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받음과 동시에 촬영 준비를 도와야 했다. 무언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기는 하는데 내가 뭘 하는지 뭘 도와야 할지 감도 안 잡히고 그저 사수 선배만 따라다니기에 급급했었다. 스스로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끌려만 다니는 상황에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한 차례 일이 휘몰아치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메인 작가님이 나의 사수에게 같이 쇼핑을 다녀오라며 카드를 내주었다. 촬영을 하루 앞두고 쇼핑이라니, 소품을 사러 가는 건가?라는 생각으로 사수를 따라서 홍대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노스페이스’였다.
메인 선배가 말한 ‘쇼핑’이 정말 말 그대로 ‘쇼핑’이었던 것이다. 야외 프로그램 특성상 여름에는 시원하고 땀흡수가 잘되고 잘 마르는 옷들, 겨울에는 발열이 잘되고 바람을 잘 막아주고 두껍고 따뜻한 옷들, 이런 기능성 옷들이 많이 필요한데 야외 프로그램이 처음이었던 내가 그런 기능성 옷들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는 걸 생각하고 나에게 옷 한 벌을 사주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처음 보는 작가 선배가 옷을 사준다는 생각에 너무 감사하고 감동스러운 마음에 너무 비싼 옷을 고르기도 부담스럽고 해서 적당한 가격의 옷을 골라야 했는데 이때의 날씨가 5월 초, 초여름날씨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나는 통풍이 잘되는 긴팔 얇은 바람막이를 골랐다. 이 선택은 곧 촬영장에 도착해서 내가 아주 단단히 잘못 골랐다는 것을 뼈저리도록 느끼게 해 주었다.
쇼핑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PD, 작가 FD 등 전체 제작진이 모여서 마지막 최종 회의를 진행했다. 내가 TV에서 즐겨 봤던 프로그램이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회의들을 거쳐 만들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신기하기도 했고 이전에 했던 프로그램들에서는 못 느꼈던 큰 제작비의 대규모 프로그램의 기세가 느껴졌다.
회의를 마치고 남은 녹화정리를 마친 후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아니, 퇴근이라기보다는 집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짐을 챙겨 오는 정도의 시간이 생겼다. 곧장 집으로 가서 백팩에 하루치의 짐을 싸고 곧장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아예 전날부터 짐을 싸와서 숙직실에서 눈을 붙이다가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KBS 본관 앞에 전체 스태프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수십대의 차량, 카메라팀, 조명팀, 오디오팀 등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익숙한 듯 각자의 자리를 잡고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대규모 촬영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중 MC들이 도착했고 곧이어 KBS 본관 계단 앞에 나란히 정렬한 MC들의 외침과 함께 첫 녹화가 시작되었다.
“1박~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