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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자 Apr 29. 2024

어릴 적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 3.

사실 '그 일'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연히 보았던 쪽지 시험에서 고득점을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를 칠판에다 멋지게 풀어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그냥 숙제를 열심히 해왔다던지.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 일' 뒤에 이어진 5학년 담임선생님의 한 마디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아주 낯선 한 마디였다.


 "우리 영태 학생이 아주 잘했어요."

 "아이구 영태 학생이 완전 모범생이 다 됐네. 정말 잘했어요. 다들 영태를 본받도록 하세요."


 무엇을 본받으라는 것이었을까?

 당시의 나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잘 이해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이 하신 낯설기만 했던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말을 듣고 싶어졌다.


 그 뒤로 나는 하루아침에 범생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일도 사라지고 숙제도 항상 성실하게 척척 해오는 착실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항상 같이 벌을 서던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마지막 교내경시대회에서 95점을 맞은 시험지를 들고 당당히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의 어릴 적 개그맨이 되기 위해 분투했던 짧은 여정은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의 '방귀쟁이 개그맨'이 여전히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내 마음속의 '범생이'가 엄격하게 감시를 하고 있는 탓에 구석에서 자리만 잡고서는 눈치를 보고 있지만 방귀쟁이 개그맨은 언제나 조그맣게나마 마음속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내 마음속의 개그맨과 범생이는 쌍둥이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또래 친구들의 깔깔대는 웃음과, 선생님이나 엄마의 활짝 웃는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속의 소망에서 태어난 쌍둥이다.


 그렇다면 훌쩍 커버린 나는 어떤 사람들의 어떤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걸까? 내 마음 속에 방귀쟁이 개그맨과 범생이 다음으로 늦둥이 셋째가 자라나고 있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아직은 알 속에서 곤히 자고 있는 늦둥이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늦둥이인 셋째는 무엇을 동경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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