.

나는 정신차려야 한다. 나의 정신머리 휴즈를 다시 끼고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다!


'가만있어보자, 내정신은 어디갔나.안경은 어딨지? 아맞아 나 라식수술했지....정신차리자.. 너무 어지러운데. 더 자고 싶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딱 삼십분만 더 잤으면 소이 없겠다.'

 아...인생에 선택지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이렇듯 우리집은 가족간의 시차가 존재하는 것 같다. 마치 미국에 사는 사람 마냥 서로 다른 시차속에 있는 것 처럼.  서로 활동하는 시간대가 너무나도 틀린 사람들. 나는 오후 일곱시부터 새벽 두시까지(아이낳고 타협합시간이다.) 딸아이는 아침 여덟시부터 오후 일곱시까지 기운이 팔팔 넘치는 사람들이다 . 사자와 치타가 세렝게티 초원에서 각자 영역을 건들지 않고 사는 것처럼 우린 각자 시간 영역을 지키며 나름의 조화로 살아가야 한다. 넌 애초에 닭띠여서 그런가. 아기때부터 너는 참 잠이 없긴 했다.


그렇게 시작되는 아침은 참 길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아이와 16시간은 뜬 눈으로 살부비며 지내야 한다.

아이는 꽤 부지런하고 잠도 없고 낮잠도 없는 편이라서 늦게 자던 일찍자던 기상시간은 매일 똑같이 7시 30분. 오차가 30분 내외.

초 저녁부터 힘이 샘 솟는 올빼미 엄마에겐 매정한 기상 시간이 따로 없다.이건  007 미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오늘의 가혹한 방학 미션은 바로 일찍 일어나 너와 놀아주기.


그렇게 우리 집에는 딸이 잠들면 나는 깨어나고 내가 깨면 딸이 잠드는 희안한 한집에 두 시차가 존재한다.


저녁8시부터 펄펄 나는 중년의 엄마에겐 올빼미 생활은 사치겠지. 역시 매일이 체력전이고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지친 기력을 보여서도 안되고 표정이 어두워서도 안된다. 롯데월드의 퍼레이드쇼에서 손 흔들어주는 러시아언니처럼 늘 활기넘치는 텐션이 있어야 하는 법. 아이의 감각이란 마치 동물적이라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엄마 무슨일 있어?""엄마 왜그래?" 라며 끝도 없는 질문을 늘어 놓기 때문에 이기도 하고 또하나 ,너에게 늘 에너지 있는 엄마, 좋은 아침을 열어주는 엄마이고 싶기도 하기에.


나는 아침 의례처럼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마루에 앉아 너의 얼굴을 바라본다. 거실은 우리의 놀이터. 올빼미와 닭이 공존하는 놀이공간. 그리고 시작 되는 너와의 시간이다. 리모컨에 나의 자존심을 뺏기고 싶진 않다. 그래서 오늘도 너에게 책 세권 읽어주었다. 아무리 낮에 껌뻑도 못하는 올빼미라지만 나는 지키고픈 철칙이라면 철칙이다.


1.일어나자마자 미디어는 틀어주지 말것.

2.책을 먼저 읽어 줄 것.

3.잘잤어? 아이 얼굴 바라보면서 티타임을 갖을 것.


개인 찻잔을 들고 다닐만큼 차를 좋아한다는 영국인이 있다면 나는 커피를 달고 산다. 아침에 잠깨는게 이만한게 없어서 . 네스프레소 디카페인 커피한잔에 너와의 아침대화는 나의 아침 힐링 포인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티비는 필요 없어져버렸다.

티비를 틀어주면 낮시간은 내내 틀어놔야 하고 귓구멍을 울리는 스피커 소리에 머리가 지끈한다. 그리고 일찍 일어난 아이에게 "한시간만 더자지 왜 일찍 일어났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원망섞인 목소리가 아이맘을 찌른다. 살다보니 아이는 관심을 줄수록 더 독립심이 강해짐을 느낀다. 나는 사랑받고 관심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좋거들랑 아이에게 먼저 손내미는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야 우린 타협할 수 있으니까.

꼭 지키고 싶다. 그리고 함께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나의 시간도 너로부터 얻어낼 수 있겠지. 오늘도 조화롭게 너와 나와 시간을 쓰고 또 지나간다.


요새는 '미라클모닝'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한다. 자기계발 하는 블로그마다 미라클 모닝 챌린지로 난리다.  새벽 다섯시에 기상해서 인증샷을 찍고 운동이나 책읽기등 자기계발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을까 .물론 나도 하고 싶었으나 매일 포기의 반복이다. 매일 맞춰 놓은 새벽 알람들에게 무안해질 정도로 내 새벽은 깊은 잠 한가운데이기에 아직 시도가 무색하다.

일찍 일어나서 신문도 보고, 책도 읽고 아이가 일어날 때쯤 미리 준비하고 깨우면 참 좋으련만 밤에나 펄펄 나는 엄마이니까.그러니까 '미라클 나이트'는 없을까. 엄마가 밤에 에너지를 충전해야 너와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세상에 유행이라고 다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 나는 나대로 살아가자.오늘도 저녁에 부쩍 힘이나 PC앞에서 다다다 타자치는 내 모습을 보고 자기도 흉내낸다며 끙끙대는 모습이 귀여운 밤이다. 그래 나는 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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