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차이나는 동생이 하나 있다. 성별과 성씨 말고는 모두 다른 친동생이다. 나란히 서 있어도 자매라고 생각 못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외양은 기본이고 체질, 말투, 성격, 성적, 취미, 일하는 분야까지 그냥 모든 게 정반대인 사람이다. 내가 한국이라면 동생은 우루과이쯤에 있달까.
MBTI로 말하자면 난 INTP, 동생은 ENFP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유형과 한집에 살고 있다. 항상 텐션이 높고 온갖 곳에 공감하느라 TV에서 누가 울기만 하면 따라 울면서도 맛있는 걸 입에 넣어주면 또 헤헤 웃는다. 모든 ENFP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동생은 그렇다.
독서나 글쓰기, 뜨개를 좋아하고 도서관이나 서점, 한적한 카페를 주로 가는 나와 달리 동생은 거의 매일 밖에서 친구와 만난다. 뭘 하는지 물으면 어느 날은 서울에 어느 날은 부산에 또 어느 날은 놀이공원에 다녀왔단다. 아니, 놀이공원 개장 시간에 들어가 폐장 시간에 나와서 집에 새벽 1시에나 들어왔는데, 몇 시간 자고 출근하는 게 가능한 삶인가. 이게 4년이라는 시간에서 발생하는 체력 차이인지 기필코 놀겠다는 의지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난 두 달 전 놀이공원에 갔다가 다섯 시간 만에 진이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니 동생 눈에는 내가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뜨개만 하는 인간으로 보이나 보다. 주로 거실 소파에 앉아 뜨개를 하는데, 동생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자세로 앉아 손만 움직이는 나를 보니까.
- 언니는 일을 안 해? 약속도 없어? 어떻게 맨날 똑같은 모습으로 있는 거야.
- 퇴근하면 바로 집에 오니까... 평일에 약속 잡으면 힘들어.... 뜨개하는 게 편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몇 밤이 지난 어느 날. 동생과 나는 휴무를 맞춰 함께 집에서 나섰다. 동생의 운전 연수를 위해서다. 난 수능 끝난 다음 날 면허 학원을 등록했다. 면허 취득 후 몇 년 뒤 차를 갖게 되어 벌써 운전한 지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반면에 동생은 면허조차 딸 생각이 없다가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작년에 겨우 면허 취득을 끝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운전 정도는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그렇지 않은 동생. 내내 직접 운전해서 연인을 태우고 다녔던 나, 연인이 운전하는 차만 타본 동생. 이건 좀 부럽다. 나도 상대가 운전하는 차 한번은 타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그럴 팔자가 아닌가.
지난달 운전 학원에서 도로 주행 연수를 무려 10시간이나 끝낸 동생에게 운전석을 넘기고 난 조수석에 탔다. 면허도 있고 주행 연수도 10시간이나 받았으면 20분 거리에 있는 카페 정도는 갈 수 있겠지.
아니었다. 네비게이션에 찍힌 바로는 22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40분이 걸려 도착했으며 (평일 낮이라 차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운전은 둘째치고 겁이 너무 많아 앞차가 끼어들기만 해도 벌벌 떨었다. 차간 거리도 충분했고 방향 지시등도 잘 키고 들어온 차에게 왜 화를 내는 거야. 노래도 틀지 마라, 창문도 열지 마라, 네비는 볼 줄 모르니 옆에서 길을 알려달라, 위험해 보이면 바로 말해줘라……. 이럴 거면 그냥 내가 운전할까.
그래도 막상 도착하니 전보다 긴장이 풀렸는지 돌아가는 길은 꽤 수월했다. 물론 위에 나열한 조건들은 여전히 동일했지만, 보조 브레이크 없는 차로 왕복 운전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
일주일이 지나 두 번째 연습일. 이번엔 옆 시에 있는 대형 쇼핑몰을 목적지로 삼았다. 지난번보다 약 두 배나 먼 거리에 있었고 도로도 한적하지만은 않아 난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래봤자 편도 40분 정도. 지난번 무사히 다녀왔으니 이번에도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한 난 보조석에 앉아 뜨개나 할 생각이었다. 간단하게 실과 바늘만 챙겨 차에 올라탔는데…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동생에게 운전이 낯설 듯 내게도 운전 강습이 낯설다. 약 10년 전 운전면허 학원에서 선생님한테 배우기나 해봤지 누군가 가르칠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멘탈 약한 동생을 위해 최대한 착하게, 어르고 달래며 잘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옆에서 동생이 울었다. 대체 운전하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우는 사람이 어딨어. 눈물 나면 시야 확보가 안 되잖아. 울어도 주차장 들어가서 울어야지.
짧은 지하차도에서 나오면 우회전을 해야 했는데, 그러려면 지하차도에서 나오자마자 2번의 차선 변경이 필요했다. 차근차근 하나씩 하면 된다고 일러주고 옆에서 타이밍을 봐주고 있었는데 공교롭게 우리 차와 그 옆차선의 차가 동시에 차선을 바꾼 것이다. (사진 참조)
우리 차가 상대보다 조금 더 앞에 있었고 방향 지시등도 잘 키고 들어갔으니 우리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동시 진입은 위험한 상황이므로 상대차에서 클랙슨을 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생은 난생 처음 본인을 향한 클랙슨을 듣고 당황했고 상대차는 굳이 우리 차 옆에 서서는 창문을 내렸다. 그러더니 운전자가 동생인 걸 보고는 혀를 한 번 차고 사라졌다. 나는 상대가 그냥 간 데에 내심 감사했다.
- 뭐라고 하려다가 그냥 가신다. 다행이다.
그리고는 딱 저 말 한마디 한 건데 동생이 갑자기 울었다. 정지신호였고, 내가 재빠르게 휴지로 수습했으니 망정이지 주행 중에 눈물을 흘렸다면... 정말 끔찍하다. 초보인 주제에 감정 컨트롤도 안 된다니. 나는 그 울음이 자신의 답답한 실력을 자조한 데에서 기인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물으니 그냥 서러워서 그랬단다. 동생아. 나는 너의 옆에 앉아서 운전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서럽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야심차게 들고 나온 뜨개는 전혀 진전이 없었고 도착할 때까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느라 전혀 바늘을 쥐지 못했다. 다른 건 하나도 안 무서워하면서 왜 운전을 이렇게 무서워할까. 나도 처음에 그랬나.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배가 고팠는지 동생이 밥부터 먹자고 했다. 동의했고 식당으로 갔다.
밥을 먹으며 앞으로 운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그래, 인정한다. 길고 지루한 얘기였다. 동생이 ‘그러는 언니는 처음부터 운전을 잘했냐’며 반문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얘보단 잘했다. 애초에 운전을 이렇게 무서워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난 나처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운전 선배 같은 거 없이 혼자 잘만 했다.
그러자 동생이 나보고 꼰대란다. 장난하나. 꼰대라는 건 모름지기 쓸데없는 오지랖과 어설픈 충고로 듣는 이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 아닌가. 나는 정말 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다 지 잘되라고 하는 소리인데. 언니가 말하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어? 이게 꼰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엔 결국 내가 운전했다. 퇴근 시간이라 도로가 붐비기도 했고 동생에게 기력이 남지 않은 듯 보였다. 돌아가는 차 안은 노래만 잔잔하니 평화로웠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운전하라며 열심히 떠들다가 잠깐 옆을 보니 동생은 자고 있더라는 머쓱한 얘기.
집에 돌아오니 남은 건 (계속 잤으면서) 녹초가 된 동생과 머쓱한 나, 그리고 여전히 편물이 되지 못한 실뿐이었다. 에라이. 어차피 오늘 강습은 다 지나갔으니 다음을 기약하고, 이 실이나 짜야겠다.
뜨려던 건 작은 파우치였다. ‘바늘이야기’ 유튜브에 올라온 양세마리 파우치. 마침 전에 쓰고 남은 부클사가 있어서 그대로 따라 만들 수 있었다. 지퍼를 다는 게 조금 귀찮아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굉장히 쉬운 난도였다. 여름에 쓰기엔 좀 더워 보이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몸에 두르고 다닐 게 아니니 괜찮다!
냉큼 떠서 동생에게 줬다. 그리곤 다음 운전 일정을 잡도록 회유했다. 지금 동생 상태로는 주유도 세차도 톨게이트 지나는 것도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시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