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자 May 05. 2024

첫 심폐소생술 환자 이야기

 #. 아래 이야기는 글쓴이의 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젠장, 이 가스를 너무 쉽게 생각했어." 

 모든 일이 일단락된 후, 영태와 치프 선생님이 스테이션에 앉아 김 00 환자의 전일 복부 엑스레이 사진을 열어보았다. 사진을 보고 나서 치프 선생님이 꺼낸 뒤늦은 말이었다. 김 00 환자의 복부 사진에서는 사진의 오른쪽 윗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기주머니가 보였다. 위가 자리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위에는 당연히 공기가 들어갈 수 있지만, 공기주머니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주머니의 아랫부분으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저류하고 있는 액체들이 보였다.     






 복강 내 수술을 하고 나면 마취로 인해 잠들었던 위장이 다시 원활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하부위장과 연결된 아래의 분출구를 통해 가스가 나오는 것이 위장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첫 신호다. 첫 신호를 확인하면 소량의 물부터 시작해 미음, 죽, 일상식까지 점진적으로 식이를 진행하면서 각 단계마다 위장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피게 된다.  


 죽을 먹던 환자가 더부룩함을 호소했을 때 주치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수술을 하게 되면 환자는 굉장히 힘들고 고생스러운 경험을 여럿 하게 된다. 고생스러운 것 중에 대표적인 한 가지가 먹는 문제다. 아직 마취에서 깨어 나오지 못한 위장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는 경우가 생긴다. 언제까지 미음만 먹냐는 불평을 듣게 되면 복부 청진 소리와 복부 사진의 이상 소견을 설명하면서 조금만 더 미음으로 먹어보자고 달래 보지만 납득을 못 할 때가 많다. 너무 질질 끌게 되면 참지 못하고 몰래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사다 먹는 경우도 있다. 

 고생을 하며 기다리다가 드디어 죽을 먹게 된 환자에게 사진이 좋지 않으니 다시 먹지 말자고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복부 사진에서 위가 부풀어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사진에서 부푼 것처럼 보이기만 하고 아무런 증상이 없을 수도 있다. 증상이 있더라도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수준에서 끝난다면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내려가지 못한 음식물들로 인해 울렁거림이 계속되다가 구토를 하는 경우도 있다. 구토를 해서 위가 비워지면 개운해지면서 그냥 그걸로 끝날 때도 있다. 이러면 역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구토를 하면서 토사물이 기도로 흡인이 되면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생긴다. 폐렴이 생기더라도 항생제를 쓰면서 큰 문제없이 치유될 수도 있지만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로 염증이 악화되거나 내성균이 나오면서 장기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흔치는 않지만, 구토를 하면서 토사물로 인한 기도 막힘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기도 막힘은 한순간에 심폐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날 영태는 치프 선생님과 저녁 회진을 돌고 있었다. 회진 도중에 전화를 받은 치프 선생님은 돌연 눈을 크게 뜨더니 말도 없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영태는 영문을 모른 채 일단 따라서 달렸다. 

 "망할, 어레스트래. 누구 짐작 가는 사람 있어?"

 영태는 짐작 가는 환자가 없었다. 영태는 인턴 주치의였기 때문에 상태가 불안정해서 중환자실이나 집중치료실에 있는 환자들은 아직 경험이 적은 영태가 보지 않고 윗년차 전공의 선생님들이 대신 맡아서 보고 있었다. 영태가 맡은 환자가 상태가 악화되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윗년차 선생님이 주치의를 인계받고 데려가고는 했다. 그래서 영태에게 이런 응급 상황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이 달리던 중에 가슴을 철렁 이게 하는 방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00 병동. 코드블루- ]

 두 사람은 이제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00 병동에 도착하자 막 처치실로 이동하고 있는 베드가 보였다. 베드 위로 다른 인턴 선생님이 올라타 가슴 압박을 하고 있었다. 베드에 표시된 이름. 김 00 환자. 그때까지도 영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00 병동은 영태와 치프 선생님이 그날 저녁 회진을 시작한 첫 번째 병동이었다. 영태는 김 00 환자와 바로 15분 전에 병실에서 인사를 나눴다. 예상대로 김 00 환자가 불평을 했다.

 "어제까진 죽을 먹었는데 왜 오늘은 다시 미음이야?"

 "복부 사진을 보니까 가스가 많이 찼어요. 더부룩하시면 아예 안 드셔도 됩니다."

 그리고 15분 만에 김 00 환자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

 

 아직 인턴일 뿐이었던 영태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가슴압박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처치실로 이동하자마자 각종 모니터와 선들이 연결되었다. 심전도 모니터에는 일직선, 그러니까 무수축 리듬이 보이고 있었다. 산소포화도는 손가락을 바꿔 연결해 봐도 잡히지 않았다. 치프 선생님이 기도 삽관을 시도했다. 삽관을 하는 과정에서 입 속의 토사물들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3분마다 에피네프린이 들어갔고, 다른 인턴 선생님은 앰부 백을 열심히 쥐어짰다. 하지만 맥박은 돌아오지 않았고 모니터에서는 일직선으로 된 리듬만이 변함없이 보이고 있었다.   


 영태가 정신을 차려 보니 누군가 영태를 뒤에서 잡고서는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듯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눈앞이 뿌옇고 볼이 간지러웠다. 영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영태가 가슴 압박을 멈추고 베드에서 내려오자 치프 선생님이 사타구니와 목에서 동시에 맥박을 확인했다. 맥박은 없었지만 가슴 압박을 다시 시작하지는 않았다. 곧이어 보호자가 들어오자 치프 선생님은 호흡과 맥박을 다시 확인하고, 심음 청진까지 마치고서는 보호자 앞에서 사망 선고를 했다. 보호자는 김 00 환자의 배우자 되는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김 00 환자가 누워있는 베드에 엎드리며 울음을 터뜨리자 영태의 눈앞이 다시 뿌예졌다.






 치프 선생님과의 뒤늦은 복부 사진에 대한 리뷰가 끝나고, 정신을 추스른 영태는 왜 눈물이 나왔을까 고민했다. 인턴 생활을 한지 반년이 넘었던 영태는 심폐 소생술을 이미 수십 번도 더 경험을 해봤다. 이번에는 자신이 맡았던 환자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건 미처 다하지 못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전날 복부 사진을 확인하고서 죽 대신 미음을 드렸다는 것이 영태에게는 위안거리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영태가 복부 사진을 확인하고 조치를 취했다는 뜻이 되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치를 하지 않은 것과 다를 게 없으니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같이 들 수밖에 없었다. 


 미음으로 낮추는 것 대신 아예 금식을 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더 나아가서 콧줄을 끼고 저류 된 액체를 빼내야 했을까. 콧줄을 끼었다면 토사물이 기도를 막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환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콧줄로 인해 괴로웠을 것이다. 토사물이 기도를 막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단순히 복부 사진이 안 좋다고 콧줄을 넣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영태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만약에 영태가 실력 있고 경험 있는 주치의였다면.

 그래서 김 00 환자에게 닥칠 불행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채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을 아무래도 영태는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래서 영태는 울음이 나왔을 것이다. 실력이 부족한 자신에 대한 원망과 김 00 환자에 대한 죄책감이 섞인 울음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영태는 실력 있는 주치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마 당시의 영태는 몰랐을 것이다. 인턴을 마치고 전공의 수련까지 마치고 전문의 면허를 따고 나서도, 실력 있는 의사가 되려면 여전히 갈길이 한참 남아 있다는 것을. 평생 동안 노력을 한다면 종착점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이 길에 들어섰으니 영태는 계속해서 가보는 수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 어릴 적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