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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May 30. 2024

여름에도 뜨개를 하나요? : 도화지 가방

마냥 웃긴 뜨개일지

취미가 뜨개인 걸 밝혔을 때 누군가는 꼭 이렇게 말한다.      


그럼 여름에는 뭐해?      


분명 10초 전에 뜨개가 취미라고 말했건만. 그들에게 뜨개란 겨울 한정 이벤트다. 붕어빵, 호떡, 그리고 뜨개. 아무래도 ‘뜨개실’이라는 단어에서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한겨울 따뜻한 음료를 앞에 두고 뜨개하는 할머님들이 나오니까.      


여름에는 여름 뜨개를 한다. 울이나 앙고라처럼 도톰한 소재가 주를 이루는 실로 겨울 뜨개를 한다면 여름실은 면이나 린넨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두께도 훨씬 얇다. 가방이나 소품을 뜰 때는 아예 종이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소재가 다양하니 굳이 계절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니 나도 손에 땀이 차지 않는 고슬고슬한 실을 찾게 된다. 마침 친구가 여름에 들고 다닐 가방이 하나 필요하다길래 흔쾌히 떠주겠노라 약속했다. (친구가 실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전부터 궁금했던 실을 이참에 써보기로 하고 ‘바늘이야기’ 파주점으로 갔다. 냉큼 집어 든 실은 도화지. 코마 코튼 60%, 폴리 40%가 섞인 실이다. 한 볼에 80g이긴 한데 실이 얇은 편은 아니라 중량에 비해 길이가 짧은 감이 있었다. (100m±10m)      


정해진 도안은 없었지만 휴대폰과 지갑 정도 들어갈 크기에 튀지 않는 디자인으로 만들어달라는 명확한 요청이 있어 정말 쉽게 만들었다. 적당한 길이로 사슬을 만들고 짧은뜨기로 세단 쌓아 올려 밑부분을 만든 다음 한길긴뜨기와 짧은뜨기를 번갈아 원하는 높이만큼 올려줬다. 그대로 끝내기엔 지나치게 심심한 느낌이 들어 한 줄 정도는 네트 무늬를 넣었더니 귀여운 가방 완성이다. 한 볼하고 조금 더 들었으니 대략 100g 정도 들지 않았나 싶다. (5호 코바늘 사용)     



친구 가방을 뜨다 보니 내 여름 가방도 가지고 싶어졌다. 역시 여름엔 시원한 네트 무늬 가방 아닐까. 정확한 구상 없이 막연하게 네트 무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뭘 시작하기엔 내 실력이 아직 한참 부족하다. 이럴 때는 역시 유튜브 선생님이 최고다.      


뜨개 가방, 코바늘 가방이라고 검색만 하면 친절한 여러 유튜버가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을 소개해 준다. 난 개중에 고르고 골라 ‘코코스 백팩’을 뜨기로 했다. 세길긴뜨기가 들어가 전체적으로 길쭉하고 시원해 보이는 가방이었다. 남은 ‘도화지’ 실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보나마나 한 볼로는 어림도 없을 걸 알기에 다른 실로 먼저 시작했다. 이것도 전에 스웨터 뜨고 남은 실이다. 정말 알뜰하게 실 파먹는 중이다.      


회색 ‘필 루스티크’로 먼저 시작해 절반쯤 떴을 때 실을 모두 소진해 ‘도화지’로 바꿨다. 회색과 흰색의 조합은 실패하지 않는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가방이 차근차근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예상치 못한 건 완성하기 전에 ‘도화지’도 모두 동났다는 것. 여기에 다른 실로 이어 만들까 하다가 색이 3개나 섞이는 건 정신 없어 보일 것 같아 그냥 ‘도화지’ 한 볼을 더 샀다.      


새로 산 실까지 기가 막히게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사용해 만든 가방! 완성품이 생각보다 더 귀여워서, 실이 하나도 남지 않아서 신났다. 전에 만들었던 체리 키링을 가운데 달아주니 정말..... 정말 귀엽다. 스물 여덟이 메고 다니기엔 좀 유치한가 했지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니련다.    

  

   


여태껏 뜨개를 해 좋은 점들을 많이 말했었는데, 이번에 새삼 또 하나 좋은 점이 늘었다. 누군가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냉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 만들어 줘, 했을 때 그래! 할 수 있다는 것. 사소하지만 타인을 위해 내가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뿌듯함을 준다. 그냥 내가 혼자 준비해서 주는 선물 말고 요청에 의한 제작은 좀 다른 느낌을 주더라.      


이번 화에서는 모처럼 뜨개 에세이 다운 얘기를 했다. 어째 매 화마다 성격이 다른 글을 쓰는 것 같아 좀 찝찝하지만 애초에 계획 없이 쓰는 글이라 그렇다. 어떻게 써야겠다는 계획이 없으니 그때그때 뜨개를 하며 들었던 생각이나 상황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사람 성격이 글에도 옮아간다니. 이래서 어른들이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했나 보다. 전자와 후자가 무슨 관계냐면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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