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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자 Apr 29. 2024

어릴 적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 2.

 그날 나는 또래 친구들이 유독 방귀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재밌어한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저 영악한 교관 아저씨도 함정으로 써먹을 정도로.


 그 이후로 나는 방귀를 응용한 개그 수법을 연마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방귀를 이용한 개그는 생각보다도 더 쉬웠다. 진지하고 따분하기만 한 상황에서(이를 테면 한창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시간이라던지) 방귀라는 단어를 예상하지 못 한 순간에 끼워넣기만 하면 항상 친구들의 웃음이 따라왔다.


 "심봉사는 왜 눈이 번쩍 뜨이게 되었을까요?"

 라는 진지한 담임선생님의 질문에 냉큼 손을 번쩍 들고는,


 "사실······ 심봉사는 심청이의 방귀 냄새가 너무 지독한 바람에 그만 눈이 번쩍 뜨여지고 말았대요!"

 "푸하하!"

 방귀라는 단어만 들어가니 친구들은 항상 킥킥 웃어댔다.






 물론 엄숙한 수업시간에 그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듯한 대답을 고 나면 선생님의 매서운 눈빛과 함께 호통 뒤따르고는 했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호통과 잔소리를 듣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반에서 알아주는 문제아였기도 했다. 수업시간에는 항상 지우개밥 던지기와 같은 딴 짓거리를 했고, 익힘책을 어디까지 풀어오라는 간단한 숙제를 하지 않아서 담임선생님에게 불려 나가는 일이 나의 일상이었다. 교실 뒤 편에서 손을 들고 벌서기 중인 아이들 사이에도 항상 내가 끼어있었다.


 학기에 한 번씩 실시했던 교내경시대회 시험날이 오면 나는 왠지 모르게 항상 심통부터 났다. 시험을 얼렁뚱땅 마치고 심통이 난 입술을 푹 내민 상태로 고개를 숙인 채 집에 돌아오면 팔짱을 끼고 있다가 내 풀 죽은 모습을 보고서는 이마에 주름 한 가닥을 더한 채로 조용히 손을 내미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꼬깃꼬깃 접어준 수학 시험지를 슬쩍 꺼내어 내밀면 역시나 한숨으로 시작하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어휴. 또 70점이니? 도대체 앞으로 뭐가 되려고 그래?"


 그럴 때면 내 입술은 더욱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입을 꾹 다문 채로 속으로는 더 심통을 부렸다.


 '흥. 그깟 수학 시험 점수가 뭐가 중요하다고. 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개그맨이 될 거라고. 수학 점수는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흥!'






 하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던가. '방귀'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남발했는지 처음에는 항상 박장대소하던 또래 친구들의 반응은 점점 시원찮아졌다.


 특히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친구들이 방귀라는 단어를 아예 꺼리기 시작했다. 사춘기의 초입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영역에 눈을 떠가는 시기가 되자, 방귀와 같은 생리현상은 어느새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이나 좋아하는 질 낮은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채는 바람에 나는 그만 방귀쟁이, 저질 남이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방귀쟁이, 저질 남이라는 오명을 계속해서 쓰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의 방귀를 이용한 개그 수법은 점점 수그러들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개그맨을 향한 여정에 암초를 맞닥뜨리고 있던 시기, 5학년이 되면서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던 '그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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