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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Jun 27. 2024

외로운데 사람은 싫어요 – 뜨개 카나리아 (망함)

마냥 웃긴 뜨개일지

오늘은 초장에 이실직고하겠다. 작품이 망했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대차게 망했다. 다른 인형도 그렇듯이 뜨개 인형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이목구비인데, 부리와 눈을 잘못 단 건지 아주 심술궂게 생긴 (혹은 그냥 웃긴) 카나리아가 완성됐다. 새로 뜬다고 해서 눈과 부리를 정확히 달 자신은 없기에 그냥 이런 날도 있다, 는 걸 가감 없이 말해본다. 작품이 망한 건 망한 거고, 오늘의 에세이는 진행되니 즐겁게 읽어주시라.  

    

한때 배드민턴에 미쳐 살았던 내가 배드민턴을 그만두게 된 이유 혼자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반드시 내가 보낸 셔틀콕을 다시 나에게 돌려보내 줄 상대가 필요하고 그 상대와의 수준이 나와 비슷해야만 경기가 재밌다. 한쪽의 실력이 다른 한쪽보다 지나치게 높다면 대개 높은 쪽의 사람이 낮은 쪽에게 맞춰야만 하기에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동아리로 시작해 20대 초반까지 꾸준히 즐겼던 배드민턴이지만 동아리 구성원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지리적 · 시간적 요건이 충돌함에 따라 자연스레 소홀해졌다. 계속 배드민턴을 치고 싶다면 거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모임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극 내향인인 나에게 초면인 사람들과 함께 운동한다는 건 절대 상상하지 못할 일이기에 지금까지 배드민턴은 추억 속 운동이 되어버렸다.      


뜨개는 혼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 최고의 취미 생활이다. 실과 바늘만 챙기면 카페에서도 집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시간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단, 여러 장소에서 뜨개를 해본 결과 카페에서는 털이 날리지 않는 종류의 실을 가져가는 게 좋고 지하철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지하철에서 홀로 뜨개 하는 모습이 웃기긴 하다.      


시간과 공간, 심지어 사람 제약도 거의 없는 뜨개가 즐겁기는 하다만 이따금 사람이 많이 모여 어수선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일 때문에 모인 회사 말고, 놀기로 작정하고 모인 사람들 틈에서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보고 싶으니 당장 모이자고 연락한들 팔도에 흩어진 친구들이 모두 모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직접 친구를 만들어보자. (라고 했지만 위에서 말했듯 망했다)     


     


슬로우스텝 113번(노랑) 실로 카나리아를 뜨기 시작했다. 영문 도안에 후반 바느질 작업이 까다롭다는 것 빼면 뜨개 난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코 늘리기와 W&T 정도만 할 줄 안다면 무난하게 완성할 수 있다. 꼬리부터 시작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머리까지 뜨고 나면 부리와 눈을 달아주는데, 뜨면서도 이게 뭔가 싶지만 차근차근 도안대로 이행하면… 원래 귀여운 카나리아가 날 반겨주어야 하는데 웬 매운 음식 잘못 먹고 부리가 퉁퉁 부어버린 노란 새가 날 노려본다.      


슬로우스텝은 권장 바늘이 2.5mm에서 3mm인 얇은 실이기 때문에 두 줄 잡아 4mm 바늘로 작업했다. 도안 역시 4mm 바늘을 사용했기에 비슷한 크기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애초에 그리 얇은 실과 바늘로 작업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카나리아는 노래하는 새다. 경우에 따라 노래를 가르치거나 저들끼리 노랫소리를 전수하기도 한단다. 지지배배 소리가 아름다워 적지만 키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내 뜨개 카나리아는 울지 못하지만 그래도 옷걸이 따위에 올려놓으니 꽤 귀엽다. 여러 마리를 만들어 곳곳에 올려두면 정말 소리를 낼 것도 같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 인형을 만들어 외로움을 달래려고 하다니. 역시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오랫동안 사람을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피로했다. 나와 잘 맞는지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어떤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얼마간의 기간을 잘 견디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다. 학생 때는 강제로 일 년을 같이 보내야 하는 학급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는 ‘굳이’ 새 관계를 만들어야만 하는 울타리가 없어졌으니 해가 지날수록 인간관계가 고이고 고이는 거다.      


어쩌면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지나가고 혼자 남겨진 시간을 싫어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웃고 떠들다가 헤어지고 나면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하며 어쭙잖은 사색에 잠길 때가 있는데 그 사색의 끝이 대부분 외로움으로 귀결되었던 것 같다. 방금까지 웃던 저 사람, 모퉁이를 돌고도 아직 웃고 있을까 하는 가사가 내 얘기인 것처럼 굴었다. 마음 한구석에 이런 불안을 떠안고 사는 게 스스로에게 가장 불행한 일인 걸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하기야, 고치고 싶다고 바로 고칠 수 있으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을 때면 재회하는 꿈을 꾸고, 다시 만나게 되면 대차게 차이는 꿈을 꾸는 게 나다. 내 인생의 주안점이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모두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를 외치는데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너! 를 실천하고 있다. 이게 언제쯤 고쳐질지 모르겠다. 내 손으로 만든 카나리아만큼은 언제까지나 곁에서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건데, 완성본이 너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원작과 달라서 웃기기만 하다. 이유가 어쨌든 웃은 건 웃은 건지 한껏 센치해졌던 기분이 괜찮아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데 이 억울하게 생긴 카나리아 덕분에 오늘 내 기분은 수도권까지는 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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